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죽은 자의 물음에 응답할 때
오지현 취재1부 기자
입력 : 2025. 06. 11(수) 13:35
2025년 6월,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자, 2024년 12월3일 선포된 비상계엄 이후 추락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상이 다시 한 번 회복되는 사건이었다. 이번 선거의 진정한 의미는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눈 이들을 단죄하기 위한 국민들의 염원이 만들어낸 결실로, 단순한 정권심판을 넘은 역사에 대한 응답이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 이 물음은 더 이상 문학적 수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1980년 광주에서 총에 맞아 숨진 이들의 이름은 2024년의 거리에서 다시 불렸다. 세대는 달랐지만, 절박함은 닮아 있었다. 5·18의 기억은 기념비에 갇히지 않았고, 그 기억은 살아남은 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한국 민주주의는 죽은 자의 침묵에서 힘을 얻어 다시 걸어나왔다.

그러나 기억은 때때로 정치의 도구로 소환된다. 광주가 상징으로만 호출될 때, 정치는 그 기억을 소모한다. ‘기억하겠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윤리도 담보하지 않는다. 선언은 쉬우나 실천은 어렵다. 발터 벤야민이 말했듯, 억눌린 기억은 현재를 구원할 수 있지만, 그것이 실천으로 이행될 때에만 가능하다. 기억이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제도와 정치의 언어로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여받은 정치적 정당성 또한 바로 그 실천 위에 있다. 그는 죽은 자들의 이름으로 권력을 부여받았지만, 그 이름을 자기 정치의 장식으로 삼는 순간, 그 권력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정치가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를 자격은, 그 기억을 사회 구조로 바꿔낼 때 비로소 얻어진다. 시민이 준 표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위임이자 명령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는 역사적 요구, 그것이 2025년 6월 치러진 장미대선이 품은 가장 깊은 뜻이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그 기억이 도구가 아닌 기준이 될 때다. 광주와 5·18민주화운동은 단순한 슬로건, 슬픔의 감정이 아닌 책임이며, 부채가 아닌 연대다. 정치가 이 사실을 잊는 순간, 산 자는 다시 침묵 속으로 밀려나고, 민주주의는 다시 가장자리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1980년의 광주의 영령들은 오늘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2025년의 정치는, 우리는 지금 그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그 답은 이제 이재명 정부의 손에 달려 있다. 죽은 자의 이름으로 부여받은 권력은 살아 있는 자들의 삶을 바꾸는 정치로 증명돼야 한다. 기억을 갱신하고, 민주주의를 제도와 일상으로 확장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이재명 정부가 마주한 역사적 책임이며, 국민이 그에게 기대하는 진정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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