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계엄군 성폭력 확인… 가해자는 오리무중
●조사위, 개별조사보고서 공개
강간·성고문 등 16건 진상규명
임산부·학생도 피해…후유증
진술위주·가해자 불특정 ‘한계’
입력 : 2024. 04. 02(화) 18:08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에 자행했던 성폭력 실태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의 조사로 44년 만에 드러났다. 하지만 조사 방법이 피해자 진술에만 치우쳐 있고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하는 등 한계도 뚜렷했다.

2일 조사위가 공개한 ‘5·18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개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관련 사건 19건(직권 11건·신청 8건) 중 16건은 ‘진상규명’, 3건은 ‘진상규명 불능’ 결정됐다. 피해 유형별(중복 포함)로는 △강간 및 강간미수 9건 △강제추행 5건 △성고문 1건 △성적 모욕 및 학대 6건 △재생산폭력 3건 등이다. 재생산폭력은 임신 중 강간으로 인한 임신중절수술, 구타로 인한 장 파열로 자궁적출한 사례 등이 해당한다.

조사위는 피해자를 상대로 122회의 진술조사를 진행한 결과 1980년 5월18일 도심시위진압작전에 돌입한 계엄군에 ‘강제 탈의 지시’가 내려진 시점부터 성폭력이 발생했다고 봤다. 피해자들은 당시 수창초교 앞, 금남로 일대에서 계엄군이 강제 탈의시킨 뒤 신체를 만지는 등 추행했다고 했다. 계엄군은 이 과정에서 저항하는 피해자들의 옷을 대검을 이용해 찢기도 했다. 조사위는 7공수여단 소속 계엄군들로부터 “중대장·지역대장으로부터 시위대가 도망가지 못하게 옷을 벗기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도 다수 받아냈다.

5월19일에는 계엄군에 강간당한 다수 피해자가 나타났다. 한 피해자는 전남여고 후문을 지나다 군에 붙잡혀 업무용 차량 안에서 계엄군 2명에 강간당했다고 진술했다. 임신 중이던 피해자는 후유증으로 하혈 등 유산기가 생겨 낙태수술을 했다. 같은 날 고등학생이던 또 다른 피해자는 학교에서 귀가하던 중 군인트럭에 납치돼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서 구타와 강간을 당했다. 해당 피해자는 “당시 2명의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함께 피해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 밖에 계엄군은 백운동 야산, 운천저수지 인근 등 곳곳에서 성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외곽봉쇄작전이 진행되고 있던 22~24일 집단 성폭행이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검문소를 피해 야산으로 이동하다가, 회사 동료와 귀가하던 중, 차량 시위에 참여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2~3명의 군인에 성폭력을 당했다.

계엄군의 만행은 27일 이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광주재진입작전을 펴던 계엄군은 연행·구금·조사과정에서 호송차량 탑승 전후 피해자들을 강간·추행했다. 피해자들은 또 상무대 수사관과 경찰에게까지 성폭행, 성적 모욕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위는 계엄군이 체포 위주 진압과 도심 곳곳 거점 배치돼 통금시간 후 주변 일대를 2~3명씩 수색·정찰하는 과정에서 강간 사건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도심에서 2~3명의 군인이 여성을 성폭행한 경우 주변에서 망을 봐주는 군인이 있었다는 공통점도 발견됐다.

피해자들은 현재까지도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해자들의 경우 사건의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다 생을 마감하거나 지금까지 투병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조사위는 오는 6월 말 국가에 제출할 종합보고서에 피해자와 그 가족의 치유와 명예회복 방안을 위한 권고사항을 담을 예정이다.

다만, 조사의 한계점도 드러났다. 조사 방법이 피해자 진술 수집에만 치우쳤고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종협, 이동욱, 차기환 위원 3명은 소수의견을 통해 “참고인 등 최소한의 근거도 없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피해자 본인 진술이 있고 피해자가 피해장소에 없었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없다면 ‘계엄군이 성폭력 가해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진상규명 결정했다”며 “이는 ‘성인지 감수성’ 이론을 차용한 것으로 논란의 소지가 크다”고 비판했다.

계엄군이 피해장소를 포함한 지역에서 작전 중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성폭력 가해자로 단정하는 것은 진상규명을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려는 특별법의 입법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

제3·7·11공수특전여단, 제20사단, 제31사단 부대원 등 군경에 대한 127회 조사를 했음에도 가해자를 특정할 만한 진술 또는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조사위 관계자는 “5·18 성폭력 피해자 조사를 위해 성인지 감수성, 국가폭력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 여성의 정조를 중시했던 80년대 사회적 통념에 대한 인식이 필수지만 조사관의 준비된 역량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며 “국가가 피해자들의 치유와 명예회복을 위해 책임 있는 조치를 강구할 수 있도록 권고하겠다”고 말했다.
강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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