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더늠의 예술' 판소리… 득음이 선율의 궁극적 지향
판소리의 두 가지 기술||득음을 위해 장대한 폭포수, 깊고 높은 산에서 수련한다. ||대나무에 스민 똥물을 마시고 오줌을 마시며 개똥까지 먹는다.||피와 땀을 쏟아부은 이 과정을 지나서야 비로소 '판의 소리'가 된다. ||성대결절에 이르는 장단과 선율의 교섭, 이를 득음이라 한다. 곰삭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입력 : 2022. 10. 06(목) 14:15
판소리 문법은 올려잡아 300여 년 전 생성되었다. 판소리라는 이름은 100여 년 전 만들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판소리의 총체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확정되었다. 지난 칼럼에서 다룬 판소리 내력이다. 이제 판소리를 '소리'답게 만드는 두 가지 기술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이 두 가지 기술은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탁월하다. 판소리를 이면(裏面)의 소리로 만들어낸 원천기술이다. 하나는 리듬을 일정한 패턴으로 범주화한 기술이다. 다른 하나는 선율을 일정한 방식으로 구조화한 기술이다. 전자의 기술을 장단(長短)이라 한다. 후자의 기술을 딱히 부르는 이름은 없다. 지난 칼럼에서 이를 '판'의 기술이라 부르겠다고 제안한 이유다. 노래가 아니고 소리로 호명하는 특별한 이유, 거기에는 모종의 목적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장단(長短)의 기술
본지 칼럼 296회차(2022. 5. 13), '장단이란 무엇인가'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판소리장단에는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 엇모리, 엇중모리 등이 있고 진양조, 세마치 등의 장단이 또 있다. 중심이 되는 장단이 중모리라 해서 '중머리'로 호명했던 적도 있다. 세마치는 '양산도'라고도 한다. 판소리의 역사를 서술한 '조선창극사'을 보면, 김성옥이 병석에 누워 가곡을 연구하다가 진양조를 발견한다. 이때의 가곡은 판소리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정노식이 덧붙이는 것을 보니 이때까지는 중모리장단만 있었다. '중머리', '평타령'등 지금은 낯선 장단들이 나온다. 지난 칼럼에서 나는 이렇게 정리해두었다. "음양(陰陽)이니 대삼소삼(大三小三)이니, 고저장단(高低長短)이니 쌍편고요(雙鞭鼓搖)니 하는 장단 기술이 다 같은 말들이다. 이것을 확장해 말하면 판소리의 어단성장(語短聲長)으로 연결된다. 말은 짧게 하고 소리(노래)는 길게 하라는 뜻이다. 일종의 개념 정의다. 판소리가 아니리(창을 하는 중간중간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이 엮어나가는 사설)와 소리(唱)라는 기본 구성을 갖게 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이 모든 리듬 패턴의 중심에 장단(長短)이라는 어의(語義)가 있다. 본래의 말뜻은 '길고 짧다'는 뜻이다. '긴 것'과 '긴 것'이나 '짧은 것'과 '짧은 것'의 반복은 장단이 아니다. '음'과 '양', '남자'와 '여자', '대삼'과 '소삼'이어야 장단이다. 서로 다른 것을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궁중음악이든 정가(正歌)이든 마찬가지다. 이 기술이 판소리의 리듬 미학을 만들어냈다.
