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남도의 공명, 떨리는 속살 느끼는 ‘남도소리울림터’
374)남도의 정수(精髓)를 보려거든 눈을 들어 남악을 보라
“남도의 흥건한 육자배기와 흥타령이, 여러 갈래의 판소리들이, 그리고 기악의 울림들이 토해내는 원천”
입력 : 2023. 12. 07(목) 13:19
2023. 전남도립국악단 정기연주회. 전남도립국악단 제공
2023. 전남도립국악단 정기연주회. 전남도립국악단 제공
마흔 번의 봄날이 다녀간 해였다. 구두통 들고 꼬꾸라져 죽었던 구두닦이의 피도, 나팔바지 멋지던 넝마주이의 두개골도, 남도땅 어느 억새 아래 진토되었을 시간,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누이, 아! 누군가의 사랑, 이승을 뜨지 못한 그 아무개들의 넋이 강산마저 무시로 변한 무대로 현현하였다. 두드리는 북소리는 마디마디 천지를 흔들었다. 격조 높은 선율들이 조우 해낸 무대의 여기저기 묵혀두었던 울음들이 백색 무희의 옷자락을 흔들어댔다. 그들의 몸짓은 꼬이고 뒤틀린 이 환장(換腸)할 세상에 토해내는 핏덩이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 하나, 그들은 왜 거기 남았을까? 양말도 갈아신지 못한 채, 팬티도 갈아입지 못한 채, 이름도 빛도 없던 아무개들은 왜 거기 남았을까. 빗발쳐 오는 총탄 오로지 제 가슴으로만 담아내며 도대체 그들은 왜 거기 남았을까? 2020년 전남도립국악단 정기연주 오라토리오 집체극 <봄날>에 대한 단상, 객석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 감상을 적어두었다. 40성상을 넘기고도 여전히 흔들리는 심중, 내면의 깊은 어딘가에 박혀, 도무지 그 끝자락을 만질 수 없는 상처들, 치유되지 않는 심연의 무게들이 두고두고 쌓여오던 터였다. 감사했던 것은 이름도 빛도 없던 이들을 집체극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이었다.

전남도립 단원들의 수준 높은 연주와 연기, 류형선 감독의 격조 높은 음악이 빚어낸 진혼 의례였다. 마흔 번의 오월 광주에 헌정하는 웅숭깊은 제의를 두고,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하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국악이라는 이름의 헌사, 오월 영령들께 드리는 묵념을 넘어 남도땅 아니 한반도를 공명(共鳴)하는 사회극이었다. 전남도립국악단의 역할은 <남도소리울림터>라는 공간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1986년 창단하여 여러 지역을 거치고 다양한 직제의 재구성을 거쳐 오늘의 남악에 자리한 위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국악을 넘어 남도의 정수(精髓)를 보려거든 눈을 들어 남악을 보라.



한국음악의 중심 남도, 예술단의 새로운 모델 창출

지난 1세기 수많은 장르가 쟁패를 거듭했다. 역사, 종교, 사회, 문화, 풍속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친 파란이었다. 내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열강들의 각축이라는 외부 충격이 컸다. 하나의 양식이 바뀌기까지 수 세기가 소요된 이전의 사회에 비한다면 불과 한 세기에 혁명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음악 장르라고 다를 바 없다. 간단없는 파고를 일반인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전통음악 쪽에서는 판소리와 산조가 국악계를 점유했다. 한국음악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지난 1세기 동안 일어난 가장 괄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말하자면 민중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장르의 변용이었다. 와중에 열강의 외압 혹은 수용 등 일본이나 미국가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교회음악 혹은 서양음악은 시나브로 한국음악을 장악하여 학교 교육을 평정해 버렸다. 이에 대응했던 국악은 국가적으로 강제되어 그나마 명맥이 유지되었다. 이들 우열 다툼의 행간을 살피면 지금은 사라지거나 잊힌 각양의 장르와 파편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국악 혹은 전통음악은 삼남(충청, 전라, 경상)의 전통으로부터 지금의 남도 권역으로 수렴되었다. 그 중심에 남도음악이 있고 판소리와 산조가 있으며 전남도립국악단이 있다.

