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각자도생 아닌 낱개 주체들의 연대 ‘대동사회’
454 대동세상, ‘오징어게임’과 ‘강강술래’
입력 : 2025. 07. 10(목) 15:11
지난 2023년 9월22일 진도쏠비치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강술래 특별공연이 개최된 가운데 투숙객들이 함께 강강술래에 참여하고 있다. 이윤선 촬영
대동(大同)의 사전적 풀이는, 큰 세력이 합동함, 온 세상이 번영해 화평하게 됨, 조금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같음, 조선 세종 때의 ‘보태평지악’ 열한 곡 가운데 열째 곡 등이다. 보태평은 종묘제례에서 초헌을 올릴 때 연주하던 문덕(文德)의 찬양 노래로, 세종 말년에 창작돼 세조 때에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됐다. 대동은 본디 ‘예기(禮記)’의 ‘예운편(禮運篇)’에 나오는 말이다. “대도가 행해지는 세상에서는 천하가 공공의 것이 된다(大道之行也, 天下爲公)”고 했다. 공공(公共)이란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는 것, 낱개 주체들의 유기적 연대임을 상고하고 주목한다. 정약용도 강조했고 특히 최한기가 공동체의 이상으로 강조한 바 있다. 임부연의 ‘정약용&최한기’(김영사, 2007)에서는 최한기가 이루려던 대동의 꿈을 이렇게 인용한다.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협력과 조화의 세계, 대동의 세계에서는 천하를 공공(公共)의 것으로 생각해 각자 자신의 부모나 자식만을 위하지 않고 도둑이 없어 대문을 닫는 일이 없다. 이에 비해 대도가 사라진 이후에는 천하를 사사로운 집으로 여겨 자신의 부모와 자식만 위하며 전쟁이 발생하고 예(禮)와 인(仁)이라는 인위적 덕목을 받드는 소강(小康)의 세계가 펼쳐진다.” 도올은 ‘혜강 최한기와 유교’(통나무, 2003)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통대동(一統大同)이란 획일주의적 삶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적 삶을 지배하는 보편적 준칙,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제각기 다른 잣대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닌, 통일된 기준을 획득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상식이 존중받는 사회라는 뜻이다. 여기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지난 정부의 황당무계하고 파렴치한 행태다. 국가의 경영을 삿된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 대신하고 국고를 도둑질했으며 무엇보다 북한을 자극해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상식마저 뒤집혔던 시간, 이를 어찌 소강(小康)이라 에두를 수 있겠는가. 하마터면 제2의 민족상잔이 일어날 뻔한 가장 극악하고 무도한 시기였지 않은가.

