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손필영>오르는 산은 오르지 않는 산보다 더 높다
입력 : 2025. 06. 10(화) 13:14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박수를 받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서울 용산에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기가 다시 게양되었다. 계엄이 선포된 12월3일부터 6개월간의 혼란이 봉황기로 상징되는 국가수반의 공식임기 시작으로 정리되었다. 무궁화를 가운데 두고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보는 봉황기의 디자인은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무궁화를 두 봉황이 위엄과 권위로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듯하다. 질서가 돌아온 듯 국민은 비로소 편안한 숨을 쉬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새해를 어떻게 맞이했는지 어안이 벙벙하고 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갈라쳐진 국민 대립으로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당신이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부분이고 내가 당신이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부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와 당신은 대한민국 앞에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시작된 지금은 어떤 입장을 지지했던 이제는 모두가 더불어 지내야 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휘트먼(Walt Whitman)의 ‘열린길의 노래(Song of the Open Road)’를 보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열린 의식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두 발로 마음 가벼이 나는 열린 길로 나선다/ 건강하고 자유롭게, 세상을 앞에 두니/ 어딜 가든 긴 갈색 길이 내 앞에 뻗어 있다/ 더 이상 난 행운을 찾지 않으리. 내 자신이 행운이므로/ 더 이상 우는 소리를 내지 않고, 미루지 않고, 요구하지 않고/ 방안의 불평도, 도서관도, 시비조의 비평도 집어치우련다/ 기운차고 만족스레 나는 열린 길로 여행한다./ 대지, 그것이면 족하다./ 별자리가 더 가까울 필요도 없다./ 다들 제 자리에 잘 있으리라./ 그것들은 원하는 사람들에게 소용되면 그뿐 아니랴.(하지만 난 즐거운 내 옛 짐을 마다하지 않는다/ 난 그들을 지고 간다, 남자와 여자를/ 난 그들을 어딜 가든 지고 간다./ 그 짐들을 벗어버릴 수는 없으리./ 나는 그들로 채워져 있기에. 그리고 나도 그들을 채우기에.)
이 시를 보면 삶에 대한 순수하고 강한 열정이 솟아오른다. 어디를 가든 사람을 짊어지고 가는 시인처럼 사람을 향해서도 열려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가난과 고난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그는 가난이 무엇인지 노동자의 삶이 무엇인지 사회적 불의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난하더라도 제도권 안에서 보호받아온 과거의 대통령들과는 다른 출발점을 지니리라고 본다. 김현승 시인은 산을 이상(理想)으로 보면서 “오르는 산은/ 오르지 않는 산보다 더 높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높은 산보다 내가 오른 산이 나에게는 가장 높은 산이다. 에베레스트가 아무리 높아도 그 높이는 숫자이고 개념이므로 나에게는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에베레스트를 8849m 높이의 숫자로 기억하지만 내겐 가보지 않은 에베레스트보다는 오르기 너무 힘든 산이었던 지리산이 가장 높은 산이다. 지리산을 오를 때 땀 범벅에 숨이 차 힘 들었지만 새소리를 듣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고, 풀섶에 앉았다 일어나 보니 궁둥이에 풀물이 들거나 잎이 들러붙었던 경험이 훨씬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었다. 경험과 개념은 너무나 극명한 차이를 지닌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50대 후반의 사람 중에 어린 시절 가난하여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나?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소년공으로 성장한 이재명 대통령은 어두운 현실을 극단적으로 경험했을 것이다.
일찍이 황동규 시인은 고향의 존재는 우리가 되돌아가 다시 시작할 곳을 보여준다고 했다. 시를 쓰든 어떤 일을 하든 이것은 모두에게 적용될 것이다. 앞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어린 시절의 고향으로 돌아가 대통령직을 시작한다면 가장 낮은 자세로 주어진 일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의 가장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정신으로 사심 없이 국정 운영을 해주길 바란다.
두 발로 마음 가벼이 나는 열린 길로 나선다/ 건강하고 자유롭게, 세상을 앞에 두니/ 어딜 가든 긴 갈색 길이 내 앞에 뻗어 있다/ 더 이상 난 행운을 찾지 않으리. 내 자신이 행운이므로/ 더 이상 우는 소리를 내지 않고, 미루지 않고, 요구하지 않고/ 방안의 불평도, 도서관도, 시비조의 비평도 집어치우련다/ 기운차고 만족스레 나는 열린 길로 여행한다./ 대지, 그것이면 족하다./ 별자리가 더 가까울 필요도 없다./ 다들 제 자리에 잘 있으리라./ 그것들은 원하는 사람들에게 소용되면 그뿐 아니랴.(하지만 난 즐거운 내 옛 짐을 마다하지 않는다/ 난 그들을 지고 간다, 남자와 여자를/ 난 그들을 어딜 가든 지고 간다./ 그 짐들을 벗어버릴 수는 없으리./ 나는 그들로 채워져 있기에. 그리고 나도 그들을 채우기에.)
이 시를 보면 삶에 대한 순수하고 강한 열정이 솟아오른다. 어디를 가든 사람을 짊어지고 가는 시인처럼 사람을 향해서도 열려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가난과 고난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그는 가난이 무엇인지 노동자의 삶이 무엇인지 사회적 불의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난하더라도 제도권 안에서 보호받아온 과거의 대통령들과는 다른 출발점을 지니리라고 본다. 김현승 시인은 산을 이상(理想)으로 보면서 “오르는 산은/ 오르지 않는 산보다 더 높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높은 산보다 내가 오른 산이 나에게는 가장 높은 산이다. 에베레스트가 아무리 높아도 그 높이는 숫자이고 개념이므로 나에게는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에베레스트를 8849m 높이의 숫자로 기억하지만 내겐 가보지 않은 에베레스트보다는 오르기 너무 힘든 산이었던 지리산이 가장 높은 산이다. 지리산을 오를 때 땀 범벅에 숨이 차 힘 들었지만 새소리를 듣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고, 풀섶에 앉았다 일어나 보니 궁둥이에 풀물이 들거나 잎이 들러붙었던 경험이 훨씬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었다. 경험과 개념은 너무나 극명한 차이를 지닌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50대 후반의 사람 중에 어린 시절 가난하여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나?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소년공으로 성장한 이재명 대통령은 어두운 현실을 극단적으로 경험했을 것이다.
일찍이 황동규 시인은 고향의 존재는 우리가 되돌아가 다시 시작할 곳을 보여준다고 했다. 시를 쓰든 어떤 일을 하든 이것은 모두에게 적용될 것이다. 앞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어린 시절의 고향으로 돌아가 대통령직을 시작한다면 가장 낮은 자세로 주어진 일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의 가장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정신으로 사심 없이 국정 운영을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