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낯선 남편과 남미 여행
임효경 완도중 前 교장
입력 : 2025. 01. 07(화) 16:47
임효경 완도중 前교장.
광주에서 남미까지 한 달간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여기저기 몸이 쑤시고, 정신도 흐릿하다. 그러나 계속 잠에 빠져서 무기력할 수가 없다. 한 달간 이어졌던 광대한 자연의 변화무쌍함은 매일 충격이었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미 5개국의 독특한 도시의 풍경들 또한 내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다. 그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의 미소와 목소리가 생생하게 내 뇌리에 새겨져 있다. 그것들을 어찌할 것인가? 그 감동과 감격을 나의 흐릿한 기억력이 오래 간직하지 못할 것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그래서 거칠고 힘든 긴 장정을 완주한 나를 참 잘했어! 토닥이며 글을 쓴다.

한 달 남미 여행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특히 남편과 하루 24시간 같이 있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물론 나는 늘 길 위에 서 있었다. 39년간 보통 한 시간 넘는 전남 이곳저곳 학교로의 출퇴근길을 합치면 상당한 여행이 될 것이다. 짐을 싸고 풀고 떠나는 것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 탓에 정년 기념으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긴 거친 여행이었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정년 후 여행을 남편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앞으로 남은 생을 동반할 사람이잖은가? 같은 경험과 인식을 가지고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며, 같은 언어를 곱게 쓰며 살아야 하지 않은가? 그 당연한 생각에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36년 결혼 생활 중 20년을 주말부부로 살아온 우리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24시간 같이 한 적이 없었다. 평생 대기업 영업 전선에서 바쁘고 거칠게 살아온 그는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은 야생 동물과(科)에 속한다. 우리는 각자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른 사람이다. 그이는 외향적이고 수집벽이 있고, 문을 닫는데 익숙하고, 앉아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사실 내향적이며, 물건 정리정돈 벽이 있고, 창문이 닫혀 있으면 답답해하고, 야외에서 하는 활동을 더 좋아한다. 이렇듯 정 반대 성향의 두 사람을 이만큼 이끌고 온 것은 주말 부부의 ‘애틋함’이었다. 섬에서 근무하고 집에 돌아온 주말에 남편에게 짜증내고 나면 금방 후회할 것을 알고 있었다. 더구나 따지고 채근할 시간이 없었다.

남편은 그렇게 길들여졌고, 나도 나름대로의 길을 걸어왔다. 서로 상관할 영역이 어차피 달랐다. 그런데 내가 이제 정년하고 둘만 남은 집안에서 다시 보니, 낯설고 다른 사람이다. 서로 바쁠 때가 좋았다. 온종일 붙어 있으니 매사 걸리적거리고 서로 양보하지 않는다. 그래서 긴 여행을 준비하고, 서로 다독였다. 잘해 보자고. 그동안 쌓은 정을 다시 세워보자고.

그동안 운동을 별로 하지 않은 남편이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사실 나는 매일 만보 걷기를 하고 근처 산도 자주 올랐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고 다리 근육을 키워 온 터였다. 경로우대증을 받아 든 남편은 살도 빠지면서 근육이 약해지고 있었다. 산티아고 800㎞ 길을 걸을 엄두가 나지 않은 그가 선수를 쳐서 남미 여행을 제안했다. 남미 여행이나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상황, 체력,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칠고 긴 여행이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준비한 기간 두 달은 금방 지나갔다. 같이 남미여행 관련 책을 2권 읽고, 다녀온 경험자들의 조언도 듣고, 남미 여행 유튜브 영상도 보았다. 남미는 봄이 시작되는 계절이지만, 3000m 넘는 고산지대는 겨울에 가깝고, 브라질로 옮겨가면 여름처럼 더울 것이다. 짐을 최소한 가볍게 준비해야 했고, 무엇보다 체력을 길러야 했다. 아프면 큰일이니 약 처방도 이것저것 한 보따리가 됐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티격태격했다. 하지만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남미 한 달 여행의 의미를 최대치로 올리자는 데는 합의가 됐다. 큰일을 도모하는 동지가 돼가는 것을 느꼈다.

남편과 여행을 하며 나와 정 반대된다고 느꼈던 그의 여러 가지 면을 다시 보게 됐다. 언어를 잘하지 못해서 눈치만 살피다가, 툭툭 던지는 말로 우리를 파안대소하게 하였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쓴다. 아침 인사가 ‘봉 지야!’다. 가이드가 ‘봉다리~’하시면 안 된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 남편이 인사를 한다. ‘비니루~!’ 여행 후 남는 건 사진 뿐이라며 수집벽을 작동시켜 어디를 가든 제일 열심히 사진을 찍어 증명될 멋진 사진을 남기는 공을 세웠다.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는 포터를 자처하고, 물론 치안이 불안한 남미에서 보디가드 역할도 충분히 해 주었다. 누구보다 긍정적이니 쾌활했다. 호텔에서나 레스토랑에서 봉사원들에게 팁도 잘 주는 멋진 노년의 신사 모습도 보여줬다. 고산증으로 악명이 높은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잘 견뎌내고,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고산병 증세로 힘들었던 하루는 나의 전문 요양 보호사였다.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가 제일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피츠로이(엘 찰튼) 봉우리를 바라보고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그를 만났다. 그 황금빛 봉우리가 비치는 카프리호수 앞에서 모처럼 조용히 휴식하는 그의 등을 사랑하게 됐다.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예수님과 손을 맞잡도록 찍은 사진을 그렇게 좋아하는 그가 내게 가장 큰 여행의 수확이다. 내게 사람이 더 중요한 것이다.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여름 해변을 거닐다가 오니, 한국은 눈이 내리는 한 겨울이다. 지구 정 반대편 모든 것이 색다른 세상을 다녀왔다. 하나님이 만드신 그 거칠고 광대한 세계 속에서 사람들이 때로는 아름답지만 더 자주 불편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다. 일상의 사소한 일로 내가 짜증을 내면 무엇 하겠는가? 이처럼 큰 깨달음이 없다. 얼마간은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테마칼럼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전남일보 PC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