장단을 이어가는 기술을 흔히 '부침새(붙임새)'라 한다. 대마디대장단, 엇부침, 잉애걸이, 완자걸이, 교대죽 등이 있다. 밀부침, 당겨부침, 주서부침, 도섭과 같은 기술도 있다. 생짜부침, 자연부침, '딛고간다' '밟고간다' 등의 기술도 활용된다. 일정한 리듬 범주를 장단으로 의미화하고 이것을 다시 잇거나 붙이거나 사이에 끼워 넣거나 분절하여 패턴을 다양하게 하는 기술이다. 김혜정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지금의 판소리 장단은 부단히 변하고 재구성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예컨대 에는 진양, 진장단, 중머리, 평장단, 엇모리, 우조, 세마치, 삼궁져비, 삼궁졔, 후탄 등이 있다. 1920년대 에는 긴양죠, 즁모리, 휘즁모리, 평중모리, 느진중머리, 즁즁모리, 자진모리, 엇즁모리, 엇모리 등이 있다. 현재의 장단 구조로 변하기까지 이름도 패턴도 크게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장단 홀로 변한 것이 아니다. 장단은 판소리와 한 몸으로 성장하면서 재구성되어 왔다. 선율 또한 비슷한 과정의 변화를 겪어 오늘날의 '판소리'로 정착했다. 수도 없는 재구성을 통해 어떤 지향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 정점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소리를 '판의 소리'로 만든 성음(聲音)의 기술
타령, 창, 잡가, 소리, 광대소리, 창악, 극가, 가곡, 창극조 등으로 별칭하던 장르들이 오늘날 판소리라는 이른바 판(마당)으로 집적되던 시기의 소리 환경에 관해 지난 칼럼에서 얘기해두었다. 이 판이 도대체 어떤 판이길래, 이름조차 '판의 소리'로 불리고, 피 토하는 독공을 통해 성대결절의 득음에 이르도록 권위(퀄리티)를 진전시켰는가에 대해 말할 차례이다. 선율을 구성하는 기술 말이다. 250여 년 전 유진한의 춘향가로부터 오늘날의 풍경까지 부단히 섞이고 나뉘면서 재구성되어 온 기술이다. 한마디로 성음(聲音)이라 한다. 그래서 판소리를 성음예술이라 한다. 발성법과 시김새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철성, 암성, 통성, 수리성, 천구성, 호통성, 귀곡성, 아귀성, 떡목, 양성, 노랑목, 애원성 등 수십 가지가 넘는 이름들은 음색(音色)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군목, 푸는목, 감는목, 찍는목, 때는목, 마는목, 방울목, 깎는목, 파는목, 흩는목, 조으는목, 너는목, 꺾는목, 떠는목 등은 소리 기교 곧 시김새와 관련이 있다. 마치 장단의 교대죽이나 완자걸이와 같다. 교섭의 기술이다. 문제 삼을 것은 이 호명이 등가적인 방식도 아니고 균일한 가치에 의해 평가되는 것도 아니며 객관성을 담보하는 이름도 아니라는 점이다. 판소리를 '더늠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후세에 '더 넣어' 만든 예술이라는 뜻이다. 중고제 및 동편제 시절을 지나고, 19세기 후반에 형성된 서편제의 시절도 지나고, 근대5명창, 국창의 시대를 지나며, 만정제, 보성소리, 동초제 등으로 분화 정착되었다. 왜 이런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났을까? '더늠'과 '성음'의 배경 혹은 본질은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신재효가 말한 득음이 선율의 궁극적 지향이기 때문이다. 득음을 위해 장대한 폭포수, 깊고 높은 산에서 수련한다. 대나무에 스민 똥물을 마시고 오줌을 마시며 개똥까지 먹는다. 피와 땀을 쏟아부은 이 과정을 지나서야 비로소 '판의 소리'가 된다. 성대결절에 이르는 장단과 선율의 교섭, 이를 득음이라 한다. 곰삭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것이 소리와 장단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이룬 '판소리' 내력이다.
남도인문학팁
득음(得音)은 삭힘(삭임)의 정점, 판소리의 '판'은 '삭임의 판'이다.
성음(聲音)의 극치라 할 수 있는 득음(得音)을 한마디로 말하면 곰삭은 소리다. 마치 발효의 대명사 김치가 오랫동안 숙성되어 감칠맛을 내는 것과 같다. 약한 온도로 매우 오랫동안 숙성된 발효주라야 낼 수 있는 깊고 그윽한 맛과 같다. 수리성을 대표 사례로 들지만, 암성(暗聲)이나 양성(陽聲)도, 수십 가지의 성음기술과 장단의 교섭도, 궁극적 지향은 늘 그 그윽함과 지극함에 둔다. 그늘이 있는 소리, 이면(裏面)이 있는 소리, 한이 든 소리, 익히거나 삭인 정도가 아니라 곰삭은 소리를 지향한다. 오래 기다리고 오래 숙성되어야만 완성되는 소리다. 서양의 벨칸토 창법에 대응하는 판소리 특유의 성음 미학이다. 맑고 고운 소리를 외면하고 끝 간 데 모를 깊이 있는 소리를 미학적 정점으로 삼았던 남도 사람들, 아니 한국 사람들의 감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천이두는 이를 '한'과 '흥'으로 풀어냈고, 김지하는 '흰그늘'이라 했으며, 나는 '갱번론'을 들어 설명해왔다. 서로 다른 것을 등가적으로 교섭시켜 '장단(長短)'으로 의미화시키고, 노래가 아니라 굳이 소리라 했던 '판'은 바로 삭힘(삭임)의 판이었던 것이다. 김치와 술과 젓갈을 발효시키는 기술이 삭힘이요, 분한 마음, 서러운 마음, 기운생동하는 창발의 마음 모두를 발효시키는 기술이 삭임이다. 판소리가 그 정점에 있다.
