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56>움직이는 조각, 이미지의 확장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입력 : 2024. 08. 18(일) 18:46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 작가와 설치 작품 사진.
아름다움의 범주가 흔히 통용되는 것은 그것 이상을 증명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을지 모른다. 사회적 쓸모=가치를 파괴하고, 나아가 고정관념에 저항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윤혜정의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을 통해 불안 속에 있는 19인의 예술가들과 나의 방식으로 인간다운 생(生)에 기여하는 방식을 배운다. 또한 우리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미술 영역에서 창작을 구현하는 삶을 이끌었던 예술가들을 통해 다름의 방식으로 고정관념을 깨는 것을 현대미술에서는 자주 목격된다.
이번 쉰여섯번째 칼럼은 ‘모빌’의 창시자이자 당시 좌대 위에 놓여지던 조각의 형식을 탈피하고 움직이는 미술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 미국 조각가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 1898~1976년)의 삶과 대표 작품을 소개한다.
움직이는 실내장식 ‘모빌(mobile)’은 역사적 발명품의 발단이 예술품이다. ‘모빌’이라는 이름의 창시자가 현대미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고, 그 ‘모빌’은 바로 조각가 ‘알렉산더 콜더’에서 탄생했다. 화가인 어머니와 조각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칼더는 공과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콜더는 어릴 때부터 예술적 영감이 뛰어났고, 특히 조각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여덟 살이던 1906년엔 누나에게 장난감과 보석을 만들어주었고, 크리스마스엔 구부러지는 브라스 시트로 개와 오리 조각을 만들어 부모에게 선물했을 정도다. 콜더는 그 후 ‘Calder Jewelry’라는 이름으로 쥬얼리를 만들었고, 대부분 철사나 구리 등 저렴한 재료를 이용한 장신구는 가격대도 높지 않아 당시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을 즐길 수 있었다. 한국에서 2014년 예술의 전당과 국제갤러리에서 ‘웨어러블 아트(wearable art)’, 즉 착용할 수 있는 예술 작품으로 분류되는 그의 쥬얼리에 주목한 전시를 선보였다. 30대까지 자동차 기술자, 도안사, 능률기사, 기계판매원, 지도제작자, 기계디자인의 보조로 유욕, 코네티컷, 미주리, 오하이오, 버지니아 곳곳에서 활동하다 1923년 뉴욕의 미술학교 아트스튜던츠 리그에서 회화를 공부하였다.
1916-1936년에 파리에 머물면서 피에트 몬드리안, 호안미로, 마르셀 쉬샹과 친해지면서 그들이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한다. 1927년에 철사·나무 조각·종이·가죽 등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서커스 단원과 동물들로 서커스 공연을 연출하였는데,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 장난감 동물들과 곡예사들의 묘기조각에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특히 몬드리안의 작업에 압도되어 “몬드리안의 작품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였고, 구체적 표현이 ‘움직이는 조각(mobile)’이었다. 그의 모빌은 조각을 좌대(座臺)와 양감에서 영원히 해방시켰다.
알렉산더 콜더가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 애시캔(Ashcan) 화풍의 구상화를 그렸다. 그러다 점점 추상에 매료됐고, 1930년대 초반에 완전히 추상적인 구성 방식으로 키네틱 조각을 완성했다. 그는 처음엔 크랭크, 도르래, 모터 등을 장착해 기계 동력으로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엔지니어로 일한 적이 있는 그가 기계적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별다른 변수 없이 고정적으로 반복될 뿐인 기계적 움직임에는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보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색다른 방식을 찾던 그의 연구는 기계장치 없이 공기와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모빌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추상적 구성 방식으로 완성한 키네틱 조각 모빌은 처음엔 크랭크, 도르래, 모터 등 기계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했지만 이후엔 기류, 빛, 습도, 사람과의 상호 작용에 반응해 움직였다. ‘Hanging Spider’처럼 조각을 천장이나 벽에 걸어 부드러운 회전력과 기발한 제스처, 정교한 작동 방식을 뽐냈다. 와이어에 매달린 금속 조각은 공간 안에서 공기의 흐름에 따라 균형을 잡으며 시시각각 변화해 정말로 거미가 다리를 움직이는 듯한 환영을 선사한다. 균형 잡힌 구성 요소와 고유한 운동 시스템을 지닌 이 작품을 통해 알렉산더 콜더는 조각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기존 관념을 깼다. 조각의 기본적 특징인 동세는 유지하면서도, 시간성과 공간성을 더한 혁명적 예술을 창조한 것이다.
