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5주년>80년 5월27일 광주의 새벽, 민주주의 승리 이끌어
●소년이 왔다,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
<1>프롤로그
‘5·18 최후의 항전’ 의미 재조명
죽음으로 불의에 맞선 광주정신
12·3비상계엄 시민 저항 이끌어
‘새벽광장’ 매년 항쟁의 밤 기려
젊은세대 문화·예술 통한 공감대
<1>프롤로그
‘5·18 최후의 항전’ 의미 재조명
죽음으로 불의에 맞선 광주정신
12·3비상계엄 시민 저항 이끌어
‘새벽광장’ 매년 항쟁의 밤 기려
젊은세대 문화·예술 통한 공감대
입력 : 2025. 05. 12(월) 18:49

매년 5월 29일 구 전남도청 민원실 앞에서 5월 마지막 행사로 부활제가 열린다. 사진은 2017년 5월 27일 부활제에 앞서 시민들이 열사들을 기리며 조형물 앞에 헌화한 화분들이 놓여 있다. 김양배 기자
1980년 5월27일 새벽, 고립무원의 도시에 피로 각인된 항쟁의 기억은 단순한 광주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 존엄과 자유, 공동체의 정의를 위해 ‘죽음’조차 기꺼이 감수한 이들이 새겨놓은 자랑스런 이정표였다. 그들은 압도적으로 패배했지만 결코 지지 않았고, 처참히 쓰러졌지만, 영원히 소멸되지 않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한다”는 말처럼 그날의 희생과 저항, 그리고 거스를 수 없었던 운명은 한국 민주주의의 초석이 됐고, 그 정신은 전국의 광장과 거리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났다.
지난 연말 윤석열 정부가 자행한 44년만의 불법 비상계엄 시도 앞에서 오월 영령들은 오늘의 우리를 다시 광장으로 불러냈고 또 한 번 위대한 승리를 이끌었다.
본보는 5·18 45주년을 맞아 ‘과거의 희생’이 어떻게 ‘현재의 저항’으로 부활했는지 연속 보도를 통해 되짚어 본다. 편집자주
5·18 민주화운동 최후의 날로 불리는 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을 비롯한 YMCA, YWCA, 전일빌딩 등에 남아 있던 수백명의 시민군은 알고 있었다. 결국 자신들이 패배할 것임을.
“탱크를 동원해 진압하겠다면 우리는 어차피 질 수밖에 없겠죠. 그러나 그 같은 강경진압이 오늘의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자신들의 죽음이 살아 있는 민주주의 역사로 기록되리라 믿었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의 말처럼, 5월27일 항쟁의 ‘끝’은 민주주의의 ‘시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들은 끝내 그 자리에 남아 계엄군의 총알을 온몸으로 받아냈고, 죽음으로써 지금의 우리를 살렸다. 스스로를 거름으로 광주와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워냈다.
그리고 오늘, 민주주의를 위해 광장에 모인 수십만 국민들의 모습에서 1980년 광주의 봄 한가운데 서 있던 그들을 만났다.
‘비상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은 물론 ‘국군 통수 의무’를 위반하고 ‘국회와 사법부, 국민의 광범위한 기본권’(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 선고 결정문 중)을 침해한 12·3 비상계엄은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던 전두환 신군부의 공포를 소환시키기에 충분했다.
국민들은 국회 유리창을 깨부수던 군인들의 모습에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가 재현되고 있다는 충격을 받았지만, 집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는 대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목숨을 바쳐 불의에 맞섰던 ‘광주 정신’을 되살려냈다.
1980년 봄, 외부와 단절된 광주에서 어머니들이 골목마다 가마솥을 내걸고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먹였듯, 2025년 겨울 광장에서는 시민들이 선결제해 둔 김밥과 커피가 추위를 녹여냈다. 1980년 봄, 열흘간의 항쟁 중 경찰의 치안유지 활동 없이도 폭력이나 강·절도 등 범죄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처럼, 2025년 겨울 광장에서는 반짝이는 응원봉 불빛과 함께 수십만명의 목소리로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졌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내 지켜낸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피와 함께 산화한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DNA로 새겨져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결의로 부활했다.
하지만 그들의 피로 세워진, 광장에서 승리의 환호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는 오늘도 여전히 위태롭고 불안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억으로, 문학으로, 예술로, 작품으로, 기록으로 그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학생 ‘동호’를 중심으로 끝나지 않은 5월의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 ‘소년이 온다’ 저자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맞물려 5·18 민주화운동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한강은 소설 에필로그를 통해 “그들을 희생자라고 생각한 것은 내 오해였다”고 말한다. 5월27일 그들의 죽음이 희생이 아닌, 항쟁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소년이 온다’가 주목받기 전에도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예술적 움직임은 지속돼 왔다. 집단적인 예술활동으로 윤상원 열사와 전남도청 최후 항전을 기억하기 위해 기획된 단체 ‘새벽광장’은 올해도 5월26일 오후 6시부터 27일 오전 6시까지 ‘그날’을 기린다.
새벽광장을 이끄는 인물 중 하나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연출한 진모영(50) 감독은 이날 시민들과 함께 5월27일의 새벽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다큐멘터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문화·예술을 통해 5·18을 접한 젊은 세대는 새로이 ‘광주’를 읽기도 한다.
