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58>드러낸 상처는 곪지 않는다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입력 : 2024. 11. 03(일) 18:21
트레이시 에민 작 ‘나와 잤던 모든 사람’. 이선 제공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아픔과 상처, 치부, 사생활을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한다. 하지만 어떤 예술가들은 때로는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예술로 다양하게 표현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유도하기도, 스스로 치유하기도 한다. 그것은 보편적인 미술사에서도 이야기되는데, 인간의 상처와 연약함을 드러내 예술적 감각으로 유일한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인간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전하고 있다. 지난 칼럼들의 주인공이었던 예술가로 프리다 칼로, 쿠사마 야요이, 니키드 생 팔, 루이스 브루주아 등도 이에 속한다.

영국 현대미술 작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영국 출생, 1963~ )은 어쩌면 그런 사적인 자기 고백을, 예술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며 구현해 나가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알려졌고,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 young British artists)소속 대표 영국 예술가이다. 그는 찰스 사치의 전시회에서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1963~1995년)’로 세상에 주목을 받고, 이후 첫 개인 전시회에서 ‘나의 침대(1999년)’ 로 ‘터너 프라이즈’ 후보에 오르며 명성을 얻었다.

영국 사회의 전통적인 고정관념들, 조심성 있고 공손하며 사생활을 존중하는 권위적이고 사회적 분위기를 여성 예술가인 트레이시 에민은 저격한다. 그리고 그런 금기시되고 사적인 고백적 이야기를 드로잉, 설치, 판화, 비디오아트, 야외설치, 네온사인, 아플리케 의자, 텐트 등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통해 작품 세계를 넓히며 중요한 현대 미술작가로 자리 잡아 활동해 나가게 된다.

에민은 1963년 영국 런던 마게이트라는 저소득층 상대의 해변 휴양지에서 성장했다. 그는 터키 출신의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출신으로 생긴 별명 중 하나인 ‘마게이트 출신의 미친 트레이시’로 불렸다. 사실 그의 아버지 엔버 에민과 어머니 팸 카신은 불륜 관계였으며, 그래서 가정의 불화가 많았다. 남편과 결별 후 에민의 어머니는 호텔 여종업원이나 나이트클럽 등에서 일하며 에민과 그녀의 남동생을 어렵게 키웠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 어머니의 애인에 의해 여러 차례의 성 학대를 받았으며, 13세에 강간을 당한 후 집을 나와 방황했다. 두 번의 낙태 수술과 한 번의 유산을 겪었으며 이는 폭음과 흡연, 심한 우울증, 그리고 자살 시도로 이어졌다. 이후 우연한 계기로 심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만나게 된 무료 예술 교육프로그램을 접하며 자신의 꿈을 예술가로 정하고 공부를 시작한다.

그는 작업의 주제로 자신의 사적인 경험, 상처, 생각, 아픔, 철학 등을 작품에 가감 없이 드러냈다. 너무나 솔직해서 때로는 무례하기까지 하다. 그는 자신의 사생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서 현대미술 그리고 예술을 통해 세상에 나온 것은 작품이면서 마음의 초상화인 것이다.

트레이시 에민 작 ‘나와 잤던 모든 사람’. 이선 제공
1997년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의 전시회에서 보여줬던 ‘나와 잤던 모든 사람’은 1963~1995년 동안 텐트에서 자신과 잤던 102명 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내부가 수 놓여 진 캠핑용 작은 텐트이다. 이름 중에는 사랑했던 연인도 있지만, 어린 시절 자신의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 어린 친구들 또한 자신이 유산, 낙태로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죽은 아이의 이름까지도 포함돼 있다.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인연, 좋은 기억, 나쁜 기억, 그리움, 외로움, 사랑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 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사치 갤러리의 소유였는데 2004년 화재로 더 이상 실제 작품을 볼 수 없게 됐다.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들은 그 작품(텐트의 이름들)을 보기 위해 텐트 안으로 몸을 웅크리고 기어들어 가야만 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들은 어쩌면 자신 그리고 타인에 대한 또는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과 상처에 대한 공감으로 받아들여졌고, 많은 이들이 그의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되기 시작했다.

이후 작업들은 다양한 색감과 직접적인 묘사가 담긴 페인팅과 드로잉들로 이어져 그의 걷잡을 수 없는 감정과 시선을 표현하기에 충분했고, 그의 새로운 작업을 기다리는 미술계의 팬들까지 생겨났다.

트레이시 에민 작 ‘나의 침대’. 이선 제공
마지막으로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이자 가장 잘 알려진 ‘나의 침대’는 실제 에민이 사용했던 침대를 미술관에 설치한 것으로 매트리스, 얼룩이 묻은 시트와 베개, 방종의 흔적인 더러운 속옷과 찢어진 스타킹, 누군가가 사용한 콘돔, 빈 보드카 병, 담배꽁초, 슬리퍼 등으로 구성됐다. 즉 예술가의 손에 선택돼 만들어진 조각이 아닌, 기존 재료의 선택을 마르셀 뒤샹(* 20세기 개념 미술의 선구자. 대표 작품 ‘샘’, ‘자전거 바퀴’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형식의 기성품으로 대체해 작가 스스로가 선택한 물건들이자 개념이었다.

그 물건들은 특정한 장소 즉 미술관이라는 화이트 큐브 공간에서 역할과 기능을 작동했는데 이것은 작가의 ‘성차별, 상실, 질병, 다산, 성교, 임신과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었다.

이러한 ‘나의 침대’ 작품 제작 방식을 프랑스어로 ‘아상블라주(assemblage)’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모으기, 집합, 조립’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일상적인 생활용품, 음료수병이나 캔 같은 폐품 등 다양한 재료를 예술가가 재구성 및 재조합해 미술작품을 등장시키고 만드는 기법, 또는 그 기법으로 만든 작품을 의미한다. 평면적인 회화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기법으로 ‘콜라주’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콜라주가 평면적인 것에 비해 ‘아상블라주’는 삼차원 입체 작품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아상블라주’는 20세기 초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 콜라주, 미래주의나 다다, 초현실주의 같은 미술운동을 통해 발전했다. 그려지거나 조각된 것이 아닌 긁어모은 것으로서 전부 내지 일부가 자연물 또는 공업 제품이거나 미술을 전혀 의도하지 않고 만들어진 물건들의 집합체이다.

그런 논란 속에서 트레이시 에민의 ‘나의 침대’ 작품은 경매에서 한 젊은 여성 예술가의 상처와 고통스러움을 담고 있는 순간을 설치 조각 작품으로 소개하며, 경매됐고, 2000년에 영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컬렉터인 찰스 사치에 15만 파운드에 팔렸다. 그리고 그 광경을 많은 사람들이 보게 돼 이 작품은 현대미술에 중요한 작품으로 기록됐다. 이후 많은 언론에 노출된 작가는 스타 예술가의 반열에 오르며 생방송 취중 인터뷰를 하는 등 논란을 겪기도 했고, 그 논란으로 불량소녀, 사고뭉치 예술가의 이미지로 새로운 여성 예술가의 아이콘이 됐다.

그동안의 에민의 작업은 단순하게 현대 미술 장르와 재료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넘어 가장 사적인, 금기시되는 이야기와 자신만의 철학을 사회적 메시지로 전하고 있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했고 그의 작업은 이제 더 이상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 미술씬과 대중들에게 또 다른 개념 그리고 고정관념의 새로운 전환을 증명하며 예술의 가능성을 공유하는 주제가 되었다. 그는 현재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강의와 현대 미술 강연자로도 활동하는데 ‘예술의 자서전적 관계와 주관성’에 대한 주제가 주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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