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물 차올라… 목숨 건진 것만도 다행”
● 집중호우 피해 영암·해남 가보니
토사 유출로 식당 바닥 등 붕괴
“언제 정상영업할 지 기약 없어”
신속한 복구·지원대책 마련 촉구
입력 : 2024. 09. 22(일) 18:34
영암군에 시간당 70㎜ 이상의 집중 호우가 내려 침수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22일 학산면의 한 식당에서 식당 주인이 가재도구 등을 옮기며 복구 작업을 펼치고 있다. 나건호 기자
“물이 순식간에 차올라 온갖 물건이 마치 바다에 떠밀리듯 사방으로 휩쓸려갔어요. 안 그래도 어려운 형편에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막막하네요.”

22일 오후 찾은 영암군 학산면의 한 식육식당 내부는 수마가 휩쓸고간 뒤 폐허를 방불케했다.

식당 내부는 전날 많은 비와 토사 유출로 인해 지반이 무너져 있었고 식당을 운영하는 가족들은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비 피해가 가장 컸던 영암군 학산면의 소상공인들은 전날 느꼈던 공포를 떠올리면서 살았다는 현실에 안도감을 표하는 한편 사업장이 언제 다시 정상 운영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영암군 학산면에서 15년 째 식육식당을 운영 중인 윤지은(40)씨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자영업자 입장에서 말문이 막힐 정도로 막막하다. 공사 수리 등의 복구가 이뤄지고 나서가 더 문제”라면서 “곰팡이 제거 등 소독도 해야 하고 언제부터 정상적인 영업이 가능할지 모를 정도로 피해가 크다”고 하소연했다.

윤씨는 이어 “군에서는 부서별로 책임이 달라 담당 공무원들이 방문해 단발적인 복구 작업 현황만 설명하고 있다”며 “지원 방안이나 실질적 대책을 최대한 빨리 강구해 피해 상인들의 시름을 덜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예상치 못한 집중호우 속에 재산상 손실은 막대했지만, 목숨을 건졌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윤지은 씨의 동생 윤지상(36)씨는 “순식간에 물이 무릎 위까지 차올라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군에서 대피방송과 소방서의 지원 등이 신속히 이뤄져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며 “어제 오후부터 흙을 걷어내는 복구 작업을 시도하다 비가 계속 와 오늘 아침이 돼서야 다시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암군의 음식명소인 낙지거리도 큰 피해를 입었다.

5년 전부터 낙지 식당을 운영하는 정혜진(57)씨는 “지금껏 집중호우로 인해 하천에 물이 넘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가게 안까지 물이 들이닥친 것은 처음”이라며 “전기가 끊겨 수족관 냉각기가 작동을 멈춰 산소 공급을 못 받은 낙지들이 다 죽었다”고 토로했다.

주민들은 전날 쏟아진 폭우에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암군 학산면 선덕마을에 거주하는 김현수(17)군은 “어제 하루 동안은 목숨을 걱정할 만큼 무서운 경험이었다”며 “마을 주민 30여명이 모두 신덕청년회관으로 대피했는데 겁에 질린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해남군 문내면의 주택단지는 30가구가 넘게 침수됐고, 냉장고 등 가전제품과 장농이 물에 잠겨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었다. 한순간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허탈함과 앞날을 걱정하는 우려 섞인 표정으로 묵묵히 복구 작업에 한창이었다.

박용내(89)씨는 침수 직전 아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걸어 구조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아들과 소방관이 함께 구해줬다. 구조 과정에서 가슴 위까지 찬 수압을 못 이겨 넘어져 무릎에 부상을 입었다”며 “고령자들은 절대 혼자서는 탈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목포에서 직장을 다녀 주말에만 해남의 자택을 찾는다는 김모(50)씨는 이날 오전 11시께 도착해 복구작업에 한창이었다.

김씨는 “어젯밤 목포에서 주택 침수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40년 전부터 살아온 터전이 한순간에 숙대밭이 됐다”며 “지난 4월 기존 세입자들이 나가서 장판, 도배 등 대대적 리모델링을 했는데 5개월만에 생각지도 못한 수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어 “10여년 전에도 강우로 인한 침수 위험이 있었지만 집 내부로 물이 들어와 침수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정부나 군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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