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자식'으로 불렸던 작가…택시 운행 통해 과거와 조우하다
[신간]밤의 사람들
이송우│빨간소금│1만5000만원
입력 : 2025. 05. 08(목) 17:49
밤의 사람들
책 ‘밤의 사람들’을 펴낸 이송우 작가가 야간 택시를 운행하며 촬영한 서울시 도로 야경. 빨간소금 제공
이송우 작가의 부친인 이창복씨. 빨간소금 제공
‘빨갱이’는 공산주의자를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지만, 국내에서는 유독 쓰임새의 범위가 무분별하다. 진보세력이나 특정 지역민을 모조리 ‘빨갱이’로 매도하기도 하고 격양된 대북 관계 개선을 위해 평화적인 정책을 내세우면 기다렸다는 듯 이 단어가 튀어나온다. ‘빨갱이 자식’으로 불리며 국가폭력의 잔재를 몸소 감내해야만 했던 한 인물이 있다. 15년 전 택시 운전사 자격증을 딴 그는 다양한 이들과의 만남과 대화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떠올린다. 작품은 야간 택시를 운행하며 만난 우리 시대 사람들과의 대화로 조우한 과거의 자신을 엮어냈다.

신간 ‘밤의 사람들’의 저자 이송우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회부돼 사형수를 지냈던 부친 이창복의 아들이다. 험난한 성장기를 보냈을 거라 짐작은 되지만, 실상은 더욱 충격적이다. 나무에 묶인 채 다가오는 밤에 몸서리쳐야만 했고, 나고 자란 곳을 떠나야 했으며 누구에게도 이러한 가족사를 털어놓을 수 없어 늘 두려움에 시달렸다.

이처럼 어릴 적부터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으로 가까운 친구들에게 말 한마디 못 했던 오랜 시간은 청소년기의 중요한 심리 과제인 ‘사회화’를 제대로 배우고 익히지 못한 것으로 이어졌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 인간관계, 협업 구조 등에 눈과 귀를 연 그는 이제 야간 택시를 운전하며 불편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반갑게 인사하고 승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무거운 짐을 싣고 내린다. 외진 길은 후진으로 나오는 한이 있어도 진입한다. 회차 시간이라도 길가의 노인은 태운다.”

봉인에서 해제된 고통스러운 기억을 통해 마주한 것은 성숙해진 자신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생활인이자 시인인 작가가 야간 택시를 운행하면서 만난 이들은 하루치 노동을 마친 땀내 나는 청년들부터 콜을 부르지 못해 손을 들어 택시를 잡는 노인들까지 다양했다. 연인과의 면회 시간에 맞춰 서울구치소로 가는 길을 재촉하는 여성한테서 어릴 적 대구교도소에서 아버지를 만난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이제는 야근하지 않는 광고회사 국장한테서는 큰 기업에서 대여섯 시간만 자며 일하던 자신의 옛 모습을 떠올린다.

그가 15년 전 택시 운전사 자격증을 따게 된 배경에는 전 직장에서 “승진이 사실상 어렵다”라는 내용을 통보받은 게 주요했다.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난 그는 프리랜서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다 2023년 중반에 삼성 반도체 사태가 벌어지며 삼성전자의 프로젝트가 끊기다시피 했다. 이에 택시 운행을 병행하게 됐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야간 택시를 운행하면서 만난 승객들은 저마다의 서사와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미술을 전공하고 이를 생업으로 삼았던 대리기사, 대기업 임원 출신이지만, 이태원 참사로 자식을 잃고 밤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대리기사, 아이들이 걱정할까 봐 몰래 병원을 가는 중년 여성 등이다. 그들의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고 저자는 전한다.

‘빨갱이 자식’으로 자라면서 겪어야 했던 견딤의 정서로 쓰인 이 책은 보통 사람들과 나눈 대화 묶음이자,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과 나눈 대화록으로 다가온다.

글쓴이의 견딤은 인혁당재건위 사건 피해 생존자의 아들로 자라면서 겪은 경험의 산물이자 지독한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뼈대다. 그래서일까 작가 이송우는 남을 섣불리 낙관하거나 쉽게 비난하지 않는다. 작가는 “아직 우리는 견디는 중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견딤을 해내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를 통한 성장 과정은 변화의 크기와 성숙의 깊이를 떠나 종종 되짚어 과거의 자신을 조우할 가치는 있지 않을까.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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