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항쟁지서 '승리의 함성'…尹 파면에 광주 들끓다
민주광장서 '탄핵 인용' 지켜봐
선고 직후 광장서 격한 환호성
오후 '승리대회'도 1500명 운집
노래 부르고 춤추며 '축제' 즐겨
"국민염원 끝에 민주주의 승리"
입력 : 2025. 04. 06(일) 18:25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이 발표된 4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생방송으로 탄핵심판 선고를 지켜본 시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김양배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관들의 전원일치로 파면된 지난 4일, 5·18민주화운동의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 앞 광장은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로 뒤덮였다. 시민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내려진 헌재의 결정을 반기며,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를 다시금 가슴 깊이 새겼다.

이날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는 탄핵 선고를 앞두고 이른 시각부터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내란 수괴 윤석열 즉각 파면’, ‘내란 세력 및 동조자 처벌’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과 깃발을 든 2500여명의 시민들이 속속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핸드폰으로 현장을 기록하는 청년들, 자녀와 함께 나온 가족 단위 시민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한마음으로 역사적 순간을 기다렸다. 각종 단체에서는 ‘파면 빵’과 음료 등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정환(67)·한경주(64)씨 부부는 “5·18민주화운동의 학살 현장을 지켜본 입장으로써 ‘계엄’이라는 한 마디에 온몸의 피가 끓는 듯했다”며 “만약 헌재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면, 경제는 무너지고 대한민국은 끝장날 것이다. 반드시 탄핵이 인용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민(35)씨도 “의심 없이 8대 0 만장일치로 파면돼, 민주주의를 다시 지켜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긴 시간 기다려온 만큼, 오늘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감을 표출했다.

광장 중앙에는 대형 전광판이 설치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생중계됐다. 오전 11시, 헌법재판관들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뒤 곧이어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결정문을 낭독하기 시작하자, 현장은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수많은 시민의 시선은 전광판에 고정됐고, 광장에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았다.

결정문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등이 헌법 위반과 권한 남용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이어지자, 광장에는 북소리가 울려 퍼지며 기대감이 고조됐다. 그리고 마침내 11시22분 헌법재판관들의 전원일치로 윤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자, 광장은 거대한 함성과 박수로 뒤덮였다. 시민들은 “광주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며 환호했고, 일부는 지난 연말 계엄 사태 당시의 충격과 공포가 떠오르는 듯, 끝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미옥(64)씨는 “위대한 국민의 승리다. 가슴이 떨리고 벅차다”며 “혹시나 하는 불안도 있었지만, 윤 대통령이 결국 파면돼 정말 기쁘고, 나라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신수진(23)씨는 “그동안 잊혔던 보편적 가치가 우리 곁에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아 너무 기쁘다. 국민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싸운 결과”라며 “정의를 향한 싸움에서 결국 승리해 정말 다행스럽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같은 날 오후 7시 민주광장에서는 ‘윤석열정권즉각퇴진사회대개혁광주비상행동(광주비상행동)’ 주최로 ‘광주시민 승리대회’가 열렸다. 개회 선언과 함께 어느새 광장을 가득 메운 1500여명의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제창하며 하나 된 마음을 나눴다. 이어 오전에 있었던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탄핵 선고 장면이 대형 전광판을 통해 상영되자, 시민들은 다시금 뜨거운 감동에 젖었다.

배정남(56)씨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누구나 납득할 만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역사를 거스르지 않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한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도 잘못된 것은 분명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광주비상행동은 ‘이제는 사회대개혁’, ‘내란이 불가능한 나라를 만들자’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참가자들에게 배부했고, 시민들은 “우리가 이겼다. 국민이 이겼다”고 외치며 서로를 격려했다.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많아, 부모와 아이가 함께 피켓을 흔들며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최민(12)군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탄핵 선고 방송을 봤다. 어려운 말도 많았지만, 담임선생님이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이해할 수 있었다”며 “요즘 뉴스를 보면 안 좋은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이날 집회에서는 지역 예술인들의 공연과 풍물패의 역동적인 무대가 분위기를 한층 뜨겁게 달궜다. 시민들은 응원봉을 박자에 맞춰 흔들거나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손을 맞잡고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흥겨운 리듬에 몸을 맡기며 춤을 추는 등 자유롭게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하는 이들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김준수(30)씨는 “직장에서 탄핵 선고를 지켜보며 ‘드디어 긴 싸움이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료들과 함께 환호하며 기쁨을 나눴다”면서 “이제는 보다 안정된 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란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광장 일대에서는 인근 가게와 봉사단체가 자발적으로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시민들에게 따뜻한 음식과 음료를 나눠 ‘대동정신’을 실천했다. 한 봉사단체는 ‘오월 광주’의 상징인 ‘광주 주먹밥’ 2400개와 음료 등을 준비해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부덕임(76)씨는 “탄핵 인용을 기념해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광주 주먹밥을 회원들과 함께 준비했다”며, “헌재의 파면 결정은 국민 모두가 4개월간 눈비를 맞으며 싸운 결과다. 민주주의가 또다시 승리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윤준명·이정준·정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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