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정상연>김장, K 문화의 중심이 서다.
정상연 전남과학대 겸임교수·문화학박사
입력 : 2024. 12. 22(일) 18:39
정상연 전남과학대 겸임교수
11월에서 12월 사이, 겨울이 시작되는 이맘때쯤이면 여기저기에서 웃음꽃이 핀다. 김장을 하는 날이다. 지금이야 세상이 좋아져서 여러 음식을 곁들여가며 따뜻한 거실에 모여앉아 온 가족이 김치를 담근다지만,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어머니가 고생하는 날이기도 했다.

추운 겨울, 몇 날 전부터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고 고춧가루를 포함한 생강, 마늘 등 수많은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의 수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일가친척들의 품앗이가 필요할 정도로 큰 대사 중 하나였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정점이었다. 김장김치 없는 다음 해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김장을 한다는 것은, 김치를 버무리는 단순 행위가 아니라 사랑을 담그고 마음을 나누는 축제임과 동시에 행복이 가득한 날이기도 했다. 일종의 의식인 것이다.

김장김치 맛은 가정마다 내려오는 고유의 비법과 어머니의 특별한 손맛이 곁들어져 지역마다, 집집마다의 그 맛이 다르다. 표준화된 김치 제조방법이 있긴 하지만 본인의 입맛에 맞는 김치담그는 방법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라도 지역의 김치는 기온이 따뜻한 탓에 멸치액젓, 새우젓갈, 고춧가루, 청각 등 각자의 취향에 따른 재료로 약간 짭짤하고 감칠맛이 나게 담근다.

음식에 관련된 식문화는 오래된 문화적 환경이나 성향에 따라 형성되고 또, 특정 음식을 먹거나 금지하는 것들을 통해서 민족과 문화 그리고 종교적 의미를 두기도 한다. 유대교의 식사 계율을 나타내는 카슈루트(kashrut)나 이슬람교의 할랄(halal)을 예로 들 수 있다.

김치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김치는 오늘날 K 문화라는 세계적 추세(trend)에 힘입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음식은 마시고(飮), 먹는(食) 것을 지칭하며 이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단위일 것이다.

한때는 마늘 냄새로 인해 기피 식품으로 여겨져 비칭(卑稱)의 상징이었던 김치가 이제는 K 문화의 위상과 저력으로 건강한 식품의 대명사가 되었고 전 세계는 김치 담는 법을 배우는 데 한창이다.

이를 입증하듯 유네스코에서도 2013년에 ‘김치’와 김치를 담고 나누는 ‘김장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는 우리의 김장 문화가 환경, 자연, 역사 등과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또 공동체 내에서 공유하는 집단적인 성격과 사람을 통해 생활 속에서 전승되어온 것을 높게 산 것이다. 김치를 담가서 서로 나누어 먹는다는 것, 그러한 나눔의 정신이 가족 간의 사랑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보편적 가치로 인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때 중국의 ‘라 바이차이’(辣白菜)와 일본의 ‘기무치’(キムチ)등 김치의 종주국에 관련한 소모적 논쟁들이 있었지만, 하얀색이 검은색이 될 수 없듯 한국의 김치는 ‘김치’다. ‘김치’는 다음을 향해 계속 질주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한국의 위상이 그에 대한 종지부를 찍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일상의 변화와 여러 접변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그 수요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치 족’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김치를 마트에서 사서 먹기도 하고, 아예 요즘에는 김장을 안 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옳고 그름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도 아니다.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외국인도 꼭 한 번쯤은 먹어보고 싶어 하는 김치의 소비량이 국내에서는 계속 줄어들고 있음이 아이러니하다. 자랑스러운 우리 김장 문화가 해외에서가 아니라 우리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내일의 시간으로 연결되는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수선한 나랏일로 겨울이 더 추워진다. 이 겨울 마음을 다해 정성껏 담근 김장김치가 가족과 공동체에 나눔으로, 사랑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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