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日 강제동원 희생자 ‘80년만의 귀향’
타라와섬서 희생 고 최병연씨
고향 영광서 추도식·선산 안치
유족 “4년간 긴 기다림” 눈물
시민단체 “일본 사과 없어“ 비판
입력 : 2023. 12. 04(월) 18:44
4일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됐던 고 최병연씨의 유해가 80여년만에 봉환된 가운데 영광문화예술의전당에서 추도식이 진행되고 있다. 강주비 기자
4일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됐던 고 최병연씨의 유해가 80여년만에 봉환된 가운데 영광문화예술의전당에서 추도식이 진행되고 있다. 고 최병연씨의 차남 최금수씨가 추도식에서 향을 피우고 있다. 강주비 기자
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됐던 희생자 고(故) 최병연씨의 유해가 8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4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3일 오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최씨의 유해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봉환됐다. 최씨는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타라와섬에서 벌어진 타라와 전투에 강제 동원돼 희생됐다.

지난 2019년 정부는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이 발굴한 아시아계 유해 유전자 교차 분석을 통해 최씨의 신원을 확인했다. 태평양 격전지서 신원이 확인된 한국인은 최씨가 유일하다.

당시 25세였던 최씨는 타라와섬에 끌려간 지 1년 만인 1943년 11월 일본군과 미군 전투에 휘말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투로 6000명 이상이 전사했으며, 이중 한국인 강제동원자는 1000여명에 달한다

최씨의 유해는 이날 고향 땅 영광으로 옮겨졌고 영광문화예술의전당에서 고인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도식이 거행됐다. 추도식에는 유족과 이상민 행안부 장관, 강종만 영광군수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최씨 유족들은 태극기로 감싼 소관에 담긴 최씨의 유해를 보고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80여년 만에 마주한 가족의 모습에 후손들도 감격해하는 모습이었다.

유족 대표로 최씨 차남 최금수(82)씨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장남 최향주씨는 아버지 유해를 끝내 보지 못하고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4일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됐던 고 최병연씨의 유해가 80여년만에 봉환된 가운데 영광문화예술의전당에서 추도식이 진행되고 있다. 고 최병연씨의 차남 최금수씨가 유족 대표로 추도사를 낭독했다. 강주비 기자
차남 최씨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작별해 기억은 없지만 어머니와 형님께서 늘 아버지와 헤어졌던 날을 말씀해 주곤 했다. 아버지께서 형과 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다시 만날 때까지 어머니와 잘 지내고 있으라’고 하고 태평양 전쟁터로 끌려갔다고 말했다”며 “아버지가 끌려간 곳이 태평양 작은 섬 타라와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최씨는 “2019년 기적처럼 타라와에서 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형님과 저는 당장 아버지를 고국에 모셔 올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기대를 가졌지만 코로나와 여러 사정으로 또다시 4년이라는 기다림을 견뎌야 했다”며 “그 사이 작년 겨울 형님은 아버지 유해를 선산에 모시기를 부탁하며 세상을 떠났고 이제 저만 홀로 남아 아버지를 맞이하게 됐다”고 울먹였다.

최씨 유해는 홍농읍에 위치한 선산에 안치됐다.

4일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됐던 고 최병연씨의 유해가 80여년만에 봉환된 가운데 영광문화예술의전당에서 추도식이 진행되고 있다. 추도식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및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강주비 기자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남은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유해 봉환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장관은 추도사를 통해 “우리 정부는 2019년부터 미국 DPAA에서 발굴한 아시아계 유해에 대해 한미일 공동 유전자 감식을 실시했고, 이를 통해 태평양 격전지에서 아시아계 최초로 최씨 유해를 기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봉환은 국가 책무이자 우리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기 위한 중요한 일이다. 정부는 마지막 한 분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강제동원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 사업과 조사 연구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4일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됐던 고 최병연씨의 추도식이 시작되기 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영광문화예술의전당 앞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앞서 추도식 시작 전 일본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모임)은 영광문화예술의전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강제 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모임은 “뒤늦게 유골로라도 가족 품으로 돌아온 건 다행이고 기적 같은 일이지만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부의 성의나 노력은 없었다”며 “일본 정부는 2016년 ‘전몰자 유골수집 추진법’을 제정해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 유골을 발굴하면 DNA 대조를 거쳐 유족에게 인도하고 있다. 단 DNA 검사 결과가 일본인으로 나올 경우만이고 한국인 피해자는 원초적으로 배제해 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임은 이날 일본 측이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 ‘반인도적 행위’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들은 “오늘 80년 만에 고향 땅을 밟은 뜻깊은 추도식에 정작 가해자 일본은 추모사는커녕 얼굴조차 비추지 않고 있다. 용납할 수 없는 반인도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며 “전범국 일본은 무고한 조선인을 사지로 끌고 간 것에 대해 사죄하고 법적 책임과 상응하는 배상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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