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안전 비용은 여성 몫”… 여성전용 원룸 더 비싸
성차별 ‘핑크택스’ 거주지 확산
면적 비슷해도 방세·관리비 ↑
범죄·안전 관련 불안심리 이용
“10만원 더 비싼 여성전용 원룸”
입력 : 2024. 03. 07(목) 18:31
신학기 들어 대학가 인근의 ‘방 구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안전을 이유로 여성 전용 원룸을 찾는 20~30대가 많다. 전남대 인근 한 여성전용 고시텔.
“원룸 가는 위험한 느낌이 있잖아요. 일반 고시텔보다 더 안전해 보여서요.”

김모(20)씨는 최근 개강을 맞아 광주 북구 전남대 인근 여성전용 고시텔(고시원과 호텔의 합성어)에 월세 24만원으로 입주했다. 인근 다른 고시텔보다 1~2만원이 더 비쌌지만 여성들만 살고 CCTV와 방범창 등이 설치돼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아 계약했다.

원룸도 선택지였다. 전남대 인근 여성전용 원룸이 없어 가까운 조선대 인근으로 알아봤다. 조선대 주변 여성전용 원룸은 2곳.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는 45만원선이다. 일반 원룸이 30~35만원 정도 월세를 받는 것에 비해 10만원 정도 비쌌다.

김씨는 비싼 가격에 고시텔로 고개를 돌렸다. 개인비용을 들여 원룸 등에 안전시설을 보충할 여력이 없어 하게 된 선택이다. 그는 “2만원 정도는 안심비용으로 지불할 수 있다. 여자들만 살아 깔끔하고 관리도 잘 되는거 같다”고 말했다.

신학기 들어 대학가 인근 ‘방 구하기’가 시작된 가운데 안전을 이유로 여성 전용 원룸을 찾는 20~30대가 늘고 있다. 일반 원룸보다 월세가 더 비싸더라도 여성 전용원룸을 찾는 것. 대학가 인근 부동산에 문의해본 결과 보증금에 차이는 없지만 월세·관리비가 많게는 10만원이 더 비쌌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1층에 비해 2층이 안전상 이유로 1~2만원 더 비싼 경우도 있다. 안전장치 차이도 있지만 여성전용 원룸의 경우 깔끔한 인테리어와 택배 무인함 등 주변 환경이 더 좋다”며 “다른 원룸은 공실이 많지만 여성전용 고시텔은 대기자까지 있을 정도로 만석”이라고 말했다.

여성 1인 가구가 ‘주거 안전을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는 의미로 ‘핑크택스’(Pink Tax)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핑크택스는 대체로 같은 용도 제품이라도 여성용이 남성용에 비해 비싼 경우를 일컫는다.

자취 2년차 대학생 정모(22)씨는 “학교와 가까운 원룸이 있었는데 거리가 조금 먼 여성전용 원룸을 선택했다. 가격이 비싸지만 그만큼 관리받는 느낌도 들고 불안감도 안든다”며 “그 전 살던 곳에서 누가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친 적 있다. 그때부터 무서워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효경 광주여성민우회 대표는 “여성전용주거지 등 대부분 여성전용공간은 여성대상 범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에서 비롯됐다”며 “이런 곳에서 발생하는 안전비용은 여성개인이 부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현재 광주시는 1인 가구를 위한 비상벨 설치, 안전귀가 지원 등 위기상황 대처 및 사회 안전망 구축 사업으로 1인가구, 여성1인 점포는 각 구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광주 동구는 원룸과 1인가구 등 범죄 취약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가정용CCTV, 비상벨 설치 등 안전한 주거환경조성사업으로 대한민국범죄예방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여성폭력피해 지원 1366(여성긴급전화)과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521-1366)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김효경 대표는 “안전을 위한 2중 3중 장치로 범죄피해에 대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없다”며 “안전 위협으로부터 예방을 여성에 전가할 경우 여성은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더 성평등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했다.
송민섭 기자·박찬·윤준명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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