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추교준>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추교준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장
입력 : 2024. 11. 03(일) 18:21
이계삼. 그는 나의 글쓰기 선생이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눠 본 적은 없지만, 30대 초반 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의 글의 미덕은 문장이 정갈하다는 점이다. 막힘 없이 술술 읽힌다. 그게 다가 아니다. 문장의 정갈함은 글이 담고 있는 문제의 절박함을 오롯이 드러낸다. 누구나 읽어도 내용이 쉽게 이해되지만, 누구도 그 문제를 쉽게 지나치지 못하도록 하는 힘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글을 읽고 나면 그가 씨름하고 있는 교실에서의 번민과 고통에서 쉽게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그 후로 종종 학생들 앞에서 글쓰는 법을 이야기하며 그의 글을 소개하곤 한다.

2010년 이후 그는 현장에서 ‘교육의 불가능’을 마주하면서도 마음속에 ‘농업’과 ‘인문학’이 만나는 ‘삶을 위한 교육’을 새롭게 꿈꾸었다고 한다. 그 즈음 어느 강연 자리에서 “새에겐 둥지, 거미에겐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관계를 ‘우정의 공동체’로 바로 세우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의 언어, ‘스스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솔한 목소리가 요구된다. 그의 말을 읽으며 나는 학생들과 함께 막혀 있던 생각을 틔우고, 그렇게 영혼을 돌보는 교육을 상상했다.

저기 오늘날 우리의 권력자를 보라. 2년 반 동안 자기가 쥔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도, 영혼도 없이 주변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고 있다. 어떤 이들은 권력자를 꼭두각시 삼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고, 또 어떤 이들은 권력자 앞에 바짝 엎드려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그 사이 나라 곳곳은 병들어 가고 있다. 그런데 너무 익숙한 모습이 아닌가? 그의 행실은 생각도 묻지 않고 영혼을 돌보지도 않은 채 내가 생각하는 답이 아니라 남이 정해준 답을 찾는 일이, 그렇게 오직 교과 성적을 올리는 일이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해 온 교실 속 풍경과 너무 닮아 있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가 처한 총체적 위기는 우리의 교육이 빚어낸 결과이다. 이러한 사회는 또다시 교육을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는 악순환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학교란, 척박한 현실 속에서 유일하게 이상을 꿈꿀 수 있는 곳이라는 프롬의 주장(『소유냐 존재냐』 중)을 받아들인다면, 교육에서부터 이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를 꿈꾸는 일은 무엇보다 학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학교라는 곳에서 학생들은 함께 힘을 모아 아직 오지 않은 현실을 지어올리는 생각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 땅의 권력자가 한 말 같지도 않은 말이 유튜브를 통해 울려 퍼지고, 모두가 하야, 탄핵, 당선 무효를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나는 이계삼의 책,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을 펼쳐든다. 2009년 교실에서의 그의 절규가 오늘날 우리의 절망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혼이 없는 사회에서 그는 무엇에 맞서 몸부림쳤던가? 교육의 불가능에 절망한 뒤 희망을 짓기 위해 녹색당 후보로 나섰던 2016년 선거 이후, 그는 모든 공론장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나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허둥대고 있다.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생각을 틔우고 영혼을 돌보는 교육을 더 늦기 전에 눈앞의 학생들과 함께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책을 펼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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