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끝없는 전쟁소식에 막막…지원마저 끊겨 절망감"
● 24일 러-우 전쟁 2주년 …우크라 출신 고려인 난민들 표정
‘협상’ 직후 또 포격뉴스에 애타
고려인 마을 난민 500명 ‘한계’
우울감 최고조 … 지원책 절실
‘협상’ 직후 또 포격뉴스에 애타
고려인 마을 난민 500명 ‘한계’
우울감 최고조 … 지원책 절실
입력 : 2024. 02. 22(목) 18:33
지난 19일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만난 우크라 탈출 고려인동포들이 2년 간의 피란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오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어느덧 만 2년을 맞는다. 양측은 ‘휴전을 통해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지만 상호 간 폭격을 멈추지 않는 등 협상을 통한 돌파구 마련이 어려운 실정이다.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이역만리 타지로 떠난 피란민들도 지쳐가고 있다. 극심한 우울증 등을 호소하며 전쟁 와중에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생겼다. 조상의 땅 ‘한국’으로 피난 온 고려인마을 우크라이나 동포들의 절망감은 깊어만 가고 있다.
●“전쟁으로 국적·터전 다 잃었어요”
“머리 위로 지나가던 폭탄이 아직도 생생해요. 정신없이 맨몸으로 도망쳤죠. 그 고향이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됐대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죠. 이제 어떡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지난 19일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만난 김할라(67)씨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크라이나 자포로지예주에 살던 그는 전쟁 발발 두 달 뒤인 지난 2022년 4월 24일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피신했다.
하루아침에 정든 집을 떠난 김씨는 한시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곳에 미처 피신하지 못한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러시아가 퍼붓던 폭격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왔다. 뒤늦게 알아보니 딸의 시댁과 친척들이 남아 있었다”며 “걱정돼 (한국으로) 빼내려고 했는데 그 사이 고향이 러시아로 편입됐다. 국적도 연방 소속으로 바뀌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김씨의 고향 자포로지예는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으로, 2022년 9월 러시아가 2/3 이상을 점령하면서 러시아 연방으로 편입됐다. 해당 지역은 보급로·발전소·탄광 등 전략적 이점이 많아 양측이 대립하던 주요 요충지였다.
김씨는 “전쟁이 길어지면서 친척들 모두 러시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포자기한 것”이라며 “나라를 잃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저 휴전이 되기만을 기도하고 있다. 조상땅 한국에서 가족과 다 같이 새 삶을 시작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끝없는 전쟁… 애타는 동포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9일 터커 칼슨 전 폭스뉴스 앵커와 외신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분쟁이 합의를 통해 해결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튿날 우크라 수도 키이우와 남부 지역에 대형 드론 공격을 감행, 민간인 사상자를 냈다.
전쟁 종식을 기대했던 피란민들은 러시아의 이면에 분노했다. 더욱이 지난해 말부터 우크라 출국길도 막혀 고향에 머무는 가족을 만날 방법도 사라졌다.
안발레티나(80)씨는 “피란 이후 최대 화두는 ‘전쟁이 언제 끝나는가’였다. 최근 푸틴 인터뷰에 많은 이들이 희망을 걸었다”며 “하지만 드론 공격으로 단 하루만에 거짓임이 드러났다. 수많은 피란민을 농락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씨는 현재 우크라에 살고 있는 60대 아들과 사위 걱정에 밤잠을 못이루고 있다. 그는 “전쟁이 이리 오래 이어질 줄 몰랐다. 우크라 국적 남성들은 모두 출국이 제한됐다. 투입될 군인이 없어 노인들도 징집 대상으로 묶여 있다고 한다”며 “전쟁 끝날 때까지 그저 안전하게 지내기만을 기도하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같은 불확실한 현실은 피란민들의 우울증 등을 자극했다. 극심한 향수병으로 지난 2년간 광주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간 피란민 수도 30명에 달한다. 고려인마을은 러-우전쟁 발발 이후 마을과 인연이 있는 우크라 피란민 876명의 국내 입국을 도왔다. 마을은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앞으로 떠날 피란민 수가 더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피란민의 안정과 조기정착을 위해 의·식·주 지원과 임시 거주지인 쉼터·협동농장 등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가족·고향에 대한 향수병을 치유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평화 협정’ 뿐이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길 바란다. 지역사회도 피란 동포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 부탁한다”고 말했다.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이역만리 타지로 떠난 피란민들도 지쳐가고 있다. 극심한 우울증 등을 호소하며 전쟁 와중에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생겼다. 조상의 땅 ‘한국’으로 피난 온 고려인마을 우크라이나 동포들의 절망감은 깊어만 가고 있다.
