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의심’ 유튜버 추적 피해 달아나던 30대 숨져
새벽시간 갓길 트레일러 들이받아
‘술 마신 거 아니냐’ 추궁에 도주
유족 “심리적 압박에 사고 발생”
“사적 제재는 수사기능 무시 행위”
입력 : 2024. 09. 23(월) 18:52
30대 중반 A씨가 몰던 승용차가 지난 22일 광주 광산구 산월동 한 도로에서 갓길에 주차된 시멘트 운송 트레일러를 들이받고 발생한 화재로 전소됐다. 독자 제공
음주운전을 의심하며 자신을 추격하는 유튜버를 피해 달아나던 30대 남성이 주차된 시멘트 트레일러와 충돌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법 권한이 없는 유튜버의 사적 제재에 공익이냐 사익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23일 광주 광산경찰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전 3시50분께 광주 광산구 산월동 한 도로에서 30대 중반 A씨가 몰던 승용차가 갓길에 주차된 시멘트 운송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크게 다친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고 3시간만에 숨졌다. 해당 차량은 충돌 여파로 화재가 발생해 전소됐다.

A씨는 7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B씨가 음주운전을 의심하자 자신의 차량을 타고 달아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튜버 B씨는 세 명에서 열 명까지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광주·전남 유흥가 등지에서 음주운전차량 추적, 폭주족 단속 방송 등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이날 생중계 영상에는 신호가 걸린 사이 B씨가 A씨의 차량에 접근해 ‘술 마신 거 아니냐’ 등 대화를 하는 모습과 A씨가 B씨를 알아보고 도주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B씨는 A씨의 차량을 추적하다 놓쳤으며 A씨는 음주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B씨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이와 관련해 사망자 유족 측은 음주운전을 한 자체는 큰 잘못이지만, 유튜버의 추격이 없었더라면 사망 사고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특히 B씨가 A씨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놓친 지 2분이 채 지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져 A씨의 사고에 B씨의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유족 측은 “평소 A씨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던 터라 심야에 벌어진 추격전이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며 “일반인만 하더라도 어두운 밤 운전, 더군다나 두 대의 차가 빠른 속도로 쫓아오는 상황에서 정상 주행이 불가능한데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A씨의 경우 더 큰 심리적 압박을 느껴 정상 주행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음주운전이라는 중죄를 짓기는 했지만, 유튜버의 사적 제재가 없었더라면 추격전을 벌일 일도 없었고, 화물차에 부딪히는 사고 발생은 물론 사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며 “A씨가 평소 공황장애로 힘들어했기 때문에 술을 마셨다는 사실에도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아들이 주검으로 돌아오게 되니, 하늘이 무너지는 심경이다”고 덧붙였다.

최근 B씨와 같이 음주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이들을 쫓아 사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유튜버가 생겨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영상을 보고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법의 테두리를 넘어선 행위에 유튜버의 사적제재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유튜버의 사적제재를 막기 위해 심의를 예고했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 접속차단을 의결해도 유튜브에 요청하는 방식이라 강제성이 없다. 유튜브는 그간 방심위 의결을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콘텐츠를 삭제하지 않았다. 대신 법원 판결이나 자체 규정 위반일 경우에만 조치하는 자율규제 원칙으로 운영된다.

김정규 호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적 제재는 사법·행정 공권력과 정당한 수사기능을 무시하는 행위다”며 “이들은 범죄 예방 효과를 주장하지만 수익 창출을 위해 만드는 영상 콘텐츠가 대부분으로 긍적적인 요소보다 부수적인 문제 발생 등 부작용이 크다”고 밝혔다.
정상아 기자 sanga.jeong@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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