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뒤통수
곽지혜 취재1부 기자
입력 : 2024. 11. 25(월) 18:46
곽지혜 기자
또 뒤통수를 맞았다고 한다.

지난 24일 일본 이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는 최초의 ‘사도광산 추도식’이 열렸다. 1940년대 1500여명의 한국인이 강제동원돼 혹독한 노역에 시달리며 피를 토한지 80여년, 1967년 일본이 ‘사도 광산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지정하며 역사 ‘닦아내기’를 시작한지 60여년 만이다.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지 4개월여 만에 개최된 이번 추도식은 일본 정부에서 주관했더라도 가장 큰 피해국인 한국이 주인공이어야 맞는 자리였다. 하지만 한국 관계자와 유족들을 위해 만들어둔 30여석은 덩그러니 비워졌다. 불참을 통보한 한국 정부의 “자리를 치워 달라”는 요청에도 일본은 보란 듯이 자리를 비워놓고 추도식을 치렀다. 정확히 누구를 추모하자는 취지인지도 알 수 없는 ‘사도광산 추도식’을 통해 한국은 일본에 또 굴욕당했다.

학습효과라고는 없는 나라냐고 비웃음당해도 할 말이 없다. 일본은 지난 2015년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 당시에도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센터 설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센터는 군함도 인근이 아닌 도쿄에 설치됐고, 강제성을 부인하는 자료까지 버젓이 자리했다. 일본은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한국에 또다시 약속을 했다. 우리가 맞닥뜨린 것은 강제노역 문구가 실종된 전시관과 강제성 희석 시도로 점철된 추도식 진행,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력이 있는 인사의 파견이었다. 논란의 중심이었던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은 추도식에서 사과는 고사하고 강제노역이나 강제동원 등 ‘강제’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뱉지도 않았다.

한국은 진정 일본에 대한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돼 인질범을 옹호하고 경찰을 적대시하는 등 극한의 상황에서 강자의 논리에 의해 약자가 동화되는 이상 현상)에라도 걸린 것일까.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들에게 ‘환향녀’라고 손가락질하고, 해방 후 만신창이로 고향에 돌아온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더럽다’며 침을 뱉듯. 되풀이되는 폭력의 역사에서 본능적으로 억울하고 서러운 피해자 편에 서느니 차라리 가해자의 편에 서는 것이 낫다고 여긴 것일까. “중요한건 일본의 마음”이라며 모든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정부는 일본에게 뒤통수를 맞으며 정작 누구의 뒤통수를 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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