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주현진>사람의 가슴에 감동을 안기는 ‘사랑의 향기’
주현진 한국기록원 심의위원·광주문협이사
입력 : 2024. 04. 29(월) 15:56
주현진 심의위원
요즘,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만큼 세상의 인심이 메말라 있음이리라. 한 때 ‘탈무드’란 책이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까까머리나 단발머리에 세일러복을 입고 여고시절을 보냈던 70~80세대라면 이 책에 대한 향수는 더욱 진하게 다가올 것이다. 친구나 이성간의 만남에 있어서도 으레 등장하는 게 ‘탈무드’였다. 그 당시 ‘탈무드’를 읽지 않고서는 친구들과의 대화 단절은 물론 시쳇말로 요즘 유행하는 ‘왕따’당하기 일쑤였으니 이 책에 대한 위력과 열풍은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다.

마빈 토케이어의 ‘탈무드잠언집’을 보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점점 젊어지시네요’라는 말을 듣기 시작하면 벌써 노년기에 접어든 것이다. ‘좀 더 나이를 먹으면 화장실에서 나올 때 바지 지퍼 여미는 것을 잊게 된다’고 했다. 탈무드는 또 인간의 생애를 7단계로 설명했다. 한 살은 임금님, 모든 사람들이 임금님 모시듯 비위를 맞춘다. 두 살은 돼지, 진흙탕 속을 마구 뒹군다. 열 살은 새끼 양, 웃고 떠들고 마음껏 뛰어다닌다. 열여덟 살은 말, 다 자라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결혼하면 당나귀, 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가야 한다. 중년은 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람들의 호의를 개처럼 구걸한다. 노년은 원숭이, 어린아이와 똑같아지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늙은이가 되면 설치지 말라 했을까. 미운소리, 우는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소리도 하지 말고 조심 조심 알려주고 알고도 모르는 척 어수룩하게 그렇게 사는 것이 평안하다고 했다.

물론 개처럼 살다 원숭이처럼 늙는 것은 서럽다. 그 서러움이 서운함이 되고 서운함은 노여움이 되고 소신은 아집이 된다. 심지어 마이크를 잡아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오죽하면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을까. 이기려 하지 말고 저주시구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니 한 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 이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라고 했다.

‘위대한 연구’라는 의미의 ‘탈무드’는 나라 잃은 유대 민족들에게 5000년에 걸쳐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해 왔다. 이 책은 곧 그들의 생활규범이었다. 이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사회 지도자급이나 저명인사, 위정자들에게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 명 중 예닐곱은 곧 잘 탈무드를 추켜들곤 했다. 그만큼 이 책은 그동안 뿌리채 뽑혀가는 현대인들의 정신세계를 지탱해 준 큰 버팀목이었다는 애기다. 탈무드는 단지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생활에 도움이 될 유익한 교양 정보가 가득 담겨진 고전중의 고전이다. 그 가운데 ‘혀’에 대한 단상의 기록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재미도 있겠거니와 행간에 녹아 있는 삶의 지혜가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 장사꾼이 ‘성공하는 인생의 비결을 사라’며 온 거리를 외치고 다녔다. 남 보다 더 높은 지위와 명예를 갈망하는 게 인간의 욕망인지라. 인생의 비결을 판다는 장사꾼의 말에 너도 나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때 장사꾼은 자신을 에워싼 거리의 사람들을 향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비결은 자신의 혀를 신중하게 사용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왁자지껄 하던 주변은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기를 쓰고 몰려든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자리를 떴다.

사람들은 대부분 더 높은 곳을 지향한다. 권력을 갖고 부자 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명예를 얻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오직 앞만 바라보면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서는 한 번씩 앞도 보고 아래도 내려다 볼 줄 아는 여유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모르는 자가 어찌 큰일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자연의 이치는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모든 물을 포용하듯이 사랑도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그 사랑의 향기는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면서 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진한 감동의 여운을 남긴다.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병원과 학교를 세워 열악한 환경속에서 아이들에게 꿈을 꾸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한 이태석 신부님, 평생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던 테레사 수녀님, 이밖에도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평생을 봉사와 사랑으로 일관해 오신 분들이 수없이 많다.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세상을 가슴에 품고 살아 간 사람들이다. 이들이 있기에 그나마 세상은 향기가 있고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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