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인육' 만행에 집단학살"…밀리환초 사건 진상규명 촉구
강제동원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 기자회견
태평양전쟁 일본군 조선인 반란죄 씌워 학살
희생자 55명 전원 담양·광양·고흥 등 전남 출신
"진상규명·명예회복·추도 않으면 역사 되풀이"
태평양전쟁 일본군 조선인 반란죄 씌워 학살
희생자 55명 전원 담양·광양·고흥 등 전남 출신
"진상규명·명예회복·추도 않으면 역사 되풀이"
입력 : 2024. 06. 07(금) 16:12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일제강제동원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67)씨와 함께 7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광주시의회에서 ‘밀리 환초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준명 기자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남태평양 밀리 환초에서 벌인 조선인 강제노역 피해자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일제강제동원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67)씨와 함께 7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광주시의회에서 ‘밀리 환초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어 “태평양전쟁 당시 밀리 환초에서 일어났던 조선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저항 과정과 일본군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 회복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밀리 환초 조선인 학살 사건’은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3월 남태평양 마셜제도 밀리 환초 내에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조선인 강제노역 피해자 수십명에 대한 학살 사건이다.
앞서 일본은 1942년 초 전남에서 강제 동원한 조선인 800~1000여 명을 밀리 환초에 군속 신분으로 배치했고, 이들을 비행장 활주로, 탄약고, 격납고 건설 등 일본군 군사시설 공사에 동원했다.
1944년 미군의 해상 봉쇄로 보급로가 끊어져 고립돼 식량난을 겪어오던 일본군은 조선인을 상대로 무자비한 가혹행위를 벌여왔다.
일본군은 1945년 3월 조선인 2명의 시신을 훼손해 ‘고래고기’라고 속여 동료 조선인들에게 식사로 배급하는 등의 만행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분노한 조선인들은 일본군 감시병 11명을 살해하고 섬 탈출을 계획하는 등 집단으로 항거했다가 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일본군 토벌대에 의해 반란죄 명목으로 총살당했다.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씨가 이날 공개한 ‘해군 군속 신상조사표’에 따르면 밀리 환초 사건 관련 생존자가 95명, 사망자는 55명으로 이들 중 총살에 의한 사망자가 32명, 자결로 기록된 희생자는 23명이다.
사망자 55명의 출신지는 담양이 25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광양 7명, 고흥 5명, 순천 4명 광산 4명, 화순 3명, 보성 3명, 광주 2명, 무안 1명, 나주 1명 등으로 모두 전남에 본적을 두고 있다.
사건 발생 후 65년이 지난 2010년에 들어서야 국무총리 산하 한시 조직인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진상규명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의해 사건 경위와 피해자의 성(性), 출신 지역 등이 밝혀졌다.
위원회 조사 결과 학살 피해자가 모두 전남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지역에서조차 사건에 대해 주목하지 않고 추모 사업 역시 진행되지 않아 재조명과 진상규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다케우치 야스토 씨는 “‘밀리 환초 조선인 학살 사건’은 식민 지배하, 조선인들의 민족성을 빼앗아 강제로 집단 동원하고 최전선에 노동력으로서 배치한 사건이다”며 “조선인을 죽음 직전에 몰아놓고 인육 섭취를 강제하며 학살한 역사가 은폐돼 왔다. 누군가 책임을 지지도 않고 실태는 알려지지 않은 채 80년의 세월이 지났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 당시 피해와 조선인 학살의 진실 등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는다면 역사는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며 “사건의 실태가 전남지역에 충분히 알려졌다고 말할 수 있겠나”고 지적했다.
