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庭園·임효경>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
임효경 완도중 교장
입력 : 2024. 04. 24(수) 13:13
임효경 교장
‘우리 학교엔 벚꽃이 없습니다. ㅠ’라는 넋두리를 들으셨을까요? 며칠 전 완도군 번영회 회장님(25회 졸업생)께서 벚나무 13그루를 우리 학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일렬로 쭉 심어주셨습니다. 오일장에서 실한 나무를 직접 골라 인부를 대동하시고 심어주시고 가셨습니다. 만방에 소문내고 고마움 표하겠다고 해도 손사래를 치고 그냥 내려가십니다. 몇 년 후 벚나무가 장관을 이루고 분홍 벚꽃잎 휘날리는 완도중학교의 봄을 상상해 봅니다. 더 환하고 멋질 것 같습니다. 멋진 선배님 덕분입니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완도에서는 흔하게 일어납니다. 완도중 운동장 인조 잔디가 조성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인조 잔디 안에 들어있는 까만 충격 완충제 구슬들이 제자리에서 빠져나와 체육활동 중 학생들이 긁히고 다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을 아시고 우리 학교 운영위원장님이 발 벗고 나서서 도우셨습니다. 현재 이 사업은 완도교육지원청 교육환경 개선 현안 사업 일 번입니다. 2학기에는 새롭게 단장한 안전한 운동장에서 우리 학생들 신나게 안전하게 체육활동 할 것입니다.

완도중 급식은 가히 최고 완도 맛집 수준입니다. 영양사님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맛있게 건강하게 만들어 먹일까 고민하고 연구하느라 바쁩니다. 게시판에 적어 놓은 학생들의 요구사항에는 전복치즈구이, 쭈꾸미 해물탕 등 다양한 음식이 적혀있습니다. 그것을 반영하여 더 보기 좋게 한 상 차려주는 조리사님은 인기 최고입니다. 매달 첫 번째 월요일에는 미역국이 나오고 생일 축하 걸개그림이 걸립니다. 오죽하면 졸업 전 마지막 급식 시간에 졸업생 중 한 아이가 선창하자 모두 일어서서 넙죽 절했다지 뭡니까. “그동안 맛있는 급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옆집 여중 학생들이나 초등학생들은 잘 안 먹는다는 해초류도 우리는 없어서 못 먹습니다. 한창 크는 남자아이들의 왕성한 식욕을 따라잡기에 쌀도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우리 급식소에는 장례식 후 쌀가마니가 배달되곤 합니다. 학부모회장님과 학교운영위원들이 소문을 내서 지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돕겠다고 그러시는 것이지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작년 이맘 때 쯤 한 중년 여인이 우리 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하얀 짧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기시고 분홍빛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시고 들어오시는데, 고생 끝에 성공한 사업가의 예사롭지 않은 면모가 있었습니다. 눈망울엔 습기가 촉촉했습니다. 50여년 전 졸업(26회 졸업)을 했지만, 완도 고향에 들를 때마다 모교 앞을 지나면 이렇게 울컥한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남녀공학이었답니다. 저수지를 메워서 운동장을 만들었는데, 학교 체육 시간에 모두 서망산 돌멩이를 망태에 담아 주어 나르는 것이 일이었답니다. 얼마나 고단했는지 모른다 하시고 운동장을 아득한 눈으로 내려다보십니다. 또 한 번 눈가에 물기가 돋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 상상하니 참 힘드셨겠다고 공감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한푼 두푼 모은 장학금 일천만원을 쾌척하시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겨우 이렇게 감사패를 전할 뿐이었습니다. ‘귀하께서는 50여 년간 아련한 그리움으로 완도중학교를 가슴에 품고 계시다가 후배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장학금을 쾌척하여 주셨기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

그 장학금은 우리 학생들 학교생활을 지원해 주고, 학교 밖에서 용기를 주고, 미래를 향하여 가는 발걸음에 희망을 줍니다. 완도처럼 바닷가 마을에는 타국에서 이주해 온 가정 출신 학생들이 많고 또 유난히 다둥이 가정도 많습니다. 우리 학교 역도 금메달 유망주는 인도네시아 출신 어머니를 두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세 자녀 이상 다자녀가정이 전체 학생 수의 삼분의 일을 넘습니다. 어떤 학부모는 서울에서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내려왔는데, 마을 문화에 젖어서 늦둥이를 하나 더 낳았답니다. 군 지원금 영향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들이 완도라는 마을 공동체에 적응하는데, 다양한 타국 문화를 흡수하는데 이 장학금이 쓰입니다. 서로 고마워서 주고받는 아름다운 모습을 봅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지속된다면 인생이 얼마나 평화로울까요? 이러한 완도중에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들이 있습니다. 어리석기 그지없고, 짠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돌보아주지 않아, 늘 시무룩해 있고, 씻지 않아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친구도 없이 혼자 다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가정에서 배운 적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좋아하는 선생님들을 오히려 힘들게 하고 정신적인 폭행을 합니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더 안타깝습니다. 우리도 어렸을 적 옛날 푸세식 화장실에 온갖 난잡한 그림과 낙서를 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SNS에 사진과 영상으로 그 욕구를 해결합니다.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정신을 차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울합니다.

그렇지만, 예서 말 수는 없다고 힘을 내 봅니다. 선생님들이 힘들어서 푹푹 쓰러지니 그 아이들이 밉지만, 또 그들을 잘 가르치고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가야겠지요? 안간힘을 내야겠지요? 그래서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더 그리운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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