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도전> 이종덕 금호화성(주) 대표이사 회장 (4)
수도권 500만 향우 이끌며 '고향사랑' 실천 ||2018년 재경광주전남향우회장 맡아||전국 7개 도민회와 '지방소멸' 대응도
입력 : 2020. 02. 05(수) 12:42

2018년 5월 재경광주전남향우회장 취임식에서 향우회기를 전달받은 이종덕 회장.

 여느 향우들과 마찬가지로 이종덕 회장도 사업적으로 안정을 찾아가자 향우회를 찾기 시작했다. 상경 러시가 이뤄지던 1960~1970년대에 고향을 떠나온 향우들은 대부분 초기에는 본인의 자리를 잡느라 눈코뜰새 없이 일을 하고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이르면 향우회에 관심을 갖게 된다.

 40대 초반이던 1980년대 중반 중년 이종덕은 향우회에 발을 들여놓는다. 순천 출신인 이종덕은 재경순천향우회 뿐만 아니라 수도권 향우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재경광주전남향우회에도 참여한다. 이후 공군참모총장과 한국군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장지량 재경광주전남향우회회장(제24대, 1996.4.~1998.3.)때부터 향우회 부회장과 장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한다. 장 회장은 당시 이종덕에게 한국군사학회에 함께 참여할 것을 제안하는 등 그를 각별히 아꼈다. 실제로 그는 (사)한국군사학회 상임이사(1999~2006년)로도 활동했다. 물론 그도 장 회장을 각별히 따랐다. 그래서 장 회장의 아들인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회장이 모임자리에서 만나면 "아버지를 잘 모시는 분"이라며 주요자리에 앉도록 권하기도 했다.

 이종덕은 2001~2005년 재경광주전남향우회의 청년회 회장직을 연임하며 젊은 층 향우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동시에 재경순천향우회 회장(2002~2008년)을 맡아, 회사일을 제외에는 거의 향우회 일에 전념하게 된다. 이 시기에 재경광주전남향우회도 격변기를 맞는다. 호남 출신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인 2000년 이후 기존 고위공직자 출신들이 주류를 이뤘던 향우회장을 경제계 출신들이 맡게 된다. 그러면서 조직 장악력이 느슨해졌고 향우회 조직도 다소 흔들리게 된다. 그러자 이종덕은 '직언하는 향우회원'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또 공명정대한 향우회 운영을 외쳤던 것. 그의 사심없는 노력과 열정적 활동은 향우회에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2004년 재경광주전남 향우로서는 가장 명예로운 상인 '자랑스런 광주전남인 상'을 수상하게 된다.

 전남도지사를 지낸 허경만 지사를 제30대 회장(2008. 5~2010. 5.)으로 추대하는 데는 그의 역할이 컸다. 동향인데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허 지사를 설득, 회장으로 모셨던 것. 그는 허 회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허 회장 재임시절 향우회내 주요보직을 고사한다.

이후 제31대 김윤중 회장(2010. 6.~2012. 5)때부터 수석부회장직을 맡아 본격적으로 회장을 보좌하며 향우회의 큰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2018년 5월 31일 제35대 재경광주전남향우회 회장으로 취임, 수도권 500만 향우들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 회장은 단순한 향우회 조직운영을 넘어, 전남 등 인구급감을 겪고 있는 전국 농어촌의 고향살리기 운동에 앞장서고 나섰다. 이 회장은 광주·전남, 전북, 강원, 경남, 대구·경북, 제주, 충북 등 재경 7개 도민회(향우회)와 함께 전국도민회연합을 구성, 경북도민회장과 함께 공동의장을 맡아 우리나라 농어촌의 가장 큰 문제점인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지방소멸 대응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11월 14일 국회에서 여야의원 11명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갖고 국회가 특별법 제정에 나서줄 것을 건의했고, 11월 20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지방소멸 대응 특별법 제정 대토론회'를 개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울=강덕균 선임기자 dkkang@jnilbo.com

dukkyun.kang@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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