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이웅재>나는 당직전담원입니다
이웅재 학교 당직전담원
입력 : 2024. 06. 27(목) 18:01
16시 30분 출근시각이다.

출근시각 10여분 전 여느때 처럼 행정실로 향한다.

당직일지를 수령키 위해 행정실 문을 두드리고 “안녕하세요” 하고 들어서니 다른 날과는 달리 주무관들이 모두 인사를 받아 “안녕하세요”를 한다. 일지를 수령하고 나오던 참에 담당 주무관이 자리에 앉아 부른다. 무슨 일일까? 지난주에 부탁했던 필요 보급품에 대한 이야기려니 하고 다가섰다. “민원이 발생했다고 하면서 서부지원청의 통보”라고 한다. 잠시 잊고 지냈던 지난주 토요일의 상황이 떠오른다.

당시 16시 20분경 CCTV로 감시, 관찰하고 있던 중 건장한 남성이 무겁게 보이는 배낭을 메고 잠겨진 자바라철문을 자연스럽게 넘고 있었다. 계속 주시를 하고 있는데 유치원을 돌아 정문을 가로질러 운동장 한켠 운동기구들이 설치된 곳에 배낭을 놓고 웃옷을 벗기 시작하였다. 일부 주민, 중고생들이 귀가, 하굣길에 지름길(?)(정문→후문)로써 월담을 하는데 이 침입자는 운동을 하기 위해 월담을 하였던 것이다. 호각을 불어 나가줄 것을 요구하고 당직실로 돌아와 다시 CCTV앞에 앉았다. 옷가지 등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배낭을 메고 월담을 해서 교정을 빠져 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있다가 당직실의 전화벨이 울렸다. 순간 직감하면서도 전화를 받았다. “15년동안 다니면서도 오늘과 같은 일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말문이 막혔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모여 배움을 익히고 사회성을 배우고 세상에 눈을 떠가는 학습의 공간, 도량에서 어른으로서의 체면과 이득만 챙기는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에 헛웃음과 함께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사건의 개요이다.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침입자의 일방적 이야기가 민원으로 돌아 온 것이다. 월담하는 것을 보고 젊은 사람일 것으로 간주했는데 목소리는 중장년의 지긋한 목소리였다. 배낭 멘 것을 보면 주민은 아니였다. 아예 운동을 목적으로 학교를 찾았던 것이다.

요즈음 갈수록 세태가 험악하여 어떠한 장소를 불문하고 이상하고 괴이한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지 않는가. 또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면 모두 놀라 당직실로 몰려 왔을 것이다. 교문 개방시에 데이트하는 사람, 이 학교를 졸업한 중고생, 어른들이 추억을 찾는다며 교정을 누비고 빈 교실 유리 창가를 기웃거리는가 하면, 중고생들이 차지한 운동장에서는 운동장의 주인인 어린이들이 오히려 위축되고 힘에 눌려 놀이공간을 빼앗긴 설움을 호소하곤 한다. 설득과 통제를 아우르다 보면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설득을 할 것인지 아니면 교칙을 앞세워 일방적 퇴교를 요구해야 할 것인지가 모호한 지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인지부조화로 인한 갈등과 충돌이 발생하고 결국 민원 또는 지구대 출동이라는 현실감 없는 상황만 전개된다. 왜냐하면 지속적이지 못한 단방약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부근에 대학도 있고 중고등학교 등 유휴공간이 곳곳에 많이 있는데도 굳이 초등학교를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또한 일부학교들은 개방을 하지 않으며, 부근의 개방하고 있는 학교로 유도를 한다는 타학교 당직선생님의 이야기도 있다. 신나게 기력을 쏟고 난 후의 어른이나 학생들이 현장에 남겨놓은 것은 각종 음료병, 과자비닐봉투, 담배꽁초, 애완견의 배변물 등 각종 오염물질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느껴진다. 사실 이글을 쓰기전 민원이 발생한 자바라철문을 넘어 보려 해도 도저히 넘을 수가 없었다. 나름 평행봉도 했고 아직은 근력이 있다고 자신했는데 목적없이는 넘기 어려운 시설물이었다.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돌아가는 세상,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고 무익하다고 생각되면 해꽂이 하여 못쓰게 만들어 버리려는 놀부 심보가 확대 재생산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숨만 나온다. 마지막으로 “라떼는” 이라는 신조어를 수없이 되뇌이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당직업무라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을 각 학교 당직전담원 동지들에게 전하고 싶다. 앞으로 나라의 동량이 될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의 공간이 교정이라는 것을 반추하면서, 참을 인(忍)자로 마음을 달래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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