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인간관계의 어려움 보여준 ‘어른을 위한 동화’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 ‘후레루’
입력 : 2025. 06. 30(월) 11:23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 ‘후레루’. (주)팬 엔터테인먼트 제공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 ‘후레루’ 포스터. (주)팬 엔터테인먼트 제공
일본 애니메이션의 탄탄함은 진작부터 장르를 다원화해왔다. 이 가운데 성장 드라마를 담은 애니는 ‘청춘 애니메이션’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초평화 버스터즈’로 함께해 오던 청춘 애니의 거장 3인방이 영화 ‘후레루’로 다시 뭉쳤다.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오카다 마리 각본가·타나카 마사요시 캐릭터 디자이너가 그들이다. 이 연대는 지난 10월에 있었던 제26회 부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장상을 비롯한 3부문 수상을 가져갈 만큼 전문적이었다. “수려하고 안정적인 작화, 섬세한감정 묘사, 감성적인 전개”라는 평가와 함께. 수상작 타이틀 ‘후레루(ふれる。)’는‘접촉하다, 닿다’라는 의미의 동사다.

어린 시절 섬에서 함께 자란 세 소년 아키, 료, 유타는 아이들답게 투닥거리며 싸우다 고슴도치처럼 생긴 신비한 요괴 후레루를 만난다. 마후레 섬의 전설로만 알고 있던 후레루와 친구가 되는 바람에 이들에게는 손을 마주 대면 서로의 속마음을 읽는초능력이 생겨난다. 세 친구들은 초능력으로 서로 생각하는 바를 읽게 되자 상대를이해하게 되고, 서로간에 마음이 잘 맞닿아 있다 여기며 사이좋게 자란다. 그리고 도쿄로 상경한 스무 살에도 홈 셰어를 하며 후레루와 함께 살아간다. 요리에 재능이 있어 주방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키는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고 소통이 서툴러서 사회적 적응력이 떨어진다. 물론, 두 친구들과는 손을 잡으며 소통하지만. 키가 작은 유타는 패션디자인 학원을 다니며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어 하는데 자아에 몰입하는 편이라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대한 결핍감 등 콤플렉스가 많다. 이 둘에 비하면, 회사원 료는 집안 형편상 일찍 경제적 가장 역할을 해서인지 현실적이며 사회생활에 대한 적응력이 있어서 셋 중에 리더 격이다.

어느날 핸드백을 날치기당하는 나나를 도와주려던 아키. 아키를 도와주기 위해 료, 류타 그리고 후레루가 뭉친다. 나나는 같이 사는 친구 주리와 함께 스토커를 피해 집을 구하던 중이라 도움을 받은 이들 세 청년의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된다. 다섯 사람이 된 셰어 하우스의 북적거리는 관계망은 크고 작은 에피소드, 예측불허의 후폭풍을 예고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관계의 네트워크 속에서 얽히고 설키며 살아가고 있다. 크고 작은 사회의 구성원 관계, 선·후배 관계, 동료 관계, 친구 관계, 부부 관계, 가족 관계…. 사회적 거리감을 두는 인간관계일수록 좋은 감정만 보여주려 한다. 가까운 관계라 해서 다를것이 없다. 상대가 상처를 받을까 봐 관계가 틀어질까 싶어 감정의 이면을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여 그저 좋은 감정으로 포장한다. 좋은 감정만 전달하고 나쁜 감정을소거하는 매개체인 후레루처럼.

그렇지만 참고 감추고 포장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때로 감정을 직시하고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터트림으로써 진정성을 공유하기도 하니까. 물론 여기에는, 악화의 경우 수를 배제할 수 없다. 오히려, 악화일로로 치닫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처럼 폭풍같이 커지는 악화의 경우를 대비해서 성숙한 숙고와 함께 정성 어린 기술적 소통을 요한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참 어렵다. 영화의 혼란스러운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 엔딩곡 요아소비의 ‘모노톤(monotone)’에 귀를 기울였다. ‘계속 나는, 우리는 혼자만의 세계를 살고 있어…, 그렇게 모호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으면 어른이 될 거라 생각했어…, 서로 어울린 마음이 닿는 한순간 이세상은 하나로 보였어.’ 영화를 함께 본 K교수는 ‘어린 왕자’가 연상된다 했다. 필자에게도 영화를 보는 동안 연상되는 동화가 있었다. 디자이너 마사요시가 후레루 캐릭터를 고슴도치 형상으로 삼은 것은 고슴도치 몸에 난 침들로부터 방범 레이저처럼 죽죽 벋어 닿으면 상처가 되는 관계망을 형성하기 위한 이미지 표현이었겠지만, 필자는 독일 동화 고슴도치이야기가 떠올랐던 것이다.

고슴도치 무리가 사는 거주지에 추위가 닥쳤다. 추위를 덜기 위해서는 서로의 몸을 밀착시켜 체온을 나누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그런데 밀착하면 할수록 고슴도치의 몸에 나 있는 침이 피부를 뚫고 들어와 아프다. 어떻게 하면 뾰족한 침의 아픔을 줄이면서 체온도 나눌 수 있을까, 그 적정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인간관계는 지나친 밀착도, 과도한 거리감도 불급이다. 적정거리를 고슴도치 무리의 경우처럼 두는 것이 현명하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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