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토록 찬란한 문학의 축복 앞에서
노병하 취재1부 정치부장
입력 : 2024. 10. 14(월) 18:40
10월10일이었다.

대한민국 전역에 생각치도 못했던 문학의 축복이 쏟아진 그 날은.

일제 시대를 거쳐, 한국 동란을 지나, 수십 년의 독재를 버텨내며 뿌리를 내려온 한국 문학계지만, 세계에서 인정 받기에는 한참이나 남은 듯 했다.

우리 언어의 맛을 세계인들이 이해하기도 힘들 뿐더러, 동북아의 삐져나온 반도에서도 그나마 절반에 해당하는 이 조그만 대한민국에 무엇이 있어 세계 지성인들의 마음을 울릴까 싶은 자괴감만 이어지던 날들 속에서, 난데 없이 감당키 어려운 축복이 폭죽처럼 터져 쏟아져 내린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날부로 한국의 독자들은 올해의 노벨문학상 작품을 원서로 읽을 수 있는 특권을 부여 받았다.

아울러 광주와 전남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였음을 세계 지성들이 인정하는 순간을 목도하게 됐다는 점에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우민으로 애써 담담하려해도 그러기가 매우 힘이 들 수 밖에 없다.

반도의 남단에서도 반골의 골짜기, 저항의 민초들이 가득한 곳.

그러나 노벨평화상의 토대인 ‘전남’에 이어 노벨문학상의 도시 ‘광주’가 더해진 이 알수없는 땅.

이 땅을 두고 세계의 지성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박수를 치고 있다.

독재와 억압에 저항하고 인권유린 속에서도 인류애를 발현하고 공포 속에서도 저항하며, 오랜 기간의 탄압에도 굳건히 버텨선 남도가 있었기에, 지금의 K-팝, K-드라마, K-푸드라는 한류에 날개를 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서방이 인정한 것이다.

오랫동안 외면받고 왜곡돼 온 이곳을 위해 ‘한강’이라는 위대한 작가가 올린 기우제가 마침내 큰 비를 불러온 것이다.

이 엄청난 축복을 어찌할 것인가? 시시하게 문학관이나 기념관으로 넘길 것인가?

아니다. 그런 조악한 축하는 이 땅에 어울리지 않는다. 모두가 어울렁더울렁 춤을 출 수 있는 마당을 만드는 것이 우리답다.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고향인 장흥에서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창작촌을 만들고, 한강의 고향인 광주에서는 배고프지만 영민한 문학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공간을 꾸려야 한다.

어디서건 문학의 축복으로 목을 축일 수 있는 책들의 쉼터를 만들고, 문학을 이야기 함에 있어 낯 부끄러워하지 않는 크고 작은 '향연들의 초롱'에 불을 붙여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니 결국 그래야만 했었던.

오월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에까지 이르기를.

그 수록의 의미가 흐르고 흘러, 망월에 닿기를.

상상만으로도 울컥한 그 아름다운 날이 온다면, 그래서 다시 오월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때부터 광주의 오월이 더는 슬픔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처절하게 지켜낸 숭고한 날들이었음을 모두가 알아주게 될 것이리니.

여기까지만 생각하여도 눈이 돌 정도로 행복할 따름이니, 부디 지역의 행정가와 정치인들은 이 축복을 이대로 보내지 않도록 허례와 허식을 내려놓고 다같이 큰 마당을 만들도록 손을 잡아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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