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과 상응한 전쟁·이주사를 조우하다
●'사라예보 40주년 윈터축제' 초청 이매리 개인전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 주제
내달 8일부터 3월8일까지 열려
개막 특별 프로그램 등 4개 파트
내달 9일 프리젠테이션·토론 참여
영상·사운드·드로잉 퍼포먼스 등
입력 : 2025. 01. 30(목) 16:46
이매리 작가.
이매리 작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
전쟁사를 예술로 접목한 ‘시(詩) 배달원’ 이매리 작가의 개인전이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광주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 작가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열리는 ‘사라예보 40주년 윈터축제’에 초청돼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을 주제로 개막 특별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진흥회의 국제협업지원 기금과 보스니아체르고비나 역사박물관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전시는 모두 4개의 파트로 구성됐다.

먼저 다음달 7~12일 보스니아 컬처센터에서 개최되는 ‘2025 사라예보 40주년 겨울 축제 국제전’은 19개국 49명의 작가가 참여해 다국적 네트워크 협업 전시를 통한 국제 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망하고 다양한 미학을 도출하는 자리다. 이 작가는 국제전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 발칸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영상과 사운드, 드로잉 작업으로 ‘전쟁사’를 풀어낸 ‘이매리 개인전’은 다음달 8일부터 3월8일까지 보스니아 국립역사박물관, Chaelama Depot 컨템포러리, BKC 보스니아 컬처센터에서 한달간 열린다. 특히 국제 작가들이 참여해 오버랩 작업을 통해 완성해 나갈 드로잉 퍼포먼스가 주목된다.

이어 다음달 9일 Chaelama Depot 컨템포러리, 사라예보 시립미술관에서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미술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토론에 패널로 함께한다. 이날 영상 프리젠테이션 상영도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아카이브 프리젠테이션과 2차 리서치는 오는 8월28일부터 9월12일까지 보스니아 국립역사박물관, 사라예보 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를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리예보 사건’과 1992년부터 3년 넘게 이어지며 잔혹한 ‘인종 청소’가 자행된 ‘보스니아 전쟁’ 등이 벌어진 현장을 답사하고 작품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매리 작 ‘Homeostasis_gold paper _newspaper’.
이번 ‘사라예보 40주년 윈터축제’에서 열리는 개인전은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전시 ‘그들은 우리가 된다’에서 선보인 3개의 섹터 중 첫 번째 섹터였던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을 빼 와 더 확장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 주제에 나온 ‘7천개의 별’이란 고려인마을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을 상징한다. 고려인들의 조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이들로 그 뿌리가 우리 동포인 셈이다. 고려인들이 난민으로서 겪어야 했던 핍박한 삶을 조망하고 약속의 땅을 찾아 헤매 도달한 곳이 광주였다는 것을 되짚는다.

인류사에 진행됐고 또 지속되고 있는 국제적인 전쟁사는 이 같은 고려인들의 삶과 광주의 역사와도 상응한다.

사라예보는 전쟁사의 굵직한 사건의 발단과 인종 학살이 이뤄졌던 참혹한 역사가 숨 쉬는 현장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를 고려하면 이번 이 작가의 개인전은 그가 그동안 선보인 작품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평가다.

특히 미리 완성된 결과물을 전시 현장으로 가져가는 게 아닌, 현장 탐사를 통해 다국적 작가들과 협업해 아이디어와 작업을 결합해 완성해 나가는 점에서 특별하다. 기존의 영상작품들은 가져가지만, 보스니아 역사박물관에 마련된 30여평의 공간에서 드로잉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오버랩을 통한 회화작의 윤곽이 드러날 예정이다.

이번 전시의 뿌리인 작품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은 인류의 이주사와 전쟁사적 관점에서 시작해 광주 안의 이주민들의 역사를 망라한 결과물이다.

전쟁은 오늘날에도 끝날 기미 없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그 예시다.

전쟁의 본질은 결국 수없이 많은 민간 희생자와 피난민들을 낳는다는 점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가자 지역’의 90%가 난민으로 전락했다. 이처럼 거주지를 본인 의지대로 선택 할 수 없는 상황은 우리 민족이 여러 차례 겪어야 했던 과거를 상기한다.

이 작품은 세계 제 1·2차 대전, 각 나라의 내전, 분쟁,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사 등으로 얼룩진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자행된 시대사적 전쟁사들에 대한 Map(지도)이자 이를 드로잉적 방식으로 표현한 작업이다. 이 작업을 통해 동시대 이민자들에 대한 개인의 삶과 그들의 근원을 찾는 방법으로 제작한 기록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가는 그간 전쟁사와 이주사를 결합한 탐구 방식을 사회학적 시선과 맥락으로 엮어 시각화한 작업을 펼쳐 왔다. 이 작품도 광주의 고려인마을이 모티브가 됐지만,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확장되며 전체적 맥락을 주도하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감상할 수 있다. 이에 더 나아가 ‘사라예보 40주년 윈터축제’에서 개막 프로그램을 통해 국제 작가들의 각기 다른 아이디어와 연결고리를 갖고 어떤 작품으로 탈바꿈할지 더욱 기대케 한다.

이 작가는 “전 세계적 정세 불안과 혼란 속 전쟁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며 “사라예보 시립미술관의 인적 네트워킹이 매우 좋아 밀도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문화일반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전남일보 PC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