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세이레·백일·돌잔치…인류가 공유해온 동굴과 금기의 신화
381)세이레
“이 금기와 동굴, 곧 자궁의 인내를 거치지 않으면 진정한 출생, 홀로서기에 이를 수 없다. 새해 벽두 또 하나의 세이레에 드는 다짐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
입력 : 2024. 01. 25(목) 13:30
1972년 진도지역의 금줄. 이토아비토 촬영
세이레는 아이를 낳은 지 스무하루째 되는 날을 말한다. 출산일부터 대문에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아이가 출생한 첫 7일째를 초이레, 14일째는 두이레, 21일째는 세이레라고 한다. 7일을 세 개로 묶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이레마다 새벽에 삼신(三神)에게 흰밥과 미역국을 올린다. 세이레째 금줄을 내리게 되면 비로소 일가친척이나 마을 사람들이 실과 돈 등을 가지고 와서 아기를 대면한다. 세이레를 보통 ‘삼칠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군신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칠일, 백일을 비롯해 천부인(天符印) 3개, 무리 삼천, 인간 세상의 삼백육십여 가지 일, 쑥 한 자래와 마늘 20개, ‘환인, 환웅, 단군’의 삼위, ‘풍백, 우사, 운사’의 삼인, ‘나라 다스린 천오백 년, 수(壽) 1천9백8세’ 등 상징적인 숫자들이 많다. 수많은 학자가 이에 대해 논의하였고 다양한 연구자들이 추적하였다. 관련된 단행본과 논문을 모으면 천 수백 편에 이른다. 그만큼 관심도 많고 논란도 많다는 뜻일 것이다. 이 많은 자료를 다 검토할 수도 없고 그럴 만한 재주가 내게는 없다. 다만 지난 칼럼에서 곰동굴의 백일을 다루면서 따로 논하겠다고 말한 삼칠일 즉 세이레를 언급해두고자 한다. 세이레는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통과의례 방식이며 단군신화에만 편성된 이야기일까?



ᄀᆞᆷ, 검, 곰, 금...곰동굴의 삼칠일



허호익은 <단군신화와 기독교>(기독교서회, 2003)에서 웅녀에 대한 여섯 가지 설을 말한다. 웅씨족 여인설, 웅녀 곰 토템족설, 웅녀 신혼설(神婚說), 웅녀 ᄀᆞᆷ신설, 웅녀 산신 여신설, 웅녀 지모신설 등이 그것이다. 다른 것은 뒤로 미루고 우선 ‘웅녀 ᄀᆞᆷ신설’에 대해 주목한다. 웅(熊)이 동물 곰이 아니라 신(神)을 뜻하는 고어 ‘ᄀᆞᆷ’으로 해석한 최초의 학자가 안확이라고 한 김기동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한웅(桓雄)의 수(수컷 雄)와 해모수(解慕漱)의 수(漱)가 남신(男神)임을 비교하여 ‘ᄀᆞᆷ’을 여신(女神)으로 보고 남신 환웅과 여신 웅녀 사이에서 단군이 태어난 것이라는 양주동의 주장도 인용하고 있다. 이두식으로 보면 ‘ᄀᆞᆷ, 검, 곰, 금’ 등은 모두 신(神)의 옛말이다. 음양오행의 맥락으로 보더라도 ‘ᄀᆞᆷ’은 ‘북쪽, 고구려, 여성, 물, 검은색’ 등 수많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감사(感謝)의 뜻으로 말하는 ‘고맙습니다’를 ‘ᄀᆞᆷ’과 연결하여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황원흥의 <단군신화-쑥과 마늘>(청조사, 2009)에서는 음양오행의 수리에 맞춰 풀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극(太極)과 팔괘(八卦)의 효시가 되는 하도낙서(河圖洛書)의 수리로 풀어 설명한 것인데, 따로 기회를 봐서 소개한다. 이외 단군 관련 신화를 분석한 논문 십수 편만 검토해봐도 편차가 심한 주장들과 다양한 이론들을 확인할 수 있다. 곰이 단지 동물이 아니라 여성신(女性神) 나아가 음양오행의 문법이나 철학이라는 시선과 태도들이 두드러진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세이레는 기삼칠일(忌三七日), 스무하루를 금기(忌)하는 기간에 대한 신화적 장치다. 세이레뿐 아니라 백일, 나아가 돌잔치에 이르기까지 설정한 크고 작은 전이(轉移)의 시공(리미널)이다. 지난 칼럼에서 말한 곰동굴의 백일관념을 포함하여 만(滿) 1년을 나이 두 살로 계산하는 우리네 나이 셈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달걀의 부화(孵化)와 21일의 금기(禁忌)



