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학교의 봄
임효경 완도중 前 교장
입력 : 2025. 03. 25(화) 15:14
임효경 완도중 前교장.
봄이다. 시베리아는 얼음 옷을 입은 채 차가운 바람과 심지어 폭설까지 한반도에 보내고 있어도 태양은 빛나고 그 햇살은 밝고 따뜻하다. 그런데, 자꾸 귀가 간지러운 요즘이다.

3월 초, 완도중학교는 참 소란하겠다. 청해진 앞바다는 그 기세에 눌려 오히려 잠잠할 것이다. 새 학기를 맞이해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그 넓은 운동장을 덮을 것이다. 방학 동안 용역을 써서 대청소를 마친 학교의 구석구석은 또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쓰레기와 먼지로 가득 찰 것이다. 워낙 뛰어다녀야지. 나는 남자다. 나는 사춘기 10대다. 치달리는 나를 막지마라, 다친다, 하면서.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 형성이다. 학교도 그렇다. 초봄 땅 밑에서 수선화가 올라오듯, 학교 주변에서 여기저기 탐색전으로 수선스러웠을 것이다. 새 학기를 앞두고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어떤 선생님이 담임이고, 어떤 친구가 같은 반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설령 맘에 들지 않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느라 표정 관리에 들어간다. 겉은 태연, 속은 난감.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눈치를 살피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선배들과 후배들을 도마질하는 말이 그들이 일으키는 먼지와 함께 학교의 모든 공간을 부옇게 날아다닐 것이다.

신입생 누구는 입학 기념 명품 신발이 가볍지 않고, 이상하게 무거울 것이다. 신발장에 넣어 놓았다가 하굣길에 낡은 신발을 신고 귀가 할지 모른다. 역도부들은 어떤 신입생이 깡과 체력이 좋은지 신입 후보 물망에 올려놓고 보리 까불 듯하고 있을 것이다. 칼 같은 과학과 선생님이 담임인 반 아이들은 저녁 잠자리 들기 전, 아침에 입고 갈 교복과 가지고 갈 책가방을 잘 챙겨놓고 잠자리에 들 것이다. 지각해 눈 밖에 나지 않으려 하기보다는 선생님의 기대에 어긋나고 싶지 않아서.

교무실 또한 큰 소란이 한바탕 지나갔을 것이다. 선생님들은 새로운 업무를 맡고 책상 위치가 달라졌을 것이다. 모든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책상을 치우느라 한동안 애를 먹었을 터, 이젠 언제 그랬냐는 듯 허리 바짝 세우고 컴퓨터 작업에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 새 교육과정에 맞춘 수업을 위한 교재 연구뿐 아니라, 새로 맡게 된 학생들 파악하는 것 외에 학생 생활기록부 이관, 공문 수발, 그리고 전입해 온 선생님들의 이름과 얼굴을 일치시키느라 눈코 뜰 새 없겠다.

학교는 야생의 정글이다. 학생들은 예민한 사자들이다. 자기 영역을 누군가 침범하면 무조건 달려들어 쫓아내려 한다. 지금의 선생님들도 그랬다. 이젠 돌고 돌아서 그 정글 속에 들어가 그 사자들과 살아야 한다. 사자들은 달리는 야생마들에게 달려들지 않는 것이 정글의 법칙이다. 선생님들은 그렇게 내달리는 야생마로 3월을 지켜 내는 것이다.

그래도 이 시기 선생님들의 마음엔 희망이 가득 차 있다. 그래, 3월만 가라. 시작이 절반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물레방아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오히려 모락모락 열이 난다. 흘러 들어오고 나가는 시냇물이 있다면, 멈추지 않고 잘 돌아갈 것이다. 생산적인 순환이 이뤄질 것이다. 가르침과 배움이 동시에 일어나고, 감탄과 웃음이 터질 것이다. 3월엔 그 물이 그나마 풍성하다.

간혹 돌아가는 물레방아 주변에 무지개도 보인다. 아이들이 어여쁘게 보인다. 잔뜩 긴장해 등을 곧추세우고 수업 시간을 기다리며, 교실로 들어서는 선생님에게 ‘설렘’이라는 색을 섞은 시선을 보내기 때문이다. 어떤 눈은 반짝! 빛을 발하기도 한다. 예의를 차리고, 서로서로 조용히 하라고, 집중하라고 자중의 묵직한 색깔을 보태기도 한다. 발톱과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고 빼꼼히 엿보고 있는 녀석들, 참 귀엽다.

세상에 모든 어린 것들은 귀엽고 어여쁘다. 봄날의 병아리와 복슬복슬 강아지도 그렇고 어린 사자도 그렇다. 초봄에 솟아 나오는 초목들의 어린 싹들도 얼마나 예쁜가! 자라면 독성을 품는 나무의 어린 이파리는 오히려 더 순하고 독특한 맛을 선사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것이 어린 것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다. 강하고 큰 것들이 지켜주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 자연의 순리인가.

학교는 그 자연의 순리가 살아나야 한다. 어린 것들이 보호받고자 하는 열망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그 방식이 해를 거듭할수록 개성이 넘치고, 의외이고, 색다르다. 해석이 되지 않아 난감할 때도 많다. 지도자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든 그 고민을 읽어주고 해결해 주고자 고뇌한다. 그러나 독재자는 그렇지 않다. 독재자는 그런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을 이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는 큰 권력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쉬운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아예 교육을 훈련으로 전락시켜 어린 것들에게 어떠한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하고 무조건 복종하도록 만들 것이다.

봄의 새싹들이 학교에 있다. 학교가 없다면, 이 어린 것들이 세상 속 맹수들과 싸우고 터지고 상처를 입고 다치면서 세상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누가 학교는 죽었다고 했는가! 새 학기 새 봄, 누구보다 민감한 눈빛으로 예의 주시하며, 세상 야수들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고자 피땀을 흘리는 수많은 선생님들이 학교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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