장단(長短)의 기술
본지 칼럼 296회차(2022. 5. 13), '장단이란 무엇인가'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판소리장단에는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 엇모리, 엇중모리 등이 있고 진양조, 세마치 등의 장단이 또 있다. 중심이 되는 장단이 중모리라 해서 '중머리'로 호명했던 적도 있다. 세마치는 '양산도'라고도 한다. 판소리의 역사를 서술한 '조선창극사'을 보면, 김성옥이 병석에 누워 가곡을 연구하다가 진양조를 발견한다. 이때의 가곡은 판소리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정노식이 덧붙이는 것을 보니 이때까지는 중모리장단만 있었다. '중머리', '평타령'등 지금은 낯선 장단들이 나온다. 지난 칼럼에서 나는 이렇게 정리해두었다. "음양(陰陽)이니 대삼소삼(大三小三)이니, 고저장단(高低長短)이니 쌍편고요(雙鞭鼓搖)니 하는 장단 기술이 다 같은 말들이다. 이것을 확장해 말하면 판소리의 어단성장(語短聲長)으로 연결된다. 말은 짧게 하고 소리(노래)는 길게 하라는 뜻이다. 일종의 개념 정의다. 판소리가 아니리(창을 하는 중간중간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이 엮어나가는 사설)와 소리(唱)라는 기본 구성을 갖게 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이 모든 리듬 패턴의 중심에 장단(長短)이라는 어의(語義)가 있다. 본래의 말뜻은 '길고 짧다'는 뜻이다. '긴 것'과 '긴 것'이나 '짧은 것'과 '짧은 것'의 반복은 장단이 아니다. '음'과 '양', '남자'와 '여자', '대삼'과 '소삼'이어야 장단이다. 서로 다른 것을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궁중음악이든 정가(正歌)이든 마찬가지다. 이 기술이 판소리의 리듬 미학을 만들어냈다.
장단을 이어가는 기술을 흔히 '부침새(붙임새)'라 한다. 대마디대장단, 엇부침, 잉애걸이, 완자걸이, 교대죽 등이 있다. 밀부침, 당겨부침, 주서부침, 도섭과 같은 기술도 있다. 생짜부침, 자연부침, '딛고간다' '밟고간다' 등의 기술도 활용된다. 일정한 리듬 범주를 장단으로 의미화하고 이것을 다시 잇거나 붙이거나 사이에 끼워 넣거나 분절하여 패턴을 다양하게 하는 기술이다. 김혜정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지금의 판소리 장단은 부단히 변하고 재구성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예컨대 에는 진양, 진장단, 중머리, 평장단, 엇모리, 우조, 세마치, 삼궁져비, 삼궁졔, 후탄 등이 있다. 1920년대 에는 긴양죠, 즁모리, 휘즁모리, 평중모리, 느진중머리, 즁즁모리, 자진모리, 엇즁모리, 엇모리 등이 있다. 현재의 장단 구조로 변하기까지 이름도 패턴도 크게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장단 홀로 변한 것이 아니다. 장단은 판소리와 한 몸으로 성장하면서 재구성되어 왔다. 선율 또한 비슷한 과정의 변화를 겪어 오늘날의 '판소리'로 정착했다. 수도 없는 재구성을 통해 어떤 지향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 정점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소리를 '판의 소리'로 만든 성음(聲音)의 기술
