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59>역사의 현장 그리고 사진의 힘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입력 : 2024. 12. 08(일) 17:18
아르노 피셔 작 ‘동베를린’. 이선 제공
“모두가 유죄인 곳에서는, 아무도 유죄가 아니다. 말하자면 집단적인 유죄의 고백은 범죄자를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실행 가능한 가장 탁월한 방어 수단이며, 그 범죄의 거대한 규모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데 대한 가장 탁월한 변명이다.”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중에서.
최근 눈과 귀로도 믿을 수 없는 현실들을 마주하고 있다. 영화보다 현대예술보다 더 비현실인 상황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이런 현실과 시대, 사회를 예술가들은 어떻게 마주하고 기록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시대적 사건들을 회화, 조각, 미디어, 영상 그리고 사진으로 기록하고 현장의 단서들을 파헤쳐가는 예술가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눈으로 관찰하는 방식보다 한 장의 사진은 실제 눈으로 보지 못한 상황과 내면의 풍경, 감정을 더욱 전달해 주는지도 모른다.
독일 사진작가 아르노 피셔(Arno Fischer, 1927~2011) 작품의 대부분은 독일민주공화국(GDR) 시기와 맞물려 있다.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기 직전인 1953년부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을 작가는 ‘분단된 베를린의 대표적 사진’으로 인정받으며 동서 베를린의 사회, 문화, 정치적 상황들을 기록한 사진 작품들은 ‘베를린 상황’이라는 주제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카메라를 메고 자신의 고향 베를린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약 7년 동안 동서 베를린의 평범한 일상과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습작 같은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베를린의 생생한 모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베를린의 동서 분단 이후 그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독일의 전쟁, 분단과 통일을 모두 목격한 예술가의 눈에 비친 ‘독일인’과 ‘독일 문화’의 생생한 증언이자 굳건한 삶의 기록으로 지난 역사의 부활이라는 의미로 남아있다. 사회적, 역사적, 예술적으로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과 예술을 굳건히 지켜온 작품은 여전히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사회적, 정치적 이념을 뛰어넘은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은 우리의 모습과도 겹쳐 보이며, 그의 사진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사진이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한국 사진작가 노순택(1971~)은 “사진에는 세 가지 기본 요소가 전제된다. 나, 기계적 장치(고급 DSR카메라 또는 스마트폰), 그리고 피사체. 셔터가 눌리는 순간, 이 세 가지는 서로를 옥죄기도, 구애하기도 하면서 ‘관계 맺기’를 한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근대사에서 역사적 사건과 예술을 말할 때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장소와 사건은 특별하다. 예전에는 ‘광주사태’라고 불리며 북한에서 침입한 사람들에 의해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졌었고, 1980년 5월18일에 광주에서 일어났던 사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법의 심판을 받기도 했다. 국가는 정권에 따라 역사적 의미가 달라지기도 했고, 요즘 시대의 학생들은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책 또는 영화를 통해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국민들이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것은, 광주에서 벌어졌던 일은 ‘북한에서 침입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한 국가를 책임지던 대통령이 자신의 말에 응하지 않을 시 국민들을 죽여도 된다고 지시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 그리고 수많은 무고한 광주시민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안개와도 같은 북한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자신이 하는 불법적인 일을 정당화했다. 여기에서 노 작가는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이 “제가 속한 세대에게도 지울 수 없는 멍울이자,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의 출발점이었다”고 언급했다.
‘망각기계 I - 죽은’에는 망월동 옛 묘역의 낡고 바랜 영정 사진이 담겨 있다. 2006년에 처음 시작된 이 연작은 6년 동안 작업이 진행되고 마무리됐다. 작가가 사진기에 담은 사진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원래의 모습을 잃고 변해버린, 희생된 이들의 얼굴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작가는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된 그들의 사진을 사진기에 다시 담았고, “자연스러운 훼손이 마치 그분들의 죽음을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묘지 옆에 조그맣게 놓여있는, 그 시간과 공간에 살지 않았다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 사람들의 영정사진은 작가의 사진기에 다시 담기며,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광주의 과거’를 다시 한번 상기한다. 그의 작품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광주에서, 광주민주화운동과 그날의 모습을 기억하는 방식을 담은 부분이다. 작가는 ‘망각기계 II - 죽지 않은’에서 시민군이 되어보는 체험행사에서 시민군 복장을 한 친구를 찍어주는 사람의 모습,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울고 있는 이들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기자들,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행사 등 ‘5·18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요즘의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전적으로 아름다울 수도, 전적으로 추할 수도 없는, 죽음을 기억하는 삶의 풍경’이라고 언급했다. “내 사진과 글이 나와 남을 다소 불편하게 하기를, 그 불편함이 생각의 부채질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간절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역사적으로 인정받고 광주를 향해 곪아있던 시선들이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이 현실 속에서도, ‘무언가 잊히고 있다는 생각, 여전히 왜곡되고 있다는 생각, 알맹이는 간데없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생각’, 그리고 ‘오월의 그날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 등이 든다고 말했다. 이 연작을 통해 작가는 광주의 이야기는 재조사돼 역사로 인정받고 있으나, 과거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민주주의를 얻고자 노력했던 정치인들이 현재에 와서는 다시금 폭력의 주체가 되는 비현실적인 현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우리에게 여전히 아직 밝혀지지 않고 왜곡돼 존재하는 ‘광주 오월의 기억’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시대가 어지럽고 혼탁할수록 좋은 예술가와 예술 작업들이 탄생한다고 이론가들은 말한다. 예술가들은 현실에서 찾을 수 없던 자유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탈출을 자신의 독자적인 작업을 통해 구원하고자 했다.
