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이제 호남에 희생 아닌 응답을
오지현 취재1부 기자
입력 : 2025. 04. 23(수) 17:54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호남을 찾는다. 국립5·18민주묘지를 마치 익숙한 통과의례처럼 방문하는 이들은 선거가 끝나면, 다시 수도권으로 향해 대한민국의 발전을 부르짖는다.

이번 조기대선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후보는 전라남도 신안의 해상풍력단지를 찾았고, 김경수 후보는 광주광역시 양동시장을 찾아 광주·전남 발전을 촉구하고 나섰으며 김동연 후보도 호남행을 준비 중이다. 각 캠프는 빠짐없이 “호남은 민주당의 심장”이라 말하며 각종 지역 현안 해결과 함께 진정성 있는 공약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런 민주당의 약속은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군공항 이전을 비롯한 지역 현안을 약속하는 공약은 수 없이 반복됐으나, 현실은 그대로다. 오히려 이들 공약은 너무나 익숙해 공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실제로 호남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계속해서 희생했으며 이는 호남의 자부심이자, 오랜 긍지였다. 5·18이 그랬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비상계엄 이후 4월4일 탄핵심판이 선고되기 전까지 호남은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해서 싸워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수면 위로 올라온 ‘호남 홀대론’은 민주당을 향한 호남의 자부심을 서서히 허무로 바꾸고 있다.

일본 철학자인 다카하시 데쓰야는 사회 속에서 ‘희생의 시스템’이라는 개념을 통해 어떤 자들의 이익이 다른 것의 생활, 생명, 건강, 일상, 재산, 존엄, 희망 등을 희생시켜 산출되며 유지된다고 말한다.

다카하시에 따르면 희생시키는 자의 이익은 희생 당하는 것의 희생 없이는 산출되지 못하고 유지될 수도 없으며 이 희생은 통상 은폐되어 있거나 국가나 국민, 사회 기업 등의 공동체에 대한 ‘귀중한 희생’으로 미화되고 정당화된다. 그는 이익에는 언제나 향유자와 희생자가 분리되며, 이는 곧 희생의 시스템이자 일종의 식민지주의라고 비판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움직였으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 희생했던 호남은 발전에서는 소외되며 존재감을 잃어갔으나 중요한 정치 상황에서는 희생을 강요당했다. 이에 전라남도는 의대 하나 없는 유일한 의료 공백지대로 남아 있으며, 광주광역시는 여전히 지역 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약속은 남았으나 변화는 없다.

민주당은 여전히 “호남 없이는 민주당도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이제는 호남이 준 것에 응답해야 한다. 그 응답은 선거철 구호나 현장 방문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로 나타나야 한다. 더 이상 ‘귀중한 희생’이라는 말로 호남의 헌신을 미화하고, 그 대가를 유예해서는 안 된다.
서석대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전남일보 PC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