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잊혀질 권리
곽지혜 취재2부 기자
입력 : 2025. 04. 13(일) 17:44
곽지혜 기자
스페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마리오 코스테하 곤잘레스는 지난 2009년 구글에서 ‘마리오 코스테하 곤잘레스, 부채 및 재산 강제 매각’(1998)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견했다. 당시 빚 때문에 집을 내놓아야 했던 상황에서 압류된 부동산의 경매 공고문까지 첨부된 기사에는 자신의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사건 또한 그의 입장에선 10여년 전 해결된 일이었다. 곤잘레스는 ‘인권 침해’를 주장하며 스페인 정보보호청을 통해 신문사와 구글에 기사 삭제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스페인 정보보호청은 ‘신문사의 보도’는 ‘언론의 자유’에 관한 사항으로 청구인의 요청을 거부한 반면, ‘구글 검색 결과’는 ‘명예훼손’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청구인의 요청을 인정, 구글에 해당 기사 링크를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구글은 기사 내용이 모두 사실이고, 해당 조치 역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 사건은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긴 재판 끝에 2014년 스페인 고등법원 유럽사법재판소는 ‘구글은 웹페이지 링크를 삭제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법원이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 첫 사례로, 표현의 자유나 경제적 이익, 알 권리보다도 개인의 정보나 사생활의 보호가 더 중요하다는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가 인정되기 시작한 기점이다.

한국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을 통해 ‘잊혀질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피해자가 불법 촬영물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규정도 있다. ‘알 권리’와 대치되며 ‘잊혀질 권리’에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더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자들의 ‘잊혀질 권리’는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죽은 자들에 대한 ‘잊혀질 권리’는 어떨까.

최근 연일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고(故) 김새론과 김수현에 대한 진실 공방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유족과 유튜버들은 ‘고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폭로를 이어가고, 폭로의 대상이 되는 이는 수차례 번복과 유족의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 과정에서 이미 고인이 된 또 다른 이와 과거 이들과 인연을 맺었다며 소환되는 수많은 유명인들까지. 과연 이 모든 것을 고인이 원했을지 의문이다.

최근 본보 독자위원회의 한 위원은 ‘온라인 뉴스 시대에 언론의 사후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했다. 잘못이 없다는 것이 입증이 된 후에도 문제 발생 당시 보도됐던 기사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부분에 대한 우려였다. 언제든 과거의 일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온라인부터 이를 원하는 대로 재가공할 수 있는 AI까지. 더 이상 종이 신문이 아닌 ‘디지털’, 그리고 ‘조회수’에 목숨을 거는 모든 언론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자 시점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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