‘소년이 온다’를 읽기 전 5·18 민주화운동을 그저 ‘슬픈 역사’로 생각했다던 이서연(18)씨는 “소설 속 동호, 정대, 은숙이 지금 제 옆을 걷는 친구들처럼 보였다. 그들이 매 걸음마다 죽음을 마주했다는 걸 떠올리니 그 무게를 감히 가늠하기도 어려웠다”며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지켰던 그 순간, 비로소 소설 속 모든 문장의 의미를 이해할 것 같았다. 광주에서 시작된 저항의 맥박은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이미 과거의 슬픈 사건에 머무르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태도를 되묻게 만드는 실체이자,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으로 기억되고 있다.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소년이 온다’ 중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조차 싫어했던 어린 동호가 엄마 손을 있는 힘껏 밝은 쪽으로 끌고 가며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밝은 곳으로, 꽃이 핀 곳으로 끊임없이 나아간다.
그 발걸음은 억압과 어둠을 거부하고, 정의를 향해 나아갔던 5·18 광주의 정신을 닮아 있다. 어둠 속에서도 끝내 빛을 향해 나아가려 했던 그들의 외침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길이 되고 있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
지난 연말 윤석열 정부가 자행한 44년만의 불법 비상계엄 시도 앞에서 오월 영령들은 오늘의 우리를 다시 광장으로 불러냈고 또 한 번 위대한 승리를 이끌었다.
본보는 5·18 45주년을 맞아 ‘과거의 희생’이 어떻게 ‘현재의 저항’으로 부활했는지 연속 보도를 통해 되짚어 본다. 편집자주
5·18 민주화운동 최후의 날로 불리는 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을 비롯한 YMCA, YWCA, 전일빌딩 등에 남아 있던 수백명의 시민군은 알고 있었다. 결국 자신들이 패배할 것임을.
“탱크를 동원해 진압하겠다면 우리는 어차피 질 수밖에 없겠죠. 그러나 그 같은 강경진압이 오늘의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자신들의 죽음이 살아 있는 민주주의 역사로 기록되리라 믿었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의 말처럼, 5월27일 항쟁의 ‘끝’은 민주주의의 ‘시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들은 끝내 그 자리에 남아 계엄군의 총알을 온몸으로 받아냈고, 죽음으로써 지금의 우리를 살렸다. 스스로를 거름으로 광주와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워냈다.
그리고 오늘, 민주주의를 위해 광장에 모인 수십만 국민들의 모습에서 1980년 광주의 봄 한가운데 서 있던 그들을 만났다.
‘비상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은 물론 ‘국군 통수 의무’를 위반하고 ‘국회와 사법부, 국민의 광범위한 기본권’(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 선고 결정문 중)을 침해한 12·3 비상계엄은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던 전두환 신군부의 공포를 소환시키기에 충분했다.
국민들은 국회 유리창을 깨부수던 군인들의 모습에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가 재현되고 있다는 충격을 받았지만, 집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는 대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목숨을 바쳐 불의에 맞섰던 ‘광주 정신’을 되살려냈다.
1980년 봄, 외부와 단절된 광주에서 어머니들이 골목마다 가마솥을 내걸고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먹였듯, 2025년 겨울 광장에서는 시민들이 선결제해 둔 김밥과 커피가 추위를 녹여냈다. 1980년 봄, 열흘간의 항쟁 중 경찰의 치안유지 활동 없이도 폭력이나 강·절도 등 범죄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처럼, 2025년 겨울 광장에서는 반짝이는 응원봉 불빛과 함께 수십만명의 목소리로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졌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내 지켜낸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피와 함께 산화한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DNA로 새겨져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결의로 부활했다.
하지만 그들의 피로 세워진, 광장에서 승리의 환호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는 오늘도 여전히 위태롭고 불안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억으로, 문학으로, 예술로, 작품으로, 기록으로 그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학생 ‘동호’를 중심으로 끝나지 않은 5월의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 ‘소년이 온다’ 저자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맞물려 5·18 민주화운동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한강은 소설 에필로그를 통해 “그들을 희생자라고 생각한 것은 내 오해였다”고 말한다. 5월27일 그들의 죽음이 희생이 아닌, 항쟁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소년이 온다’가 주목받기 전에도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예술적 움직임은 지속돼 왔다. 집단적인 예술활동으로 윤상원 열사와 전남도청 최후 항전을 기억하기 위해 기획된 단체 ‘새벽광장’은 올해도 5월26일 오후 6시부터 27일 오전 6시까지 ‘그날’을 기린다.
새벽광장을 이끄는 인물 중 하나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연출한 진모영(50) 감독은 이날 시민들과 함께 5월27일의 새벽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다큐멘터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문화·예술을 통해 5·18을 접한 젊은 세대는 새로이 ‘광주’를 읽기도 한다.
‘소년이 온다’를 읽기 전 5·18 민주화운동을 그저 ‘슬픈 역사’로 생각했다던 이서연(18)씨는 “소설 속 동호, 정대, 은숙이 지금 제 옆을 걷는 친구들처럼 보였다. 그들이 매 걸음마다 죽음을 마주했다는 걸 떠올리니 그 무게를 감히 가늠하기도 어려웠다”며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지켰던 그 순간, 비로소 소설 속 모든 문장의 의미를 이해할 것 같았다. 광주에서 시작된 저항의 맥박은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이미 과거의 슬픈 사건에 머무르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태도를 되묻게 만드는 실체이자,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으로 기억되고 있다.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소년이 온다’ 중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조차 싫어했던 어린 동호가 엄마 손을 있는 힘껏 밝은 쪽으로 끌고 가며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밝은 곳으로, 꽃이 핀 곳으로 끊임없이 나아간다.
그 발걸음은 억압과 어둠을 거부하고, 정의를 향해 나아갔던 5·18 광주의 정신을 닮아 있다. 어둠 속에서도 끝내 빛을 향해 나아가려 했던 그들의 외침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길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