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김강>이왜진? SNL 코리아
김강 호남대 교수
입력 : 2025. 06. 10(화) 13:12
1990년대 중반 미국 뉴욕주립대 유학 시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높게 쌓인듯한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할 요량으로 토요일 밤이면 익숙한 안주 마냥 즐겨 찾았던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NBC가 제작 방영하는 SNL(Saturday Night Live)이라는 생방송 버라이어티 코미디 쇼였다.

한국에 있을 적 심오한 사회풍자나 정치비판 프로그램을 거의 접하지 못했기에 그 쇼를 시청하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대사처럼 “멋진 신세계”(O brave new world)이자 강렬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당시 우리의 대중문화는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정의한 이른바 ‘공적 영역’(public sphere)에서 국가와 기업, 정치인 등 거대권력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터부시했던 탓이었다.

대통령은 물론이거니와 재벌가, 정치인, 연예인 등을 막론하고 화제의 인물을 풍자적으로 흉내 내고, 갖가지 사회적 이슈와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는 재치와 유머가 참으로 고상하고 멋져 보였다. 여전히 ‘최애 프로’가 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2011년 12월 한국판이 소개됐다. tvN이 미국의 포맷 라이선스를 받아 처음 방영한 ‘SNL 코리아’가 그것이다. 현재 쿠팡플레이에서 방영 중인 쇼는 2021년 부활한 리부트 시리즈이다.

SNL 코리아는 미국의 오리지널 코미디쇼를 벤치마킹했지만, 그동안 한국 사회와 문화를 반영한 독창적이고 다양한 스케치 코미디를 선보이며 국내 예능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사회적 이슈, 정치, 엔터테인먼트 등 폭넓은 주제를 유머와 풍자를 통해 풀어내며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특히 최근 시즌에서는 ‘MZ오피스’와 같이 젊은 세대의 현실과 갈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큰 공감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코너들은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짧은 영상으로 재가공되어 젊은 시청자층의 접근성을 높이고, 사회 부조리에 대한 통쾌함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즌을 거치며 크루 선정의 독점성, 풍자 소재의 한계, 그리고 선정성 논란 등 여러 비판에 직면한다.

초기 SNL 코리아는 ‘여의도 텔레토비’ 등 정치 풍자를 통해 사회 권력층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블랙코미디의 미학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치 풍자의 수위가 낮아지고, 풍자 소재가 MZ세대 일상이나 연예계 이슈 등으로 한정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정치적 구조 문제나 권력 비판 대신, 단편적인 세대 특징이나 연성 이슈에 집중하면서 본래 SNL이 지녔던 ‘풍자 코미디’의 본질이 약화 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SNL 코리아는 고정 크루와 매주 초대되는 호스트라는 이원적 구조로 진행된다. 일부 시즌에서는 신인 크루의 영입과 기존 멤버의 활약이 명콤비를 이뤘으나, 전체적으로 크루 선정이 비교적 폐쇄적이고 독점적으로 이뤄진다는 지적이다. 오디션을 통한 일부 신인 영입에도 불구하고, 주목받는 역할은 기존 인기 크루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다양한 연기자와 개그맨의 진입 기회를 제한하며,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신선함을 저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논란을 자초했던 연예인을 호스트로 기용하면서, 이들의 과오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나 풍자 없이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비난도 들려온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 등 논란이 있었던 배우를 호스트로 세우면서 해당 이슈를 외면하거나, 셀프 디스 형식으로 가볍게 소비하는 방식은 프로그램의 블랙코미디적 정체성을 퇴색시킨다. 이는 SNL 코리아가 ‘이미지 세탁소’로 전락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SNL 코리아는 19세 이상 시청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성적 수위가 지나치게 높거나 불쾌감을 주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해 선정성 논란에도 휩싸인 바 있다. 여성 연예인에게 노골적이고 수위 높은 연기를 요구하거나, 신체 접촉과 성적 암시가 과도한 장면이 방송되어 민망하고 거슬린다는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러한 연출은 단순한 유머를 넘어 성 상품화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으며,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제작진의 안일한 태도를 드러낸다. ‘정년이’ 패러디 ‘젖년이’, 문채원 ‘캥거루 연애’, 김사랑 ‘전설의 팬미팅’ 코너 등이 망신스러운 사례들이다.

SNL 코리아는 또한 특정 인물이나 집단의 외모, 말투, 행동을 희화화하거나 조롱하는 장면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는 풍자가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를 향할 때 조롱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인, 장애인, 외국인 등 다양한 대상을 희화화하는 장면이 문제로 지적됐으며, 이는 사회적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결여된 제작 관행을 드러낸다.

SNL 코리아가 TV에서 주요 개그 프로그램이 사라진 후 한국 코미디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사회적 이슈와 세대 문화를 유머와 풍자로 풀어내는 데 기여한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크루 선정의 독점 구조와 논란 연예인 기용, 반복되는 선정성 논란은 프로그램의 본질과 사회적 책임을 크게 훼손한다.

진정한 풍자는 권력과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다양한 인재에게 기회를 제공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이 아닌 건강한 비판과 유머로 나아갈 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SNL 코리아가 앞으로도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코미디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크루 선정의 투명성과 다양성 확보, 선정성에 대한 자정 노력, 그리고 풍자와 조롱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사회적 감수성의 회복이 필수적이다.

늘 그렇듯 음식이나 문화나 어설픈 새것보다는 원조가 그립다. 그 시절 TV에서 우렁차게 외치는 목소리가 다시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Live from New York, It’s Saturday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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