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어린이 음악극으로 공존과 감응의 사회를 바라보다
452 심심해 호랑이는 장가갈 수 있을까?
입력 : 2025. 06. 27(금) 11:22
광양시립국악단의 어린이 음악극 ‘심심해 호랑이는 장가갈 수 있을까’가 공연되고 있다. 광양시립국악단 제공
“엄마, 너무 행복했어, 감동이야!” 여섯 살 된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한 말이다. 어떤 맛있는 생일 음식이라도 먹은 것일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선물 받기라도 한 것일까? 지난달 광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어린이 음악극 ‘심심해 호랑이는 장가갈 수 있을까?’라는 공연 후 쏟아져 나온 인파들이 이구동성 칭찬하던 풍경의 하나다. 이 어린이 가족은 경상북도에서 두 시간 반을 달려왔다고 한다. 또 어떤 엄마들은 이렇게 말했다. “광양에서 이런 수준 높은 어린이 음악극을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관객의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배우들의 대사, 표정, 몸짓, 다채롭고 흥겨운 음악과 노래에 어린이 관객들이 낱낱이 반응했다. 동물 캐릭터 배우들의 해학과 익살에 관객들이 빨려 들어간 듯했다. 바쁜 도시의 삶 속에서, 디지털 기기에 갇힌 채 감정을 잃어가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전통음악과 해학, ‘심심해 호랑이’와 갖가지 동물 캐릭터들이 마법처럼 다가왔던 모양이다. 공연뿐만이 아니다. 음악극이 끝난 후 2층 대전시실에 준비된 ‘전통혼례체험’에 대거 참여했다. 미리 준비된 80여벌의 전통혼례복을 입고 음악극 배우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뜻깊은 추억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 음악극은 단지 공연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아이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무엇을 잊고 살아왔는지를 반문하는 문화적 선언처럼 보였다. 지역 기반 전통예술의 가능성에 대한 놀라운 증명이라고나 할까. ‘심심해 호랑이’는 전래동화나 고전소설을 단순히 재연하는 방식이 아니다. 해학과 판소리, 국악관현악과 국악 동요, 동물 캐릭터들의 몸짓 연기와 노래를 정교하게 엮어 ‘전통+어린이 감수성’이라는 쉽지 않은 화두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키큰나무숲’을 종횡무진하는 양아치 두목 ‘심심해 호랑이’가 여우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익살과 해학을 뒤섞어 어린이들의 감수성과 밀착되는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어린이 음악극에는 ‘사랑을 하면 착해진다’는 명료한 주제의식이 담겨있다. 국악 동요, 판소리, 연희, 국악관현악 등, 얼핏 보면 현대의 어린이들과 어울리지 않을 듯한 소재들을 슬기롭게 장착했다. 어린이들과 친숙해질 수 있는 전통예술의 흥미롭고 감동적인 요소들을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한 것이 그것이다. 작곡자와 연출자의 시선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광양시립국악단의 어린이 음악극 ‘심심해 호랑이는 장가갈 수 있을까’가 공연되고 있다. 광양시립국악단 제공
어린이 음악극의 비전, 유년기의 무너진 감수성을 어떻게 극복할까?

