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전남권 의대 설립, 어줍잖은 정치 논리 안된다
최동환 취재2부 선임부장
입력 : 2024. 06. 10(월) 19:05
최동환 취재2부 선임부장
전남지역의 최대 현안 중 하나는 ‘국립의과대학 설립’이다.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가장 많은데도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곳이다. 의대가 없어 의료 인력과 의료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전남은 매년 70만 명의 도민이 타 지역으로 원정 진료를 받으러 가는 불편을 겪어오고 있다. 이에 전남도는 지역의료계 인력난 해소와 의료 인프라 구축을 위해 지난 30여년 간 정부에 국립의대 유치의 필요성을 건의해 왔지만 외면을 받았다.

전남도민들의 30여년 숙원사업인 전남권 의대 설립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지난 3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전남 민생토론회였다.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이 자리에서 의대 설립을 제안했고, 윤 대통령이 “두 대학(목포대와 순천대) 중 한 대학을 선정해 의대 설립을 추진해달라”고 했다.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3월 20일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문 발표를 통해 “지역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신청하라”고 했고, 보건복지부는 “전남도 차원에서 의견을 정리해 건의하라”고 했다.

정부가 전남권 의대 설립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며 전남도민들의 30여년 숙원사업이 해결 기미를 보였지만 또 다른 암초를 만나 좌초될 지 우려된다. 전남도가 단일 의대안 마련을 위해 공모에 의한 추천 방식을 추진해 10월 말께 정부에 추천 대학을 보고할 계획이지만 국립의대 설립 공모를 둘러싼 순천지역 반발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순천대와 순천시는 공모 불참을 선언했고, 순천지역 국회의원과 도의원 등 지역 정치권까지 공모 불참에 합세하고 있다. 설립 주체인 순천대는 뒤로 빠지고 지역 정치권이 앞장서고 있는 모양새다.

순천지역의 공모 반대는 노관규 순천시장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노 시장은 줄곧 순천대에 의대가 들어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며 독자 노선을 걸어왔다. 지난 3월 대통령의 약속으로 전남권 의대 설립에 청신호가 켜지자 도내 곳곳에서 환영 메시지가 쏟아졌지만, 노 시장은 통합의대를 반대하며 순천대 단독의대 설립을 강력히 표명했다. 순천대도 지난 2월 양 대학이 통합의대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합의서 작성을 끝까지 거부하고 돌연 단독의대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후 순천시장의 단독의대 설립 논리가 순천지역 정치인들과 시민단체에서 판박이처럼 그대로 흘러나왔다.

노 시장의 의대 유치 논리는 약삭빠른 정치전략으로 보인다. 노 시장은 ‘목포중심의 도청 소재 정치와 행정’,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등의 자극적인 발언을 하며 순천대 의대 유치를 정쟁화했다. 의대설립에 지자체장의 권한이 없다던 기존의 주장을 뒤집고, 순천시 단독으로 정부에 의대 정원 배정을 요청했으며, 동부권 주민만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등 동서부권 갈등을 유발하는 정치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전남도 공모가 법적 권한이 없는 불공정한 행정행위라는 나쁜 프레임을 씌우고, 순천대 의대 유치를 위해서는 전남도 공모에 참여하지 않고 교육부에 응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또 전남도가 진행하고 있는 공모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순천대 의대 유치를 위한 것이라는 구도를 만들어 순천 지역구 정치인들을 자극했다.

순천시장이 이러한 갈등 구도를 만드는 것은 기초 지자체장 이상으로 몸값을 높이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소지역주의에 매몰된 국회의원과 도의원들도 이참에 자신의 이름을 지역에 톡톡히 알릴 기회로 삼은 듯하다. 꽉 막힌 지역 현안에 정치권이 힘을 보태기는커녕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순천시장과 시의원이야 자기 지역만 생각하기에 그런다지만, 국민을 대표하고 도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도의원의 행동은 더욱 아쉽다. 지역민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공모에 적극 참여해 공정한 기준을 만들고 탈락한 지역에 대한 대안을 함께 모색하려 하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것은 도민에게 큰 상처만 남길 뿐이다.

어느 대학이 선정되더라도 지역 간 극심한 갈등 없이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도민 화합과 상생에 초점을 맞춘 ‘큰 정치인’의 모습이 필요하다. 전남권 의대 설립 문제는 어줍잖은 정치논리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어떤 정권에서도 얻어내지 못한 전남권 국립의대 설립의 기회가 정쟁화되어 자칫 무산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설립 주체인 순천대학교는 정치권 뒤에 꽁꽁 숨을 것이 아니라 공론의 장에 적극 나서야 한다. 교육부에 단독 신청도 하고, 동시에 전남도 공모에도 참여하는 이른바 투트랙 전략으로 나서면 어떨까 싶다. 순천대는 의과대학을 유치할 자신감이 있다면, 당당히 공모에 임해야 한다.
데스크칼럼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전남일보 PC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