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창·조재호>평교사 '배이상헌'
조재호 월계초 교사
입력 : 2025. 03. 09(일) 17:33
조재호 월계초 교사
혹시 ‘등에’란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말파리, 쇠파리, 질척이파리로 불리는 ‘곤충’을 뜻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별명이 “아테네의 등에”였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은 그가 다가오면 진절머리 났던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서, 사람을 흔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아테네 시민들의 품위 있고, 근사한 좋은 삶에 대해 질문을 해댑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게 정의라고요”라는 식입니다. 사람들은 평온한 삶을 흔드는 그가 미웠습니다. 그에 대한 악담을 합니다. 권력자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귀나 명예와도 상관없이 영혼을 후벼파는 질문을 해대는 사람을 인류 역사는 반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광주 교육계에, 아닙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교육계에 그런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도덕교사 배이상헌 입니다. 1989년에 ‘평교사’가 된 그는 2025년 2월, 스스로 교사를 그만두시게 되었습니다. 36년 교사 생활을 했는데 38호봉이라는 사실이 그의 울퉁불퉁한 교사직의 경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교조를 가입했다는 이유로 5호봉, 진보교육감 체제 속에서 교권 탄압에 의해 5호봉이 다른 교사들보다 더 불이익을 받은 것이니까요. 36년 교직생활을 했음에도 명예퇴직을 못했습니다. 병마에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교사로 교직을 수행하시다, 평교사로 퇴직하시는 그런 선생님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지만, 교사 배이상헌의 이력은 참 남다릅니다.

백무산의 시 중에 ‘가르치는 것이 싸우는 것이라면 싸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이다’라는 긴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전교조 해직 교사를 위한 노동자 시인의 헌사입니다. 시의 제목 그대로가 바로 평교사 배이상헌의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학생자치’를 가르치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는 해직을 당했습니다. 동료 해직 교사 중에는 어떤 분들은 출세를 해서 교육감이 되고, 전교조에서 높은 자리도 차지하며, 교장이 되는 좋은 시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처럼 그는 ‘좋은 시절’에도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을 해댑니다. 진짜, 그것이 ‘학생자치’입니까? 진짜 그것이 ‘오일팔’교육입니까? 진짜 진짜 ‘학생인권’이 뭐지요? 어떤 것이 성평등 교육입니까? 그는 계속 가르치면서 싸웠습니다.

그는 싸우면서 가르쳤습니다. 해직 전교조 교사가 가진 타이틀도 거부한 그는 계속 싸웠습니다.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학생인권을 가장 처음 먼저 옹호하며, ‘인권조례’를 위해 헌신했던 그가 아이러니하게 바로 그 조항을 악용한 어린 친구들과 ‘동지’들에 의해 고발됩니다. 불명예스럽게 아동학대범으로 말이지요. 이미 교단은 정당한 권위를 상실했다는 체념에 빠진 교사들은 침묵했지만, 그는 싸웠습니다. 싸우기 위해 그가 광주 전 시민을 대상으로 ‘공개수업’을 합니다. 아테네 시민처럼 늘 멀찍이서 그를 불편하고 꺼림직하게 바라보던 나는 그의 그 ‘수업’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가 ‘고발’당했던 수업을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서 덤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성역할을 바꾸어 체험하는 영화를 보고 학생들과 질의응답하는 깨인 수업이었습니다. 그는 “싸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이다”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1989년, 살레시오고에 평교사로 왔던 그가 2025년 평교사로 교단을 떠납니다. 지난달 26일, 그의 친구들이 그를 위해 조촐한 퇴임 모임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교육과 삶을 이야기했다고 전해집니다. 나는 교사 배이상헌을 생각하면,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불편합니다. 그냥 뭔가 그렇습니다. 우수한 수많은 교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석사, 박사를 얻는 분위기에 아무런 ‘학위’도 없는 그가 커다란 안경 너머로 꿰뚫었던 질문들이 나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모임에 초청받았어도 안 갔습니다. 존재 자체가 타인의 삶을 요동치게 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만약 대부분의 ‘우리’처럼 적당히 ‘브랜딩’ 같은 것을 했다면 그도 ‘평교사’로 그냥 퇴직하지 않았을 것이죠. 가장 헌신했던 ‘학생’들의 배반, 그리고 청춘을 받쳐 왔던 교직단체에 의해 모욕을 받았던 그의 삶 자체가 나의 일상을 깨뜨리며 영혼을 출렁이게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듯, 그는 자기가 가르치며 싸우고, 싸우며 가르친 그 공동체에서 ‘병’을 얻었습니다. 비겁한 동료 교사인 나는 그저 그의 건강만 기원할 뿐입니다. 배이상헌 선생님.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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