지난 2024년 9월10일 영암 삼호지역에서 주민들이 강강술래 연습을 하고 있다. 이윤선 촬영
각자도생의 사악하고 부도덕한 시간을 지나서

이재명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민주권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윤 정권이 대동의 반대편에서 오로지 훼방꾼 노릇만 했음을 분명히 알게 됐다. 청년, 노인,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실질적 복지정책이 축소됐다. 노조는 때려잡고 자영업은 시장에 맡기며 부자에게는 세금 감면을 해줬다. 공익보다는 사익의 조직적 수호에 집착해 공공선이 해체되고 자신들만의 선택적 정의가 주장됐다. 검찰 중심의 일방적 지시가 횡행했으며 경쟁과 분열의 구조만 강화시켰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마약 수사의 선택적 적용, 일부 언론에 대한 묻지마 탄압 등 특검에서 거론되는 것만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무엇보다 전쟁도 불사한 대북 강경책, 아니 대놓고 전쟁을 획책한 내란죄와 외환죄의 해악이 심히 크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중죄다. 국민들은 지역 간, 세대 간, 계층 간, 성별 간으로 찢기고 갈려 서로 신뢰할 수 없게 됐고 각자도생의 세상으로 추락했다. 공동체 해체, 약자 방치, 개인주의와 혐오주의만이 난무했다. 지난 3년 검찰이라는 소수자들의 힘에 기댄 지배, 공동체적 숙의가 없는 일방통행식 파시스트들의 시간을 지나온 것이 악몽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새 정부가 들어서고 한 달여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것을 보고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오늘 대동(大同)을 들어 장차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를 묵상하고자 생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 이기심을 넘어 공생과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위 책을 빌린다. “중국에서는 캉유웨이(康有爲, 1858~1927)가 ‘춘추공양전’에 나오는 역사발전론, 곧 삼세설(三世說)을 통해 대동을 미래의 이상 세계로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혼란의 시대, 태평으로 상승하는 시대를 거쳐 도달한 태평의 시대가 바로 대동이 실현된 세계다. 그의 대표작인 ‘대동서(大同書)’에서는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아홉 가지 경계에서 찾고, 그러한 경계가 모두 사라진 이상향으로 대동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지금 우리 시대가 혼란의 시대를 거쳐 태평으로 상승하는 시대로 나아가는 듯하다. 따라서 국민주권 정부에서 대동의 개념을 단단히 붙잡고 나아간다면 머잖아 태평성대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공약사항이기도 했던 코스피 5000시대의 달성이 그렇고, K-컬쳐의 순기능이 세계 문화를 선도해 나가는 일이 또한 그렇다. 왜 하필 우리 시대에 분단모순을 짊어지게 됐는가를 묵상하고 그 시대적 과업을 아홉 가지 경계에 넣어 실천 전략을 짠다면 필경 인류사에 남는 문화민족, 인류 평화의 선도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경제문제를 우선해 살피고,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며 시민의 참여를 통해 숙의하고, 연대와 배려, 포용적 분배를 실시하며, 무엇보다 남북 간 평화를 회복하는 일 등이 긴요하다. 갱년기가 진즉 지난 줄 알았는데 공동체성 회복과 약자에 대한 배려를 주문하고 실천한다는 대통령 지시가 나올 때마다 콧날이 시큰한 게 주책이다만, 태평성대와 시화연풍(時和年豊) 대동세상을 기약하는 문턱에 서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렘을 어찌 숨기겠는가. 태평의 글을 짓고 대동의 노래를 지어 부르며 머리를 맞대 위난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자. 세종대에 고취와 향악을 바탕으로 ‘보태평’ 등 여러 새로운 음악을 창제했던 일을 소환해 새 오케스트라를 주문한다. 우리 역사에 이처럼 기운 생동한 나랏일의 행로가 어디 그리 흔하랴. 국민주권의 길에 애오라지 어깨 겯고 나서는 까닭이 여기 있다.



남도인문학팁

대동놀이 강강술래, 영화 ‘오징어게임’을 넘어

국민정부를 참칭해 국가와 민족을 위기로 내몬 윤정부와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주권 정부를 견줘보면, 당장 영화 ‘오징어게임’과 대동놀이 ‘강강술래’가 떠오른다. 오징어게임은 한국의 민속놀이를 재구성한 내용이면서도 단순한 서바이벌 게임을 넘어서 한국사회의 경쟁적인 분위기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판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이 목숨을 걸고 게임에 참여하는 모습은 인권자로서의 존엄이 무너지고 생존을 위한 경쟁만 남은 처절하고도 비극적인 풍경이다. 지난 윤 정권의 모습과 어쩌면 이리 닮아있을까 싶기도 하다. 반면에 전통적인 대동놀이 강강술래는 적대자라도 큰 조건 없이 손에 손을 잡을 수 있는 대표적인 놀이이자, 화합의 상징이기도 하다. 조동일의 견해를 빌리자면 대등(對等) 놀이다. 서로 견주어 높고 낮음이나 낫고 못함이 없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구별과 차등을 넘어서고, 물리적 평등의 모순도 넘어서는, 즉 낱개의 주체들이 자율적이고 유기적으로 연대하는 공공(公共)이다. 말하자면 영화 ‘오징어게임’은 각자도생이고 ‘강강술래’는 주체인 개체들의 연대이다. 지역적 차이도 세대 간 위화감이나 성별 갈등도 녹여내는 기술들이 탑재돼 있다. 대동계의 자율적 민간결사와 같다. 원심력과 구심력이라는 과학과 기술, 인문학적인 의미망들이 촘촘하다. 서양권에서는 써클댄스라는 이름으로, 동양권에서는 원가무 혹은 원무 등의 이름으로 연행됐다. 동양의 이상향 대동 세상의 대동일통(大同一統)을 말한다. 문화적으로 설계하기에 가장 적합한 대동놀이일 것이다. 단순히 우리의 전통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형 복잡계 공동체의 살아있는 연대 모델이기 때문에 주목하는 것이다. 나라의 정책을 꾸리는 이들은 강강술래 안에 스민 과학과 기술들을 주목하길 바란다. 낱개 주체들의 연대 대동사회, 어쩌면 다시 오기 어려울지도 모를 국민주권 시대,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모두 강강술래를 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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