단군신화에 이르기를 동굴에서 백일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견디면 사람이 된다고 했는데 실제는 세이레 즉 21일 만에 사람이 되었다. 백일과 세이레는 숫자만 다를 뿐 사람으로 변화한 기능은 같으므로 ‘비대칭 등가성’을 지닌다. 백일과 삼칠일의 등가성은 마치 혼소박자로 이루어진 엇모리류 장단의 박자 중 큰 박과 작은 박을 등가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비유할 수 있다. 궁중음악이나 농악 장단의 기본 컨셉이기도 하다. 지난 칼럼에서 장단(長短)의 리듬과 패턴을 문학과 사회적 맥락으로 풀어 몇 차례 언급하였다. 우리네 조상들은 이런 이야기 구성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기삼칠일(忌三七日), 참고 견디며 혹은 갈고 닦고 준비하는 기간에 대한 신화 문법이다. 백일기도가 그 대표적 방식이다. 나는 이 모티프가 달걀이 부화하는 데 걸리는 스무하루에서 왔다고 보고 있다. 곰동굴의 삼칠일은 달걀 부화를 신화로 만든 옛 한국인들의 말하기 방식이라는 뜻이다. 이를 문화적으로 포장하고 역사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철학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지금 우리가 대하는 해석들이다. 동학의 핵심사상인 삼칠주(三七呪) 21자 주문도 이를 극대화한 해석이다. 다른 조류에 비해 굳이 21일 만에 부화하는 달걀을 모티프 삼은 이유는 명료하다. 수탉이 홰를 쳐야만 아침이 오는 문학적 수사를 비롯하여, 출생에서 혼인, 죽음, 제사까지 소환되는 닭과 달걀의 여러 상징들이 이를 말해준다. 수년 전 월간 <기독교사상>에 1년 12회 연재하였던 졸고를 통해 이를 소상하게 밝혀두었다. 이 방식은 고대 한국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신화다. 기독교 부활절의 달걀 꾸미기 풍속,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의 고대 무덤에서 발굴되는 달걀껍질 사례도 그 하나다. 이를 저승의 노잣돈이나 식량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물론 그 여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시기에 이 풍속이 제사 상차림으로 편성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사상에 놓는 달걀도 나는 이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단군신화 곰동굴의 세이레를 탁월한 보편이라는 인류문화유산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적극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남도인문학팁

세이레의 전통과 인류문화의 전통

신화는 신화로 읽어야 그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 달걀의 부화는 재생과 부활 관념으로 포장되고 의미화되었다. 조동일은 <한국학의 진로>(지식산업사, 2014)에서, 외래문화가 들어와 민족문화를 손상했다고 개탄하지 말아야 한다는 안확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배타적인 태도로 고유문화를 옹호하는 풍조에 맞서서, 동아시아 문명이 민족문화 발전에 활용되어 소중한 가치를 발현한다는 견해의 정립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세이레의 전통이 그러하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수준의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여기에 동아시아 혹은 인류가 공유해온 동굴과 금기의 신화가 들어있다. 문화권, 문명권별로 다른 형태로 드러났을 뿐이다. 우리네 전통적인 나이 셈하기 문법도 포함된다. 금기의 시간과 동굴이라는 신화적 공간을 통과의례로 포장한 시공의 비유다. 반겐넵은 통과의례를 분리, 리미널리티(臨界性), 병합의 세 단계로 나눈 바 있다. 신던 신발을 거꾸로 벗어두고 산실에 들어가는 것이 분리의례이고 스무하루를 금기하는 것이 리미널리티의 시공이며, 세이레에 금줄을 거두는 것이 통합의례이다. 백일도 마찬가지고 돌잔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세이레는 작은 한 살, 백일은 큰 한 살, 돌은 두 살을 지나는 통과의례다. 동굴이라는 모티프와 금기의 시간은 신화 문법에 따라 전승된 구비문학이라는 점에서, 신화의 방식으로 읽는 시선이 요구된다. 이 금기와 동굴, 곧 자궁의 인내를 거치지 않으면 진정한 출생, 홀로서기에 이를 수 없다. 달걀의 부화에 줄탁동시(啐啄冬時)가 있듯이, 일 년의 시작, 모든 일의 출발에도 줄탁동시가 있다. 내 밖에서 탁(啄)하기를 원하면 내가 먼저 줄(啐)해야 한다. 지금 여기, 세이레 스무하루를 새롭게 읽는 방식이 마땅히 그러하니, 새해 벽두 또 하나의 세이레에 드는 다짐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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