●“전쟁으로 국적·터전 다 잃었어요”
“머리 위로 지나가던 폭탄이 아직도 생생해요. 정신없이 맨몸으로 도망쳤죠. 그 고향이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됐대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죠. 이제 어떡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지난 19일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만난 김할라(67)씨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크라이나 자포로지예주에 살던 그는 전쟁 발발 두 달 뒤인 지난 2022년 4월 24일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피신했다.
하루아침에 정든 집을 떠난 김씨는 한시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곳에 미처 피신하지 못한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러시아가 퍼붓던 폭격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왔다. 뒤늦게 알아보니 딸의 시댁과 친척들이 남아 있었다”며 “걱정돼 (한국으로) 빼내려고 했는데 그 사이 고향이 러시아로 편입됐다. 국적도 연방 소속으로 바뀌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김씨의 고향 자포로지예는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으로, 2022년 9월 러시아가 2/3 이상을 점령하면서 러시아 연방으로 편입됐다. 해당 지역은 보급로·발전소·탄광 등 전략적 이점이 많아 양측이 대립하던 주요 요충지였다.
김씨는 “전쟁이 길어지면서 친척들 모두 러시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포자기한 것”이라며 “나라를 잃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저 휴전이 되기만을 기도하고 있다. 조상땅 한국에서 가족과 다 같이 새 삶을 시작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지난 2022년 4월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한 안엘레나씨가 거주했던 미콜라이브 가정집에 폭탄이 투하돼 집 벽이 무너져 내렸다. 안엘레나씨 제공 |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9일 터커 칼슨 전 폭스뉴스 앵커와 외신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분쟁이 합의를 통해 해결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튿날 우크라 수도 키이우와 남부 지역에 대형 드론 공격을 감행, 민간인 사상자를 냈다.
전쟁 종식을 기대했던 피란민들은 러시아의 이면에 분노했다. 더욱이 지난해 말부터 우크라 출국길도 막혀 고향에 머무는 가족을 만날 방법도 사라졌다.
안발레티나(80)씨는 “피란 이후 최대 화두는 ‘전쟁이 언제 끝나는가’였다. 최근 푸틴 인터뷰에 많은 이들이 희망을 걸었다”며 “하지만 드론 공격으로 단 하루만에 거짓임이 드러났다. 수많은 피란민을 농락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씨는 현재 우크라에 살고 있는 60대 아들과 사위 걱정에 밤잠을 못이루고 있다. 그는 “전쟁이 이리 오래 이어질 줄 몰랐다. 우크라 국적 남성들은 모두 출국이 제한됐다. 투입될 군인이 없어 노인들도 징집 대상으로 묶여 있다고 한다”며 “전쟁 끝날 때까지 그저 안전하게 지내기만을 기도하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같은 불확실한 현실은 피란민들의 우울증 등을 자극했다. 극심한 향수병으로 지난 2년간 광주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간 피란민 수도 30명에 달한다. 고려인마을은 러-우전쟁 발발 이후 마을과 인연이 있는 우크라 피란민 876명의 국내 입국을 도왔다. 마을은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앞으로 떠날 피란민 수가 더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피란민의 안정과 조기정착을 위해 의·식·주 지원과 임시 거주지인 쉼터·협동농장 등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가족·고향에 대한 향수병을 치유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평화 협정’ 뿐이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길 바란다. 지역사회도 피란 동포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 부탁한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광주고려인마을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들어온 피란민들이 백만송이 장미(심수봉)의 원곡 ‘마라가 준 인생’을 부르며 마음을 달래고 있다. 마라가 준 인생은 라트비아·러시아 가요로, 나라가 처한 비극적 운명과 역사를 가사에 담고 있다. 정성현 기자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