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기자의 현장감과 시인의 감수성으로 그려낸 '남미 이야기'
[신간]40일간의 남미 배낭여행
윤현주│다큐북스│2만원
입력 : 2025. 04. 23(수) 17:50
40일간의 남미 배낭여행
브라질 제2의 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 항 입구 ‘팡데아수카르’에서 내려다 본 리우데자네이루 해변. 지난 2012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윤현주 작가 제공
한국에서 가장 먼 대륙, 남아메리카. 한국의 대척점이 우루과이 일대라는 게 그 증거다. 대척점에 위치한 두 곳은 계절과 밤낮이 반대다. 남미는 지리적인 면에서 한국과 정반대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적으로도 가장 먼 곳에 있다. 그래서일까. 남미 여행은 한국인에게 ‘여행의 종결판’이자 ‘로망’이었다.

그런데 최근 남미를 찾는 여행객이 급증하고 있다. 여행객의 구성도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여행 베테랑인 중·장년층이 주로 찾았지만 근래에는 20~40대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 SNS 등을 통해 관련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데다 인터넷 환경이 좋아지면서 교통·숙박 예약이 수월해진 영향도 있지만, 가 보지 않은 미지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여행의 핵심 동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남미가 여행지로 제격이라는 게 큰 이유일 것이다.

신간 ‘기자가 걷고 시인이 쓴 40일간의 남미 배낭여행’은 35년간 부산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윤현주 시인이 기자처럼 발로 뛰고 시인처럼 감성을 담아낸 독특한 남미 여행기다. 현장감과 역사성, 감수성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이 책은 기자와 시인을 겸한 작가의 이력처럼 정보 전달은 기본이고, 남미의 역사와 문화, 예술이 유려한 문장 속에 흥건히 녹아 있다. 그야말로 취재기자의 현장성과 시인의 감수성이 만든 역작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치열한 기자 생활 중에도 시 전문지 ‘서정과 현실’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맨발의 기억력’을 출간했으며, 지금도 꾸준히 시를 써 오고 있다.

이 작품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본인이 마치 남미의 어디쯤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남미 음악 ‘누에바 칸시온’을 감상하는 대목에서는 아연 감성 속으로 몰아간다. 기자이자 시인답게 깊이 있는 문체는 흔한 여행기를 넘어 본격 인문서처럼 다가온다.

우유니 소금사막의 일출을 소개하는 한 대목(142쪽), ‘새벽 5시가 되자 서서히 여명이 나타났다. 동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번지기 시작했다. 사막 뒤의 산을 경계로 뚜렷한 반영이 나타나 상하가 완벽한 대비를 이뤘다. 파란 하늘이 어느새 소금호수에 내려앉아 사막도 파란색으로 변했다. 태초의 개벽이 이랬을까. 하늘과 땅이 분리되기 전, 하늘과 땅이 몸을 섞어 그 속에서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이 자신의 유전형질대로 진화해 오늘에 이른 것은 아닐까? 나는 순간 강렬한 생명 에너지를 느꼈다. 내 속에 숨죽여 있던 생명에 대한 욕망과 본능도 활짝 깨어났다.’가 그 예시다.

잉카의 위대한 유산인 마추픽추 정상에 오른 뒤에도 저자는 인류 역사의 무상함을 서정적으로 묘사한다(96쪽). ‘정교하게 쌓아 올려진 돌과 돌 사이 골목을 천천히 누비며 귀를 기울인다. 돌을 만져 보기도 하고 돌에 귀를 대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들려오는 소리가 없다. 내 청력과 상상력의 한계 탓인가. 마추픽추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한 돌은 분명 무슨 말을 속삭이고 있을 터인데…. 수백 년을 천천히 오르내리는 야생 야마는 뭔가 알고 있을까나.’

빛나는 사색과 사유의 장면도 자주 읽을 수 있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점차 녹아내리고 있는 모레노 빙하 앞에서 저자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모레는 빙하는 지금 위태롭다. 극한의 추위가 얼음의 성채를 만들었지만 지금 같은 속도로 지구온난화가 지속한다면 반세기 안에 빙하는 소멸할 것이라고 한다. 빙하의 푸른빛이 더욱 눈부신 이유가 있었구나. 하루 끝자락의 붉은 노을빛처럼!’

책은 또 남미의 핵심 여행지만을 골라 소개하고 있어 경제적인 남미 여행을 꿈꾸는 독자에게 도움을 준다. 페루(리마, 바예스타 섬, 이카 사막/와카치나 오아시스 마을, 나스카 지상화, 쿠스코, 마추픽추, 티티카카 호수), 볼리비아(라파즈, 우유니 소금사막), 칠레(산티아고, 파블로 네루다의 집, 파타고니아), 아르헨티나(우수아이아, 부에노스아이레스, 보카 지구와 레콜레타 공동묘지), 브라질(이구아수 폭포, 리우데자네이루) 등 5개국의 주요 도시와 유적지들이다.

이 외에도 볼거리는 최윤식 건축가의 스케치다. 빼어난 그림 실력을 자랑하는 최 건축가의 현장감 넘치는 스케치가 장소마다 빠짐없이 들어가 있어 여행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책 출판 과정도 흥미롭다. 부산에 사는 저자가 당초 현지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이었는데 사정상 작업이 중단됐고, 광주지역 출판사에서 출판작업을 마무리한 것. 이른바 영호남 합동 출판이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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