수년간 인공지능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를 이어 온 박평종 미학자는 “과거란 돌이킬 수 없지만, 똑같은 과거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폭력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그 배움의 실천의 한 형태가 폭력의 흔적을 더듬고 찾아내어 의식의 수면으로 띄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치열하게 역사를 배우는 중임이 틀림없다.
최근 눈과 귀로도 믿을 수 없는 현실들을 마주하고 있다. 영화보다 현대예술보다 더 비현실인 상황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이런 현실과 시대, 사회를 예술가들은 어떻게 마주하고 기록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시대적 사건들을 회화, 조각, 미디어, 영상 그리고 사진으로 기록하고 현장의 단서들을 파헤쳐가는 예술가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눈으로 관찰하는 방식보다 한 장의 사진은 실제 눈으로 보지 못한 상황과 내면의 풍경, 감정을 더욱 전달해 주는지도 모른다.
독일 사진작가 아르노 피셔(Arno Fischer, 1927~2011) 작품의 대부분은 독일민주공화국(GDR) 시기와 맞물려 있다.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기 직전인 1953년부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을 작가는 ‘분단된 베를린의 대표적 사진’으로 인정받으며 동서 베를린의 사회, 문화, 정치적 상황들을 기록한 사진 작품들은 ‘베를린 상황’이라는 주제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카메라를 메고 자신의 고향 베를린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약 7년 동안 동서 베를린의 평범한 일상과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습작 같은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베를린의 생생한 모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베를린의 동서 분단 이후 그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독일의 전쟁, 분단과 통일을 모두 목격한 예술가의 눈에 비친 ‘독일인’과 ‘독일 문화’의 생생한 증언이자 굳건한 삶의 기록으로 지난 역사의 부활이라는 의미로 남아있다. 사회적, 역사적, 예술적으로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과 예술을 굳건히 지켜온 작품은 여전히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사회적, 정치적 이념을 뛰어넘은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은 우리의 모습과도 겹쳐 보이며, 그의 사진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사진이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노순택 작 ‘광주망월동옛묘역’. 이선 제공 |
노순택 작 ‘망각기계 I - 죽은’. 이선 제공 |
특히 한국 근대사에서 역사적 사건과 예술을 말할 때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장소와 사건은 특별하다. 예전에는 ‘광주사태’라고 불리며 북한에서 침입한 사람들에 의해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졌었고, 1980년 5월18일에 광주에서 일어났던 사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법의 심판을 받기도 했다. 국가는 정권에 따라 역사적 의미가 달라지기도 했고, 요즘 시대의 학생들은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책 또는 영화를 통해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국민들이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것은, 광주에서 벌어졌던 일은 ‘북한에서 침입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한 국가를 책임지던 대통령이 자신의 말에 응하지 않을 시 국민들을 죽여도 된다고 지시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 그리고 수많은 무고한 광주시민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안개와도 같은 북한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자신이 하는 불법적인 일을 정당화했다. 여기에서 노 작가는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이 “제가 속한 세대에게도 지울 수 없는 멍울이자,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의 출발점이었다”고 언급했다.
노순택 작 ‘망각기계 # v-025’. 이선 제공 |
강홍구 작 ‘광주’. 이선 제공 |
수년간 인공지능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를 이어 온 박평종 미학자는 “과거란 돌이킬 수 없지만, 똑같은 과거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폭력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그 배움의 실천의 한 형태가 폭력의 흔적을 더듬고 찾아내어 의식의 수면으로 띄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치열하게 역사를 배우는 중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