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둥둥꽝꽝 우렛소리로 삿된 것은 쫓고, 경사는 끌어들이자
432. 마당밟이의 내력
입력 : 2025. 01. 30(목) 18:23
진도소포 걸군농악.
북소리 둥둥 징소리 꽝꽝/ 장구는 동당동당 각(角)은 뛰~뛰/ 깃발은 펄럭펄럭 춤은 사뿐사뿐/ 짐승 얼굴 사납고 호랑이 모자 드높네/ 집뜰 우물 부엌에서 우렛소리 땅을 울리며/ 나아갔다 물러났다 조수처럼 분주하네/ 문호(門戶)의 신령께 새로 치성을 더하니/ 숲과 시내 도깨비들 도망가기 바쁘네/ 종규(鍾?)가 눈동자를 움켜쥐고 서서 먹고/ 피를 뿜어 불 만들어 온몸을 태우네/ 귀신도 간 있다면 떨어지고 말았을 터/ 살려달라 애걸하며 머리를 조아리다/ 후다닥 정신없이 문밖으로 도망쳤나/ 천지가 말끔하고 달과 별이 찬란하네/ 징을 치고 손 흔들어 자른 듯이 그치니/ 장사들은 진을 깨고 노래도 멈추었네/ 그제야 부엌 구석에선 삽살개가 짖어대고/ 사람 떠난 빈 울에는 적막함이 더하네

광양사람 황현의 ‘매천집’(권4)에 나오는 내용, 1906년 구례에서 행해진 정월 대보름 마당밟이 풍경이다. 지난 2021년 설날을 맞아 본 지면에 풀어둔 장면이다. 남도지역에서는 이 풍속을 통칭해 ‘마당밟이’ 더러는 ‘지신밟기’라고 한다. 이 풍속은 전국 일반의 정초 풍속으로 흔히 농악이라고 범칭한다. 다시 주목하는 것은 ‘왜 마당을 밟을까’이다. 우선 지신밟기와 마당밟이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는 해석을 본다. 내 은사인 고 지춘상은 ‘지신밟기와 마당밟이굿’(동아시아민속학, 2010)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신밟기와 마당밟이는 외형상 그 구조는 같으나 이끌어가는 형태나 내용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지신밟기는 착한 지신과 가신을 찾아 주사로써 발원하여 무사태평을 축원하는 일종의 경사굿이라면, 마당밟이굿은 마당이라는 한정된 지역 안에 있는 악귀가 출몰하지 못하도록 밟고, 각 가신을 찾아 참배하고 악으로서 축귀 정화하여 촌태 민안과 풍년을 축원하는 제의굿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과연 그럴까? 지면의 한계상 결론적으로 말하면 마당밟이와 지신밟기는 이름이 다를 뿐 같은 의례이다. 왜 그러한가? 연초의 의례일수록 나쁜 것을 내쫓고 유익한 것을 불러들이는 기능이 복합적으로 구성된다. 연초의 마당밟이가 제액과 초복의 두 기능이 복합돼 있다는 뜻이다. 세시 민화인 문배(門排) 혹은 우리 민화의 대표격으로 거론하는 까치호랑이 등이 마당으로 나가면 마당밟이가 된다는 점은 지난 칼럼에서 여러 차례 언급해 뒀는데, 이를 포함해 왜 마당밟이를 벽사진경(壁邪進慶)이나 제액초복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따로 설명하겠다. 마당밟이를 땅속에 있는 나쁜 귀신을 묻어버리는 것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있다. 오늘날 농악이 궁중의 나례(儺禮) 등 최소 예닐곱 개의 원천요소들이 모여 근대기에 재구성된 장르라는 점을 여러 차례 소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매귀(埋鬼)라는 한자 조어 시기와 이유가 의심스럽다. 황현의 표현처럼 도망가거나 쫓아내기 때문에, 나는 ‘막는다(방어)’나 ‘멕이(메김소리 등)’의 뜻으로 푸는 편이다. 대체로 전라도에서는 마당밟이라는 이름을, 경상도에서는 지신밟기라는 이름을 선호하였을 뿐, 둥둥꽝꽝 우렛소리로 삿된 것을 쫓고 마당 밟아 진경(進慶)하는 의미는 같다.