“움직이는 세계를 반영하기에 미술은 너무 정적이다. 모빌은 삶의 기쁨과 경이로움으로 춤추는 한 편의 시다. A mobile is a piece of poetry that dance with the joy of life and surprise.”
알렉산더 콜더의 작품은 단순히 조각의 동세와 진폭을 맞추는 단계를 넘어 완성도 높은 균형 감각이 도드라진 시기다. 이때 선보인 ‘별자리’ 시리즈는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구성이 특징이지만, 재료 면에서도 이전 작품과 차별화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작품의 주재료인 금속이 부족해지자 나무, 와이어, 페인트 등 구하기 쉬운 재료로 조각을 만들곤 했다. ‘별자리’ 시리즈도 나뭇조각을 와이어로 연결한 작품이다. 집중적으로 제작한 ‘별자리’ 시리즈는 공중 팽이, 핀, 병 모양의 조각을 함께 구성해 다양한 변주를 낳기도 했다. 1976년 뉴욕에서 78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알렉산더 콜더가 만든 크고 작은 스태빌은 북미와 유럽 전역의 도시에서 여전히 새로운 미감을 전하고 있다.
1935년 이후 모빌은 기류에 움직이는 쪽으로 이동하여 가는 철사에 연결된 철판으로 된 형태들이 상호 균형의 원리를 따라 계속해서 움직이는 조각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콜더는 미국이 낳은 훌륭한 조각가의 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고, 1952년에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 전람회에서 조각 대상을 받기도하였다. 1960년대 이후 대형조각 붐이 일어나면서 그의 작품들은 비행장·미술관·광장 등에 세워졌다.
여러 현대예술가와 달리 알렉산더 콜더는 미술계가 공들인 미술이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모빌이 예측 불가능하나 평형을 이루는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우연성으로 패턴을 바꾼다는 점에서 “우주”를 상상했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에 따르면, 콜더의 모빌은 언제나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현실의 임시성을 보여주며 모빌이 “수많은 나비들이 날아오르며 꽃가루를 낭비하는 자연, 맹목적으로 이어지는 인과 관계, 소심하고 주저하듯 더듬거리며 전개되는 자유로운 생각처럼 우리에게 드러나길 거부하는 불가해한 자연의 예민한 상징성”을 보여준다고 전하고 있다.
이번 쉰여섯번째 칼럼은 ‘모빌’의 창시자이자 당시 좌대 위에 놓여지던 조각의 형식을 탈피하고 움직이는 미술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 미국 조각가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 1898~1976년)의 삶과 대표 작품을 소개한다.
움직이는 실내장식 ‘모빌(mobile)’은 역사적 발명품의 발단이 예술품이다. ‘모빌’이라는 이름의 창시자가 현대미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고, 그 ‘모빌’은 바로 조각가 ‘알렉산더 콜더’에서 탄생했다. 화가인 어머니와 조각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칼더는 공과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콜더는 어릴 때부터 예술적 영감이 뛰어났고, 특히 조각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여덟 살이던 1906년엔 누나에게 장난감과 보석을 만들어주었고, 크리스마스엔 구부러지는 브라스 시트로 개와 오리 조각을 만들어 부모에게 선물했을 정도다. 콜더는 그 후 ‘Calder Jewelry’라는 이름으로 쥬얼리를 만들었고, 대부분 철사나 구리 등 저렴한 재료를 이용한 장신구는 가격대도 높지 않아 당시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을 즐길 수 있었다. 한국에서 2014년 예술의 전당과 국제갤러리에서 ‘웨어러블 아트(wearable art)’, 즉 착용할 수 있는 예술 작품으로 분류되는 그의 쥬얼리에 주목한 전시를 선보였다. 30대까지 자동차 기술자, 도안사, 능률기사, 기계판매원, 지도제작자, 기계디자인의 보조로 유욕, 코네티컷, 미주리, 오하이오, 버지니아 곳곳에서 활동하다 1923년 뉴욕의 미술학교 아트스튜던츠 리그에서 회화를 공부하였다.