다케우치 야스토씨는 “밀리 환초 사건에 대해 명확히 진상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며 “희생자들을 추도하며 역사를 기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국언 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밀리 환초를 포함한 남태평양 등 조선인 강제 동원에 대해 사실 규명 작업의 숙제가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우리는 진상 규명 작업이 멈춰있는데 뜻있는 일본인 연구자의 외로운 노력을 통해 과거 우리 민족의 피해 사실이 새롭게 조명받는다는 게 면목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공개된 자료에는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밀리 환초에서 사망한 조선인 218명의 명부도 포함됐다. 3년여간 밀리 환초에 피 징용돼 사망한 조선인 218명 중 214명 역시 전남 지역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일제강제동원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67)씨와 함께 7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광주시의회에서 ‘밀리 환초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어 “태평양전쟁 당시 밀리 환초에서 일어났던 조선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저항 과정과 일본군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 회복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밀리 환초 조선인 학살 사건’은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3월 남태평양 마셜제도 밀리 환초 내에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조선인 강제노역 피해자 수십명에 대한 학살 사건이다.
앞서 일본은 1942년 초 전남에서 강제 동원한 조선인 800~1000여 명을 밀리 환초에 군속 신분으로 배치했고, 이들을 비행장 활주로, 탄약고, 격납고 건설 등 일본군 군사시설 공사에 동원했다.
1944년 미군의 해상 봉쇄로 보급로가 끊어져 고립돼 식량난을 겪어오던 일본군은 조선인을 상대로 무자비한 가혹행위를 벌여왔다.
일본군은 1945년 3월 조선인 2명의 시신을 훼손해 ‘고래고기’라고 속여 동료 조선인들에게 식사로 배급하는 등의 만행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분노한 조선인들은 일본군 감시병 11명을 살해하고 섬 탈출을 계획하는 등 집단으로 항거했다가 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일본군 토벌대에 의해 반란죄 명목으로 총살당했다.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씨가 이날 공개한 ‘해군 군속 신상조사표’에 따르면 밀리 환초 사건 관련 생존자가 95명, 사망자는 55명으로 이들 중 총살에 의한 사망자가 32명, 자결로 기록된 희생자는 23명이다.
사망자 55명의 출신지는 담양이 25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광양 7명, 고흥 5명, 순천 4명 광산 4명, 화순 3명, 보성 3명, 광주 2명, 무안 1명, 나주 1명 등으로 모두 전남에 본적을 두고 있다.
사건 발생 후 65년이 지난 2010년에 들어서야 국무총리 산하 한시 조직인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진상규명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의해 사건 경위와 피해자의 성(性), 출신 지역 등이 밝혀졌다.
위원회 조사 결과 학살 피해자가 모두 전남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지역에서조차 사건에 대해 주목하지 않고 추모 사업 역시 진행되지 않아 재조명과 진상규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다케우치 야스토 씨는 “‘밀리 환초 조선인 학살 사건’은 식민 지배하, 조선인들의 민족성을 빼앗아 강제로 집단 동원하고 최전선에 노동력으로서 배치한 사건이다”며 “조선인을 죽음 직전에 몰아놓고 인육 섭취를 강제하며 학살한 역사가 은폐돼 왔다. 누군가 책임을 지지도 않고 실태는 알려지지 않은 채 80년의 세월이 지났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 당시 피해와 조선인 학살의 진실 등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는다면 역사는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며 “사건의 실태가 전남지역에 충분히 알려졌다고 말할 수 있겠나”고 지적했다.
다케우치 야스토씨는 “밀리 환초 사건에 대해 명확히 진상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며 “희생자들을 추도하며 역사를 기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국언 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밀리 환초를 포함한 남태평양 등 조선인 강제 동원에 대해 사실 규명 작업의 숙제가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우리는 진상 규명 작업이 멈춰있는데 뜻있는 일본인 연구자의 외로운 노력을 통해 과거 우리 민족의 피해 사실이 새롭게 조명받는다는 게 면목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공개된 자료에는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밀리 환초에서 사망한 조선인 218명의 명부도 포함됐다. 3년여간 밀리 환초에 피 징용돼 사망한 조선인 218명 중 214명 역시 전남 지역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