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손필영>벚꽃 날리는 사이에 맞이한 국회의원 선거
손필영 시인·국민대 교수
입력 : 2024. 04. 17(수) 10:36
손필영 시인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도로에 국민의힘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시스
햇볕이 따스해지는 요즘에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T.S 엘리어트 말대로 땅 속에 죽은 듯 있었던 모든 식물들이 움트고 올라와 생명력을 뿜어낸다. 목련, 싸리, 살구꽃, 벚꽃이 산천 곳곳에 피고 그 잎을 떨구고 날려 꽃바람을 맞는다. 한때는 벚꽃을 개념적으로 보고 사쿠라라하여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꽃을 꽃 자체로 보는 시대가 되어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벚꽃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은 러시아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다.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벚꽃 동산이 있는 영지를 잃고 떠나는 귀족 남매의 모습과 자신의 일만 충직하게 해 온 늙은 하인이 모두가 떠난 집에 갇힌 채 죽어가는 모습이 씁쓸함을 남긴다. 활짝 폈던 벚꽃이 지면서 날리는 아름다움이 몽환적인 것 같기도 한 요즘은 산책하기에도 좋고 운동하기에도 좋은데 우리는 이 때에 선거를 치뤘다.

선거는 국민을 위해 진정한 일꾼을 뽑는다. 진실한 사람을 뽑아 그들에게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결정을 의뢰하는 것이다. 서울 의석수가 48석인데 이 중 더불어 민주당이 37석이고 국민의힘이 11석으로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한양) 500년 중심 구 도심지가 있는 강북과 1980년대 이후 개발된 강남의 견해차가 드러났다. 광주는 8석이 모두 더불어 민주당이고 전남도 10석 모두가 그렇다. 대구는 12석 모두 국민의힘이고 경북도 13석 모두 그렇다. 전국 지역구 254석 중에 161석이 더불어 민주당이고 90석이 국민의힘이다. 왜 숫자를 나열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늘 그랬듯 선거의 결과가 남북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이 또 동서로 갈라진 모습으로 드러나 문제라고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국민들이 자신의 견해와 같다면 범법자나 현재 기소중인 사람도 선택할 정도로 법적 절차와 규범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입법 활동에 신뢰가 사라진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할까.

앞에서 말한 <벚꽃 동산>은 20세기 초에 쓰인 안톤 체호프의 마지막 작품이다. 하얗게 날리는 벚꽃잎이 온 동산을 메울 때 오랫동안 그곳을 떠났다가 돌아온 그 영지의 여주인 라네프스가야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한 벚꽃 동산을 경매에 넘겨야 한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로빠힌이라는 농부의 아들은 벚나무를 베어버리고 별장지를 만들면 수입을 올릴 수 있어 경제적 상황을 타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 한다. 또한 벚꽃 동산의 아름다움은 농노의 고통의 댓가라고 말하는 대학생 가정교사 뜨로피모프와 그를 추종하는 여주인의 딸 아냐, 그리고 언제나 주인에게 충성을 다했던 늙은 파르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들은 러시아의 격변을 맞이하는 유형을 드러내지만 매 시대마다 등장하는 인물 군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며 변화를 두려워해서 몰락할 때까지 그냥 살아왔던 대로 사는 사람들, 시대를 누구보다 빨리 읽어 경제적 횡보를 걷는 사람들, 부당한 노동과 사유재산의 문제를 언급하지만 정작 부유한 계층에 붙어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과거의 모든 것을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큰 틀로 보면 살아왔던 대로 살아갈 것인지 변화한 세상에 맞춰 살아야 하는지의 문제로 귀착되지만 정답은 알 수 없다. 러시아는 뜨로피모프와 같은 인물들이 볼세비키 혁명을 이끌었고 많은 격변을 겪었다. 아냐와 같이 그를 추종하는 젊은 세력들이 많았으므로 혁명은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가 현재의 전체주의로 치닫는 러시아다. 여주인공 라네프스가야는 뜨로피모프를 순수한 영혼으로 언급하지만 누군가를 적으로 생각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그는 이미 순수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로빠힌과 같은 인물일까? 벚꽃 동산의 나무를 베어버리고 별장지를 만들면 당장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그곳의 모든 추억은 사라지고 그곳에 얹혀 살아왔던 사람들, 동물들도 사라질 것이다. 아름다운 벚꽃 동산도 지키고 사회의 변화에도 잘 대처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까? 이번 선거의 결과가 어떻든 국회의원들이 매순간 균형잡힌 슬기로운 선택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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