영광우도농악.
마당밟이, 마한의 소도(蘇塗)까지 거슬러 올라야

먼저 마당의 의미를 상고한다. 마당은 한옥 구성으로서의 마당을 포함해 마을의 마당, 나라의 마당 심지어 하늘에 대칭되는 땅으로서의 마당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종묘사직의 사직(社稷)까지 연결된다는 점을 ‘예기’의 ‘교특생(郊特牲)’에서 읽을 수 있다. “사(社)는 토지의 신을 제사하는 것으로 음기(陰氣)를 주관한다. 사(社)에 대한 제사는 땅을 신으로 여기는 도(道)이다. 땅은 만물을 싣고 하늘은 일월성신을 매달았으니, 땅에서 재물을 취하고 하늘에서 법칙을 본뜬다(후략).” 국어사전을 참고해 보면, 뜰, 뜨락, 뒤란, 정원 등을 포함해 때, 상황, 판, 판국, 형편 등 폭넓게 쓰이는 용어다. 15세기부터 ‘맡’으로 쓰이다가 16세기에 맏, 17세기에 다시 맡, 18세기에 이르러 마당(맏+앙)으로 고정되었다. ‘맏’은 맏아들, 큰아이 등의 용례처럼 ‘으뜸’, ‘큰’의 뜻이고 ‘앙’은 장소 혹은 공간을 말한다. 남도지역 옛 노인들은 이렇게 증언한다. “보리타작이나 벼 수확할 때 비가 오면 마당 속에 있는 악귀가 지상으로 출몰해 질컥거리게 하므로 이 귀신들이 출몰하지 못하게 매구굿을 친다.” 귀신을 땅에 묻는다는 매귀(埋鬼)에 합당한 설명이다. 하지만 기능적으로 보면 농사를 위한 공간 조성의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포장되지 않은 흙마당을 제대로 다지는 것이 농사 활동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밟는다는 뜻이 무엇일까? 총체적으로 보면 설날 세시에 포괄되는 대보름의 다리밟기(踏橋)가 좋은 사례다. 이날 다리를 밟으면 일 년간 다릿병을 앓지 않고, 열두 다리를 건너면 일 년 열두 달 액을 면한다고 한다. 답성(踏城)놀이 혹은 성돌기로 알려진 성밟기도 마찬가지다. 윤년의 윤달에 주로 부녀자들이 성곽 위에 올라가서 산성(山城)의 능선을 따라 밟으며 열을 지어 도는 풍속이다. 한국농악의 전설로 불리는 전인삼이 보유하고 있는 마당밟이 고사 소리 중 ‘지경(地境)소리’의 사설로도 설명할 수 있다. 유사한 사설이 진도를 비롯한 남도의 씻김굿 중 ‘지경다구기’에도 있다. 강강술래도 마당밟기 놀이 중 하나다. “높은 마당 낮아지게, 낮은 마당 더 낮아지게~”라는 노랫말에도 나타나지 않는가. 지금은 추석놀이로 고정돼 있지만 삼국지위지동이전 마한조의 기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월제 씨뿌리는 의례에 가 닿는다. 내가 늘 인용하는 대목이다. “마한에서는 매양 5월에 모종을 끝마치고 나서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많은 사람이 떼를 지어 (앞 사람을 따라가며 발로 땅을 구르며) 노래 부르고 춤추며 술을 마셔 밤낮을 쉬지 않았다.” 나는 이를 지난해 발굴된 해남 거칠마 토성의 사례를 빌어, 이곳이 마한의 소도였다는 점과 땅을 구르며 귀신에게 제사 지내던 공간임을 주장했다. 실제로 돌을 깎고 진흙으로 다진 이른바 마당밟이터가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남도인문학 423회). 지경 다구기의 ‘다구기’는 ‘다지다’의 뜻으로 기초나 터전 따위를 굳고 튼튼하게 한다는 뜻이다. 마음이나 뜻을 굳게 가다듬는다는 뜻도 포함한다. 나라에 사직단(社稷壇)을 두고 황제가 직접 땅신에게 제사했던 것은 나라의 안위를 굳게 다지기 위함이다. 마을의 마당이나 한 집안의 마당을 다지는 것 또한 그 마을과 가정을 탄탄하게 가다듬고 다지기 위함이다. ‘다지다’라는 동사가 ‘누루거나 밟거나 쳐서 단단하게 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마음이나 뜻을 굳게 가다듬고 기초나 터전 따위를 굳고 튼튼하게 한다’는 용례로 쓰인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초 마당밟이의 시원을 어찌 마한 소도의 오월제까지 올려잡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각종 탈을 쓰고 악기 울려 벽사(?邪)하고 마당 밟아 고사해 진경(進慶)하는 것이 마당밟이다.

진도소포 걸군농악.
남도인문학팁

정인삼이 보유하고 있는 남도의 마당밟이 중 지경(地境)소리

(아니리) 이 터전 이 명당에 성주를 허실야고/ 서른세 명 역군들이 옥도끼 갈아들고 만첩청산에 들어가/ 소산에 소목 내자 대산에 대목 내자/ 명산 나무 그냥 베량 모신제로 축문허고/ 네눈백이 바슬소에 우걱지걱 실어다가 이 터전에 받쳐놓고/ 성주를 이룩헐제 은가례 은줄 메고 놋가례 놋줄 메고/ 높은 데는 실어내고 낮은 데는 메우시고 지경을 다질 적에~ (자진모리) 어기영차 지경이야 어기영차 지경이야/ 동편지둥 주추밑에 청룡 한쌍 들었으니/ 용의 머리 다칠세라 알아감서 다지어라/ 남편지둥 주추밑에 금자래 한쌍 들었으니/ 자래엄리 다칠세라 알아감서 다지어라/ 서편지중 주추밑에 청학 한쌍 들었으니/ 학의 머리 다칠세라 알아감서 다지어라/ 북편지둥 주추밑에 거북 한쌍 들었으니/ 거북머리 다칠세라 알아감서 다지어라/ 사명전 대들보 밑에 청룡황룡이 뒤틀어 누었네/ 어기영차 지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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