타령, 창, 잡가, 소리, 광대소리, 창악, 극가, 가곡, 창극조 등으로 별칭하던 장르들이 오늘날 판소리라는 이른바 판(마당)으로 집적되던 시기의 소리 환경에 관해 지난 칼럼에서 얘기해두었다. 이 판이 도대체 어떤 판이길래, 이름조차 '판의 소리'로 불리고, 피 토하는 독공을 통해 성대결절의 득음에 이르도록 권위(퀄리티)를 진전시켰는가에 대해 말할 차례이다. 선율을 구성하는 기술 말이다. 250여 년 전 유진한의 춘향가로부터 오늘날의 풍경까지 부단히 섞이고 나뉘면서 재구성되어 온 기술이다. 한마디로 성음(聲音)이라 한다. 그래서 판소리를 성음예술이라 한다. 발성법과 시김새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철성, 암성, 통성, 수리성, 천구성, 호통성, 귀곡성, 아귀성, 떡목, 양성, 노랑목, 애원성 등 수십 가지가 넘는 이름들은 음색(音色)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군목, 푸는목, 감는목, 찍는목, 때는목, 마는목, 방울목, 깎는목, 파는목, 흩는목, 조으는목, 너는목, 꺾는목, 떠는목 등은 소리 기교 곧 시김새와 관련이 있다. 마치 장단의 교대죽이나 완자걸이와 같다. 교섭의 기술이다. 문제 삼을 것은 이 호명이 등가적인 방식도 아니고 균일한 가치에 의해 평가되는 것도 아니며 객관성을 담보하는 이름도 아니라는 점이다. 판소리를 '더늠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후세에 '더 넣어' 만든 예술이라는 뜻이다. 중고제 및 동편제 시절을 지나고, 19세기 후반에 형성된 서편제의 시절도 지나고, 근대5명창, 국창의 시대를 지나며, 만정제, 보성소리, 동초제 등으로 분화 정착되었다. 왜 이런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났을까? '더늠'과 '성음'의 배경 혹은 본질은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신재효가 말한 득음이 선율의 궁극적 지향이기 때문이다. 득음을 위해 장대한 폭포수, 깊고 높은 산에서 수련한다. 대나무에 스민 똥물을 마시고 오줌을 마시며 개똥까지 먹는다. 피와 땀을 쏟아부은 이 과정을 지나서야 비로소 '판의 소리'가 된다. 성대결절에 이르는 장단과 선율의 교섭, 이를 득음이라 한다. 곰삭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것이 소리와 장단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이룬 '판소리' 내력이다.
남도인문학팁
득음(得音)은 삭힘(삭임)의 정점, 판소리의 '판'은 '삭임의 판'이다.
성음(聲音)의 극치라 할 수 있는 득음(得音)을 한마디로 말하면 곰삭은 소리다. 마치 발효의 대명사 김치가 오랫동안 숙성되어 감칠맛을 내는 것과 같다. 약한 온도로 매우 오랫동안 숙성된 발효주라야 낼 수 있는 깊고 그윽한 맛과 같다. 수리성을 대표 사례로 들지만, 암성(暗聲)이나 양성(陽聲)도, 수십 가지의 성음기술과 장단의 교섭도, 궁극적 지향은 늘 그 그윽함과 지극함에 둔다. 그늘이 있는 소리, 이면(裏面)이 있는 소리, 한이 든 소리, 익히거나 삭인 정도가 아니라 곰삭은 소리를 지향한다. 오래 기다리고 오래 숙성되어야만 완성되는 소리다. 서양의 벨칸토 창법에 대응하는 판소리 특유의 성음 미학이다. 맑고 고운 소리를 외면하고 끝 간 데 모를 깊이 있는 소리를 미학적 정점으로 삼았던 남도 사람들, 아니 한국 사람들의 감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천이두는 이를 '한'과 '흥'으로 풀어냈고, 김지하는 '흰그늘'이라 했으며, 나는 '갱번론'을 들어 설명해왔다. 서로 다른 것을 등가적으로 교섭시켜 '장단(長短)'으로 의미화시키고, 노래가 아니라 굳이 소리라 했던 '판'은 바로 삭힘(삭임)의 판이었던 것이다. 김치와 술과 젓갈을 발효시키는 기술이 삭힘이요, 분한 마음, 서러운 마음, 기운생동하는 창발의 마음 모두를 발효시키는 기술이 삭임이다. 판소리가 그 정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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