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승호>한(恨)많은 백아산(白鵝山)이여!!
정승호 화순 이서·백아면 마을소각 피해주민대표
입력 : 2024. 06. 24(월) 17:57
정승호 화순 이서·백아면 마을소각 피해주민대표
백아산은 화순군 백아면(북면)에 있는 산이다. 백아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지금 백아산은 마당바위에 구름다리를 설치하고 산자락에 맛집도 있어 등산객들이 수없이 찾아오는 명산이 되었으나 1950년 6·25전쟁 때에는 공비들의 은신처가 되어 전투기가 추락하기도 한 격전지로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다. 그래서 백아산 철쭉꽃이 해마다 붉게붉게 피는지도 모른다.

이 백아산 지역 공비토벌군 11사단 20연대는 공비들을 깊은 산 속으로 고립시킨다는 전략으로 1950년 12월 10일을 전후해 백아산과 무등산 사이에 60여마을을 모조리 불을 질러 초토화 했다. 토벌군은 주민보호를 위한 어떤 적절한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고, 예고도 없이 마치 적군의 아지트를 공격하듯이 총을 쏘며 마을에 들이닥쳐 미리 준비한 기름을 초가 처마에 뿌리고 불을 지르고 주민을 강제로 몰아냈다. 주민들은 공포속에 혼비백산, 이불만을 챙겨 대대로 살아온 고향 정든집이 불바다가 된 것을 뒤로하고 살길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져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국군이 무서워 산속으로 들어 갔다가 빨치산이 아닌 빨치산이 되기도 하고 전후에는 연좌제로 가족들이 많은 타격을 받기도 했다. 토벌군이 작전을 나가 붙잡아온 사람들은 진짜 빨갱이는 없고 때에 찌든 무명흰옷을 입은 주민들이었다. 이 주민들은 국군이 온다는 말을 듣고 산속으로 피난을 갔던 사람들이다.

이 토벌군의 마을소각 사건을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물적재산 피해로 간주했다. 마을소각은 생명권을 박탈한 행위라는 것을 모를 리 없을것인데 이사건을 일반재산피해로 간주처리한 위원회의 내막을 모르겠다.

이 초토화 작전은 세계2차대전때 일본군이 베트남 버마전선에서 사용한 비인도적 작전으로 유엔에서는 전범죄로 처벌은 물론, 공소시효도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공비토벌군 11사단은 이 초토화 작전행위를 전사에 기록하지 않고 은폐하였고 국방부 전사 편찬연구소는 한국전쟁사에 “11사단은 이들로 하여금 촌락(村落)으로부터 깊은 산속으로부터 분산패주 않을수가 없게 함으로써 주민의 피해를 감소시켰다”고 왜곡기록해 놓았다.

무엇을 어떻게해서 공비들로 하여금 깊은 산속으로 분산패주 않을수가 없게 했단 말인가? 삼척동자가 읽어봐도 “마을을 소각”함으로써가 빠진 문맥이다. 즉 마을소각을 은폐기록 한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전쟁이 끝난뒤에도 복구사업이나 피해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또 근간에 11사단의 민원회신(2023.11.28.)을 소개하면 ‘11사단(20연대)의 부대사,부대계보, 전투상보, 전투명령등을 확인한 결과 관련기록을 찾을수 없다’고 했다. 이 회신은 1950년 한국전쟁 시 11사단 20연대의 공비토벌과정에서 마을을 소각했으니 사단차원에서 사과하고 은폐전사를 바르게 기록해 줄 것을 요구한 진정서의 답변이다. 당시 마을소각 전투행위를 은폐했기에 기록에 없는 것을 없다고만 눈가리고 아웅하는 궁색한 답변만 하고 현지조사를 해보자는 요청도 응하지 않는 군부권위 주의에 힘없는 주민들은 어느곳에 호소해야 한단 말인가? 하늘만 쳐다볼 뿐이다.

저 악명높은 거창양민 학살도 11사단(사단장 준장 최덕신) 9연대장(오익경 대령) 3대대장(한동석 소령)이 1951년 2월 10~11일 이틀간에 신원면에서 저지른 사건으로 남자 109명·여자 183명·소아 225명· 등 모두 517명을 집단 학살했다.

1961년 5월16일 이후 군부는 거창양민 학살자 위령비를 무너뜨려 땅에묻고 유족대표들을 긴급조치법으로 빨갱이로 몰아 처벌하기도 했다. 국군이 나라를 지키지 못해 남침을 당해놓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군이 빨치산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살고 있는 집에 불을 지른 것은 한국전쟁사에 큰 오점이며 과오로써 철저한 조사로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방부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사건등에 대해서 관련내용이 대부분 공식전과보고 기록에 들어있지 않기에 피해자들의 일방적주장을 인정할 수 없고 민간인 희생사건 자체가 전사(戰史)의 기록과 다르다고 주장했다(국방부 기획 총괄 담당관).

또 2023년 봄에 국방부에서 백아산전투 전사자 유해발굴을 한다는 뉴스를 보고 백아산 지역 작전피해 주민들에게도 위로사과도 같이 하는 것이 절차상 타당하다고 주장했으나 국방부는 이것도 불응했다.

거창 양민 학살, 함평, 장성 그리고 화순 백아산 지역 초토화 작전 총지휘자 최덕신은 지금 평양애국지사 묘지에 안장돼 있으니 열속물길은 알아도 사람속은 모른다더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런 사람을 이승만 대통령이 토벌군 대장으로 임명했으니 국가의 책임이 더욱 크다 할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는 ‘전사를 고쳐쓰고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된곳이 많으므로 피해가 특히 많은 마을이나 지역공동체가 자체 상처를 치유할수 있도록 보상도 필요하다’고 권고하였다.

6·25 74주년을 맞아 노약한 손으로 펜을 들어 국가는 사과하고 은폐왜곡전사를 바로잡고 그리고 피해보상도 하라는 권고사항을 이행하라고 외치는 바이다.

과거사정리는 민주국가미래지향 원동력이다.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자는 현재에도 눈먼자다. 공비토벌을 위해 마을소각은 대한민국의 영원한 책임이라고 만천하에 천명하는 바이다. 74년의 한을 풀어주길 바란다.
발언대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전남일보 PC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