‘한밤만 뜨겁게 안아줘’, ‘사랑은 눈물의 씨앗’, 간지러운 트로트 가락이 흐른다. 어른들이 손뼉을 치면서 환호한다. 그런데 노래하는 이를 보니 열 살도 안 된 어린이들이다. 가사를 보니 낯 뜨거운 장면들 일색이다. 성인 취향의 가사로 가득 찬 TV 예능과 SNS, 학부모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니 아연실색이다. 유년기의 조기 성년화, 너나 할 것 없는 트로트 열풍이라고나 할까.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정서와 감성을 발달시켜 주는 생애주기의 필수적 단계가 동요와 동화의 시기다. 이 시기가 통째로 붕괴했다. 아이들은 더 이상 봉숭아꽃을 노래하지 않는다. 아파트 평수나 아빠 자동차 브랜드로 서열을 매기며 성장해 간다.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유년기의 감수성이 흐트러진 사회는 결국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타인을 공감하지 못하는 성인을 만들어내고 만다. 세대 간 갈등 지역 간 갈등 젠더 갈등 등 근자에 우리가 목도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갈라치기 내력이 모두 이같은 현실 속에서 배양된 것들이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키즈 오디션 예능 등 산업화된 방송문화가 주범의 하나다. 성적 위주의 교육은 말할 것도 없다. 감정교육과 예술교육 등 정서 기반 교육이 실종됐다. 어린 자녀들의 트로트 열풍은 빠른 성공 지향의 가족문화를 배양하고 사회적 기대에 맞춘 연기를 유도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전통 동요나 동화 콘텐츠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어찌할 것인가? 동심은 단순히 귀여운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공감과 존중, 순수한 창조력의 원천이며 사회적 상상력의 기초 자본이기도 하다. 그래서다. 유년기의 무너진 감수성을 어떻게 재구성할까? 아니, 송두리째 잃어버린 생애주기의 토대를 어떻게 복원할까? 이번 광양시립국악단의 공연에 주목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린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편중 문화를 호혜 대등한 지역문화 창출로 재구성하는 문화분권 성과도 있다. 음악극 총 진행을 맡은 문화예술나누미 ‘아띠락’ 신동욱 대표에게 물었더니 울먹거리는 답이 돌아온다. “유튜브를 통해 완숙한 연주력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광양시립국악단의 국악관현악은 가히 압도적입니다. 평소 존경해 왔던 작곡가 류형선 예술감독의 섬세하고 정교한 음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낯선 연기와 춤을 익히느라 3개월 이상 땀을 쏟았는데 광양시립단원들과 배우들의 열정으로 작품이 4~5단계는 업그레이드된 것 같아요. 감동이 멈추지 않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 지경이에요.” 돌이켜보니 이게 빈말이 아니다. 음악극의 지휘, 작사, 작곡 및 음악감독을 맡은 류형선의 작품 ‘모두 다 꽃이야’, ‘내 똥꼬는 힘이 좋아’ 등은 유튜브 조회수를 총 7000만 뷰를 상회한 국악 동요곡이다. 얘기를 더 들어보니 턱없이 부족한 예산에도 기운생동 열정을 쏟아부은 내력이 주마등이다. 광양시립단원 중에서 9명을 선발해 연기와 춤, 노래, 연희를 맡겼다. 28명의 연주자가 관현악 사운드를 정교하게 빚어냈다. 공연기획실의 기획에서 홍보에 이르기까지 역량이 배가 됐으니 완전체로 이뤄낸 프로젝트였다. 국가든 예술이든 명작과 명품은 늘 헌신하는 지도자와 자기 일에 몰두하는 구성원들을 통해 탄생한다.



남도인문학팁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광양시립예술단의 실험에 기대어

며칠 전 이재명 대통령이 광주를 찾았다. 취임 첫 나들이로 택한 광주에서의 타운홀 미팅, 광주공항 이전 등 민감한 현안 주제들을 가지고 난상토론이 진행됐다. 대통령 직속으로 관련 TF(task force)를 만든다는 성과가 나왔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광경이자 어쩌면 장차 전개될 풍경일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의 일성이자 만고불변의 진리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다. 그래서다. 광양에서 시작한 이 작은 출발이 전국의 교육과 문화현장으로 퍼져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광양의 현장을 전국의 현장으로 이식하는 작업에 대해 우선 광양과 전남에서부터 타운홀 미팅을 하자고 제안한다. 사회의 주역이 될 우리 아이들이 ‘한밤만 뜨겁게 안아줘’를 부르기 전에, ‘모두 다 꽃이야’를 부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이것은 단순한 어린이 음악극이 아니라 장차 만들어 나가야 할 새로운 문화 운동이다. 이번 열두 번째 음악극과 뮤지컬을 시도한 류형선 예술 감독에게 물었다. 당찬 포부의 말이 돌아온다. “이 작품을 광양시립국악단의 대표 브랜드로 발전시켜 가고 싶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를 위한 작품이 될 것이다. 한국 최고의 어린이 음악극으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이 작품은 그 첫발을 뗀 것이다. 더구나 전통혼례 체험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뜻깊은 추억을 선물할 수 있어서 확장성이 생각보다 크다고 본다.” 명답이다. 우리나라를 넘어 세상의 모든 어린이에게 나눌 선물일 수 있겠다. 감성 중심의 전인교육 프로그램으로 이름나 있는 발도르프 교육이나 핀란드의 ‘놀이로 배우는 교육과 예술 감정 수업’, 관계 기반 예술교육인 뉴질랜드 테 파리키 등의 글로벌 사례에 못지않게 우리의 전통음악극으로 이 난세를 열어젖힐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든다. 공존과 감응의 사회를 위한 기반 작업, 창조의 거점 공간으로서의 지역, 광양의 사례를 전 국민, 전 지역, 전 세대의 감수성 회복 운동으로 확장시켜 나가자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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