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에 자리 양보해 주세요"…광주 지하철 따뜻한 '배려'
출근길 만석에도 임산부석 '공석'
음성안내시스템 도입 긍정적 반응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 등 목적
설문 결과, 음성 안내 찬성 74.9%
"자리 비워두는 시민의식 인상적"
입력 : 2025. 06. 11(수) 17:58
11일 오전 광주광역시 지하철 1호선 열차 내에서 승객들이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둔 채 좌석에 앉아 있다. 정승우 기자
11일 오전 광주광역시 지하철 1호선 열차 내에서 승객들이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둔 채 좌석에 앉아 있다. 정승우 기자
“고객님께서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셨습니다. 임산부가 승차하면 자리를 양보해 주시길 바랍니다.”

11일 오전 광주광역시 지하철 1호선 송정공원역에 열차가 들어서자 출근길 승객들이 탑승하며 빈자리가 있는지 살폈다. 열차 안은 어느새 승객들로 붐비며 좌석이 빠르게 채워졌다. 그러나 분홍색 시트의 임산부 배려석만은 예외였다. 출근 시간 시민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데도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뒀고, 자리에 앉지 못한 승객들은 한쪽에 서서 이동했다. 이날 열차에 설치된 모든 임산부 배려석에는 단 한 명의 승객도 앉지 않았다.

임산부 배려석 위에는 검은색 스피커가 눈에 띄었다. 승객 한 명이 자리에 앉자 적외선 센서가 감지, 잠시 후 “고객님께서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셨습니다”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고 승객은 민망한 듯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해외에서 대학을 다녀 오랜만에 광주를 찾은 승객은 임산부 배려석 음성 안내 시스템을 보고 신기한 기색을 내비쳤다.

안모(22)씨는 “임산부 배려석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안내 음성까지 나오는 건 처음 봤다”면서 “단순하게 자리만 마련하는 걸로 그치지 않고 세심히 신경쓴 것 같아 돋보인다”고 말했다.

최모(71)씨는 “배려석인지 모르고 자리에 앉았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평소 교통약자에게는 자리를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임산부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가 없더라도 만일을 대비해 자리를 비워두는 시민 의식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11일 오전 광주광역시 지하철 1호선 열차 내에서 승객들이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둔 채 좌석에 앉아 있다. 사진은 임산부 배려석 안내 문구. 정승우 기자
지난해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임산부와 일반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산부 배려 인식 및 실천 수준 설문조사’ 결과, 임산부의 92.3%가 대중교통에서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 중 57.6%는 이용 시 불편을 느꼈다고 답했다. 주요 이유로 ‘일반인이 자리에 앉은 뒤 비켜주지 않아서’가 73.1%로 가장 높았다. 또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질문에 일반인 응답자 73.1%가 ‘비워두어야 한다’고 답했다.

지하철과 버스 내 임산부 배려석이 도입된 지 어느덧 10년이 넘어선 가운데 광주교통공사가 자체 개발한 시스템은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광주교통공사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에도 음성 안내 시스템을 칭찬한다는 글을 종종 확인할 수 있었다.

광주교통공사에 따르면 임산부 배려를 위한 음성 안내 시스템 설치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임산부 배려 문화 조성 및 인식개선 등을 위해 추진됐다. 지난 2023년 광주 시민 대상으로 임산부 배려석 음성 안내 시스템 확대 설치 찬·반 여부 및 안내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찬성률 74.9%를 기록했다.

도입 초기에 자체 개발로 인한 기술력 부족으로 센서 오작동 및 안내 음성이 반복 송출됐지만 지속적으로 개선·보완을 거쳐 기술역량을 강화하고 예산 절감에도 도움이 됐다.

광주교통공사 관계자는 “임산부를 위한 배려가 실제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개선하고자 직원들이 고안해 자체적으로 개발한 음성 시스템을 도입하게 됐다”며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임산부 배려석을 모든 열차에 한 칸당 2개씩 설치를 확대했다. 앞으로도 교통약자에 대한 편의를 고려해 환경 개선에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승우 기자 seungwoo.jeong@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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