교육의 창·강경필>사람은 사람을 보면서 성장한다
강경필 광주교육연구소 이사
입력 : 2025. 03. 23(일) 17:57

강경필 광주교육연구소 이사
아마추어 사진가로 꽤 오랫동안 사진을 좋아해왔다. 일정한 주제의식이 있지는 않지만 그때 그때 내 마음이 가장 끌리는 대상에 이끌려 셔터를 눌러왔다. 지금은 30개월 아기 사진를 찍고, 그 사진들이 손실될까 두려워 여러겹으로 백업에 공들이는 아빠 사진사다. 이런 내게 딸이 대뜸 “아빠! 카메라 사주세요”이런다. 벌써? 라는 마음이 들지만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키즈 카메라를 골라 선물했다.
카메라가 도착해서 언박싱 하는 동안 옆에서 계속 빨리 주라고 성화다. 간단한 동작을 테스트 하고, 목에 걸어줬더니 척척 잘 찍는다. 카메라로 아빠를 찍으면서 “이은이가 아빠 같네” 말한다. 다음날 아침에도 일어나자 마자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는 나대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 하니 “아빠가 이은이 같네” 한다. 이제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라고 카메라 리뷰창을 띠워서 자꾸 보여준다. 피사체에서 능동적 창작 활동자로 거듭나고 있다.
내가 사진을 찍는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 생계에 도움이 되거나, 사진가로서 명성을 날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찍어 간직하는 일이 좋고, 그 일을 반복하다 보면 대상에 대한 특별한 이해가 생겨나 더 좋아진다. 오랫동안 무등산을 찍어왔는데, 나는 모든 산의 풍경 중에서 무등산의 풍경을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갔다.
AI가 미래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와 불안 속에서 교육도 변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다.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되고 온갖 AI 관련 교육프로그램이 급조되어 나온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AI가 바꿀 미래를 정확하게 그릴 능력은 없지만 교육의 본질은 AI의 기능이 아무리 대단해져도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을 보면서 성장한다. 그것이 교육이 가지는 최대의 긍정성이자 부정성이다.
사람이 AI를 보면서 성장할 수 없는 까닭은 사람이 기계나 프로그램 보다 특정 기능이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애호하는 마음을 기계나 프로그램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애호할 만한 대상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고, 개별적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사람들이 무엇을 애호하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성장하는 인간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애호의 감정은 끊임 없는 갱신을 요구한다. 어찌된 일인지 인간은 똑같은 것에 쉽게 질린다. 아무리 대단한 예술 작품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미 충분히 많은 음악이 존재하지만 또 더 새로운 음악을 열망하고, 그 열망 속에서 피어난 훌륭한 결과물은 전체 음악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좋은 교사는 담당하는 분야에 대한 일정 정도 이해를 가지거나 숙련도를 가진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이해도나 숙련도는 AI가 대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강력하게 애호하는 사람은 사람을 성장시킬 강력한 존재가 된다. 학교가 시스템이 교과서가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한다. 여전히 성장하는 사람, 진부한 것을 넘어서고 싶어하는 사람만이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
아빠처럼 사진 찍고, 엄마처럼 노래 부르는 내 딸 이은이는 크면서 만나게 될 언니 오빠 친구들이 애호하는 무언가를 애호하겠지. 그리고 그 일련의 연쇄에 따라 어떤 사람이 될 것이다. 어떤 직업을 가지는가 보다 그 경로가 더 중요하다. 그 경로가 곧 삶이다. 경로의 전환점 마다 어떤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은이가 사진을 좋아하는 것은 카메라 때문이 아니라 아빠 때문이다.
카메라가 도착해서 언박싱 하는 동안 옆에서 계속 빨리 주라고 성화다. 간단한 동작을 테스트 하고, 목에 걸어줬더니 척척 잘 찍는다. 카메라로 아빠를 찍으면서 “이은이가 아빠 같네” 말한다. 다음날 아침에도 일어나자 마자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는 나대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 하니 “아빠가 이은이 같네” 한다. 이제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라고 카메라 리뷰창을 띠워서 자꾸 보여준다. 피사체에서 능동적 창작 활동자로 거듭나고 있다.
내가 사진을 찍는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 생계에 도움이 되거나, 사진가로서 명성을 날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찍어 간직하는 일이 좋고, 그 일을 반복하다 보면 대상에 대한 특별한 이해가 생겨나 더 좋아진다. 오랫동안 무등산을 찍어왔는데, 나는 모든 산의 풍경 중에서 무등산의 풍경을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갔다.
AI가 미래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와 불안 속에서 교육도 변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다.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되고 온갖 AI 관련 교육프로그램이 급조되어 나온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AI가 바꿀 미래를 정확하게 그릴 능력은 없지만 교육의 본질은 AI의 기능이 아무리 대단해져도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을 보면서 성장한다. 그것이 교육이 가지는 최대의 긍정성이자 부정성이다.
사람이 AI를 보면서 성장할 수 없는 까닭은 사람이 기계나 프로그램 보다 특정 기능이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애호하는 마음을 기계나 프로그램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애호할 만한 대상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고, 개별적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사람들이 무엇을 애호하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성장하는 인간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애호의 감정은 끊임 없는 갱신을 요구한다. 어찌된 일인지 인간은 똑같은 것에 쉽게 질린다. 아무리 대단한 예술 작품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미 충분히 많은 음악이 존재하지만 또 더 새로운 음악을 열망하고, 그 열망 속에서 피어난 훌륭한 결과물은 전체 음악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좋은 교사는 담당하는 분야에 대한 일정 정도 이해를 가지거나 숙련도를 가진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이해도나 숙련도는 AI가 대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강력하게 애호하는 사람은 사람을 성장시킬 강력한 존재가 된다. 학교가 시스템이 교과서가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한다. 여전히 성장하는 사람, 진부한 것을 넘어서고 싶어하는 사람만이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
아빠처럼 사진 찍고, 엄마처럼 노래 부르는 내 딸 이은이는 크면서 만나게 될 언니 오빠 친구들이 애호하는 무언가를 애호하겠지. 그리고 그 일련의 연쇄에 따라 어떤 사람이 될 것이다. 어떤 직업을 가지는가 보다 그 경로가 더 중요하다. 그 경로가 곧 삶이다. 경로의 전환점 마다 어떤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은이가 사진을 좋아하는 것은 카메라 때문이 아니라 아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