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박현일의 색채 인문학>승려복의 색깔…조선시대 왕실 회색 금기시
(239) 회색의 모든 것
박현일 문화예술 기획자·철학박사·미학전공
입력 : 2024. 03. 05(화) 10:42
●색채의 감정과 심리

색채학자들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중년기를 거친 노인들은 검은색과 진청색 그리고 회색의 무겁고 가라앉은 느낌의 색채에 관심을 갖게 된다.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교 로스(Ross, Robert R.) 박사는 비극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는데, “회색과 파란색 그리고 자주색은 비극과 잘 어울린다고 하였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인 웰맨(Wellman, William A.)은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는 색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는데, 회색은 노령의 색이다.

그리자유(Grisaille)는 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는데, 모든 색채를 회색 톤으로 제한하는 것은 회색의 단색 화법으로 ‘죽은 화법’이라고도 부른다.

회색의 긍정적인 이미지에는 지성, 미래, 도시적, 지향적, 우아함, 겸손, 성숙, 신중, 회개, 회상이 있다. 회색의 부정적인 이미지에는 비애, 쇠퇴, 무관심, 이기심, 무기력, 후회, 애매함, 나이가 먹었음을 나타낸다.

2005년 컬러와 브랜딩 컨설팅회사 하츠 대표인 컬러컨설턴트 다카사카 미키(高坂美紀)는 색의 에너지를 이용한 컬러 테라피 10가지를 권유하였는데, 회색은 자극을 주지 않는다.

●색채의 이미지와 기능

은색은 차가운 달빛, 차가운 물, 차가운 이성의 색 그리고 내향적인 색이다. 은색은 밝은 정신, 정신적인 직업의 미덕을 연상시키며, 학문과 정확성의 색이다.

은색은 은의 가치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기능성을 나타내고, 단단한 색이며, 각진 형태를 연상시킨다. 또한 은은 풍족한 가정이나 유복한 가정을 연상시킨다. 귀금속인 은은 사용하지 않으면 검게 변하기 때문에 검정이며, 게으름의 상징이다.

은은 추가될 뿐 근본이 되지 못하며, 맨 나중에 생각나는 색이다. ‘금을 캘 수 있는 곳에서 은을 캐지 않는다.’, ‘영리한 사람은 금을 쥘 수 있을 때 은을 요구하지 않는다.’

●색채와 옷

조선시대(1392년~1897년) 왕실에서는 회색을 금기시하였으며, 이 시대에 천대했던 승려복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1517년에 프랑스 자선 수녀단체에서는 회색 모직물 의복에 하늘색 앞치마를 통일적으로 입었다.

우아한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것은 절제이며, 그래서 은은 절제의 색이다. 금색 드레스를 입은 마릴린 먼로보다 은색 드레스를 입은 영국의 다이애나 공주가 훨씬 더 우아하게 보인다. 이상적인 정장으로는 여름철에 밝은 회색, 겨울철에 어두운 회색이다.

회색은 추위와 겨울의 색이기 때문에 여름철의 회색 옷을 입으면 의욕이 상실되거나 슬픔에 잠긴 듯 보인다. 회색은 때를 타지 않으며, 때와 가난은 늘 하나이다. 고아원에 사는 고아들, 빈민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 오늘날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회색 옷을 입는다. 회색 옷은 비참한 상태를 나타내는 표식이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테오도르 비셔(Friedrich Theodor Vischer)는 1850년경 유행을 쫓는 신사를 다음과 같이 비웃었다. 이제는 회색이 유행이다. 정말 딱 들어맞는 유행이다. 그 무미하고 축 늘어진 디자인은 고아원생의 제복으로 안성맞춤일 것이다. 잘난 척 떠들어대는 허풍은 색이 없다. 검정조차도 너무 단호하다. 영혼이 그러하니 겉에 걸친 옷도 회색, 회색일 수밖에… 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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