1986년 이래 수많은 지휘자와 감독들, 단원들의 흥망성쇠가 이어졌다. 제도가 정비되며 노하우가 쌓이고 남도사람들의 저력이 모였다. 하지만 국공립 예술단의 활로가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류형선 감독에게 물었다. 국공립 예술단 존재 방식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창출할 수 있나?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그러라고 세금으로 월급 받는 것 아닐까?” 예컨대 홍도분교에 30여 명 정도의 국악단이 찾아가 공연을 하는 등, 공공적 가치실현 사업을 실천하고 있다. <깍지 손 국악> 레퍼토리가 그래서 나왔다. 평균 40~45명 정도 인원이 총 출동하여 각 학교로 공연지원을 나간다. 2022년부터는 전남도교육청이 화답하여 공동 프로젝트가 되었다. 류감독이 중점을 둔 좌표는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의 확보’에 있는 듯하다. 무용부, 사물부, 기악부, 창악부 등 부서별 정기공연으로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시작했지만, 온라인 콘텐츠 사업도 성공궤도에 오르고 있다. 2020년 이후 3년여 기간에 133개의 영상콘텐츠가 업로드되고 3,600명의 구독자를 품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6,000명의 팔로워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쏟은 전력이 온라인 콘텐츠사업을 활성화 시킨 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설공연이다. 정기공연이나 기획공연이 연중 반짝 업그레이드되는 행사 성격이라면 진짜 실력은 상설공연에서 드러난다.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 열리는 <토요상설공연>은 그런 점에서 보석 같은 프로그램이다. 단원들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을까? 류형선 감독의 자신 있는 대답이 돌아온다. “도립국악단의 네트워크를 좀 더 넓게 확보하는 프로모션이 과제이긴 하지만, 공연의 퀄리티와 레퍼토리의 경쟁력은 지금 현재의 수준만으로도 전국 탑클래스 레벨을 자신합니다.” 이 점은 나도 보증한다. 국립국악단의 위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과 남도의 결이 고스란히 스민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단원들은 자신들의 연주 활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간명한 답이 돌아온다. “미래가 기억할 오늘의 전통 만들기입니다.” 법고창신의 실천을 강조하는 말이다. 예술적 성취는 어떻게 이뤄질까? 2023년 정기공연으로 부서별 정기공연을 한다. 지난 12월 2일에 공연된 <국악관현악 산조합주>의 경우, 악보와 보면대 없이 지휘자도 없이 진행한다. 추임새와 발림이 활성화된 이 양식은 국악관현악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레퍼토리다. 오는 12월 9일에 공연되는 새로운 컨템퍼러리 창극 <심봉사, 뺑덕이네 고발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해학과 극적 긴장, 현대적인 감수성의 음악과 무대 연출이 돋보일 것이다. 가히 예술단의 존재 방식을 스스로 묻고 새로운 모델 창출로 답하는 중이니, 계묘년의 끝자락 남도음악의 정취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남도인문학팁

남도의 명소, 그린(Green) 국악의 적소(適所)에 깃든 늦봄의 덕후 류형선 ‘그대 오르는 언덕’, 나는 늦봄 문익환 목사에게 헌정한 이 노래로 류형선을 알게 되었다. 그이가 부임하고 나서 얼마나 되었을까? 고 김종수 목사와 더불어 남도의 명소 <남도소리울림터>에 깃든 풍성함에 대해 환담하였다. ‘국립국악원’에서도 상당 기간 복무하였으니 일석이조의 축복 아닌가고. 시인을 꿈꾸던 학생에서 작곡가로 진로를 바꾸게 된 내력이 의미심장했다. 타인의 아픔이 나의 통증이 되는가? 바로 국악의 울림 곧 공명(共鳴)을 제일의 화두로 삼았다는 뜻이다. 마치 남도의 흥건한 육자배기와 흥타령이, 여러 갈래의 판소리들이, 그리고 기악의 울림들이 토해내는 원천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류형선은 기독교적 신앙뿐 아니라 남도의 공명 방식을 토대 삼고 있는 작곡가라고 할 수 있다. 이제야 알겠다. 이름도 빛도 없던 <봄날>의 아무개들이 빗발치는 총탄 스스로 가슴에 받아내며 거기 남았던 이유를. 류형선이 그리고 남도국악단 한 사람 한 사람의 연주자들이 <소리울림터>에 남아 공명의 방식을 실천하는 까닭을. 그래서 다시 말한다. 남도의 공명하는 법, 떨리는 속살을 보려거든 눈을 들어 <남도소리울림터>를 보라.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전남일보 PC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