1916-1936년에 파리에 머물면서 피에트 몬드리안, 호안미로, 마르셀 쉬샹과 친해지면서 그들이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한다. 1927년에 철사·나무 조각·종이·가죽 등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서커스 단원과 동물들로 서커스 공연을 연출하였는데,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 장난감 동물들과 곡예사들의 묘기조각에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특히 몬드리안의 작업에 압도되어 “몬드리안의 작품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였고, 구체적 표현이 ‘움직이는 조각(mobile)’이었다. 그의 모빌은 조각을 좌대(座臺)와 양감에서 영원히 해방시켰다.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 작 ‘조각을 위한 드로잉 작업과 철사 조각’. |
알렉산더 콜더가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 애시캔(Ashcan) 화풍의 구상화를 그렸다. 그러다 점점 추상에 매료됐고, 1930년대 초반에 완전히 추상적인 구성 방식으로 키네틱 조각을 완성했다. 그는 처음엔 크랭크, 도르래, 모터 등을 장착해 기계 동력으로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엔지니어로 일한 적이 있는 그가 기계적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별다른 변수 없이 고정적으로 반복될 뿐인 기계적 움직임에는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보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색다른 방식을 찾던 그의 연구는 기계장치 없이 공기와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모빌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추상적 구성 방식으로 완성한 키네틱 조각 모빌은 처음엔 크랭크, 도르래, 모터 등 기계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했지만 이후엔 기류, 빛, 습도, 사람과의 상호 작용에 반응해 움직였다. ‘Hanging Spider’처럼 조각을 천장이나 벽에 걸어 부드러운 회전력과 기발한 제스처, 정교한 작동 방식을 뽐냈다. 와이어에 매달린 금속 조각은 공간 안에서 공기의 흐름에 따라 균형을 잡으며 시시각각 변화해 정말로 거미가 다리를 움직이는 듯한 환영을 선사한다. 균형 잡힌 구성 요소와 고유한 운동 시스템을 지닌 이 작품을 통해 알렉산더 콜더는 조각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기존 관념을 깼다. 조각의 기본적 특징인 동세는 유지하면서도, 시간성과 공간성을 더한 혁명적 예술을 창조한 것이다.
“움직이는 세계를 반영하기에 미술은 너무 정적이다. 모빌은 삶의 기쁨과 경이로움으로 춤추는 한 편의 시다. A mobile is a piece of poetry that dance with the joy of life and surprise.”
알렉산더 콜더의 작품은 단순히 조각의 동세와 진폭을 맞추는 단계를 넘어 완성도 높은 균형 감각이 도드라진 시기다. 이때 선보인 ‘별자리’ 시리즈는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구성이 특징이지만, 재료 면에서도 이전 작품과 차별화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작품의 주재료인 금속이 부족해지자 나무, 와이어, 페인트 등 구하기 쉬운 재료로 조각을 만들곤 했다. ‘별자리’ 시리즈도 나뭇조각을 와이어로 연결한 작품이다. 집중적으로 제작한 ‘별자리’ 시리즈는 공중 팽이, 핀, 병 모양의 조각을 함께 구성해 다양한 변주를 낳기도 했다. 1976년 뉴욕에서 78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알렉산더 콜더가 만든 크고 작은 스태빌은 북미와 유럽 전역의 도시에서 여전히 새로운 미감을 전하고 있다.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an) 작 ‘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 Alexander Calder’ |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 작 ‘Rouge Triomphant(Triumphant Red)’. |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