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당심, 민심 그리고 명심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입력 : 2024. 07. 22(월) 18:11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요즘 더불어민주당을 보면 거침이 없다. 쟁점법안 입법이나 당헌당규 개정 등 뭐든 속전속결이다. 압도적인 의석을 바탕으로 ‘단일대오’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당은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중 눈에 띄는 변화는 당원권 강화다. ‘당원이 주인인 정당, 당원 중심의 대중정당’을 기치로 내걸었다. 핵심은 권리당원의 투표권 강화다. 당 지도부를 뽑는 8·18전당대회에 맞춰져 전광석화 같이 당규를 개정했다. 예비경선, 본경선에서 대의원 표 비중을 줄이고, 권리당원 비율을 대폭 늘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개정이 이뤄졌다. 국회의장 후보자와 원내대표 선출 선거에 권리당원 유효투표 결과를 20% 반영했다. 원내대표는 당 소속 의원들을, 국회의장은 국회를 대표한다. 국회의원의 자율투표 영역까지 당원들이 개입한다는 건 정말 해괴한 논리다. 중립성을 요구하는 입법부 수장인 의장 후보도 당원의 뜻을 받들어야 하는지 의아스럽다. 당 지도부는 이를 ‘강화’라고 적었지만, ‘권력’으로 읽혀진다. 국민들에게 국회의장, 원내대표를 뽑는 ‘투표권’은 없다. 대의 민주주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이다. 당의 주인이 주권자 위에 있을 수는 없다.

이런데는 친명(친이재명) 강성 지지층의 당내 영향력이 커진 것과 관련이 있다. 지난 5월16일,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에 우원식 의원이 선출됐다. ‘명심’(이재명의 의중)을 안고, 강성 당원들이 지지한 추미애 의원은 떨어졌다. 강성 당원들은 결과에 반발해 당 지지 의사를 철회하거나 탈당했다. 이재명 당시 대표는 “2만명 넘게 탈당했다”고 했다. 동요하는 친명 강성 지지층을 달래야 했다. 그래서 나온 해법이 ‘당원 중심 대중정당’이란 구호였다. 이후 당원권 강화는 선이고, 그렇지 않은 건 악이란 이분법적 구도가 당내에 팽배해졌다. 해괴망측한 개정이 이뤄지는데도,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는 없었다.

‘당원 중심 대중정당’은 당내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 보면 상호 모순적인 단어의 조합 같이 들린다. 당원은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의 무리이다. 반면 대중은 이질성을 특징으로 하는 불특정의 다수다. 서로 다른 개념이다. 민주당의 ‘당원 중심’은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것 같다. 만약 이들의 비중이 커지면 전위정당이나 특정 정치인 추종 집단으로 왜곡될 수 있다. 당연히 노동자·농민·중산층 등 다양한 계층을 대변하는 대중정당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당내 다양한 정파가 이탈하고, 민주주의는 후퇴한다. 외연 확장과 다양성, 지속가능성을 가진 정당과는 거꾸로 간다. 전조 현상은 민심과 당심의 불일치로 나타날 것이다. 민심을 대변하는 대중정당을 구현할수 없다는 얘기다.

당원들은 당의 가치와 이념을 지지한다. 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 힘을 실어주려는 속성이 강하다. ‘전당원 투표제’는 이런 당원들의 순수한 마음을 나쁜 방식으로 활용해 왔다. 국민과의 약속을 번복하거나, 무리한 결정을 내릴 때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지난 2020년 총선 당시 위성정당 창당, 2021년 재보궐선거 당시 ‘무공천’ 당헌을 깨고 서울시장·부산시장 후보 공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대가는 최악으로 돌아왔다. 민심과 당심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당원을 ‘도구화’했다. 미리 방향을 정해 놓고 당원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전당원’이란 말에 걸맞게 유효 투표율을 올리는 등 그들의 목소리를 올곧게 반영하는게 실제적인 당원권 강화가 아닌가 싶다.

과거 민주당은 군부독재에 맞서 싸워왔다. 민주화의 맨 앞에 서서 시민들의 지지 속에 대중정당의 길을 걸어왔다. 대중이 지지하는 정당, 그 것이 민주당의 자산이었다. ‘김대중 노선’은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었다. ‘노무현 노선’은 ‘반칙과 특권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당원들은 그 길에 줄곧 함께 해왔다. 정당사에서 당원이 주인이 아닌 적은 없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당원은 당의 주인이고 중심이다. 그래서 당원 중심이란 말은 정치적 레토릭(수사)처럼 들린다. 대중정당으로 가겠다며 당원권도 강화했는데, 민심은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것 같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전국 만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 민주당 지지도는 27%였다. 당내에서 조차 ‘분당대회’, ‘자폭전대’라는 자조와 탄식이 나오는 국민의힘(35%) 보다도 낮다. 민주당은 박스권에 갇혀있는 낮은 지지율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민심과 당심이 일치하는가.
데스크칼럼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전남일보 PC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