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플랫폼 규제법안’ 추진에 美 행정부·의회 강력 반발
‘플랫폼 경쟁 촉진법’ 입법 추진
구글·애플·메타 등 직격탄 우려
“미국 기업 차별” 보복관세 검토
“외교·경제적으로 큰 실수” 비판
입력 : 2025. 06. 17(화) 16:40
미국 백악관. 연합뉴스
정부가 온라인 플랫폼을 대상으로 한 규제 법안 도입을 본격 추진하는 가운데 미국이 자국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양국 간 갈등이 심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기업만 규제” 반발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플랫폼 경쟁 촉진법’(PCPA) 도입 움직임에 대해 미국 정부와 의회, 산업계 전반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이 법이 사실상 미국 기업만을 겨냥한 차별적 조치라며, 이를 신뢰 위반, 경제적 배신으로 간주하고 대응 수위를 대폭 높이고 있다.

PCPA는 국내 중개거래수익이 100억원 이상이거나 중개거래금액이 1000억 원 이상인 플랫폼 사업자를 ‘대규모 유통업자’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사업자는 정산 금액의 50% 이상을 금융기관에 예치하거나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파산 시 입점업체에 대한 우선 변제권도 확보해야 한다. 입점업체를 대상으로 한 불공정 행위 금지, 계약서 교부 의무, 수수료와 검색 알고리즘 공개 등이 핵심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은 지난해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안’,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며 플랫폼 규제 입법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다. 김 의원은 이재명 정부에서 차기 공정거래위원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 의회, 산업계, 그리고 백악관까지 모두 ‘PCPA 저지’를 위한 전방위 압박에 돌입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PCAC가 구글, 애플, 메타 등 미국 대표 기술 기업을 겨냥하고 있다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는 “PCPA는 산업 정의와 규제 기준을 의도적으로 조작해 미국 기업만을 규제 대상으로 삼았다”고 비판했다.

그리어 대표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도 “이러한 디지털 규제는 용납할 수 없다”며 보복 조치를 공식 예고했다. 지난 3월 무역장벽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PCPA가 미국 기업만을 차별하고 한국과 중국 기업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명시됐다.

● “한미 안보 동맹의 큰 장애물”

한국의 규제를 단순한 경제 문제로 보지 않는 미국 고위 인사들도 적지 않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PCPA는 사실상 중국 공산당에 사용자 데이터와 시장 점유율을 넘겨주는 선물”이라며, 이 법을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

톰 코튼 상원의원은 아예 국방수권법(NDAA) 수정안을 통해 국방부에 PCPA가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미 의회는 한국이 중국 플랫폼 기업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미국 기술 기업만 겨냥하고 있다며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기술 산업계도 대거 반발하고 있다. CTA, CCIA, ACT, SIIA 등 6개 대표 산업 단체는 지난 1월 USTR에 공동 서한을 보내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고의로 차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구글, 애플, 메타, 넷플릭스 등이 주요 회원사다.

CTA는 특히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를 가리켜 “미-한 무역 및 안보 동맹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며 이례적으로 직설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도 최근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의회와 백악관을 상대로 PCPA 반대 입장을 공식 전달했다. AMCHAM은 “한국 정부의 PCPA는 사실상 미국 기업에 대한 경제적 공격이며, 자유시장 원칙을 훼손한다”고 강조했다.

● 트럼프 “50% 관세도 검토 중”

한국의 플랫폼 규제에 대응해 미 하원의 캐롤 밀러 의원이 발의한 ‘미-한 디지털 무역 집행법’은 지난달 초당적 지지를 받아 재발의됐다. 해당 법안은 한국이 미국 기업을 차별할 경우 USTR이 자동으로 보복 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미 칼을 빼들었다. 그는 4월 백악관 연설에서 “한국과 일본이 비관세 장벽을 통해 미국 기업을 옥죄고 있다”고 밝히며, 앞서 2월 서명한 ‘상호보복관세 대통령 각서’를 통해 디지털 규제 등 새로운 형태의 무역 장벽에도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행정부가 1930년 관세법 제338조를 발동해 한국산 제품에 최대 50%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동맹국을 상대로 한 가장 강경한 디지털 통상 대응이 될 수 있다.

CSIS, ITIF 등 미국 싱크탱크는 한국의 PCPA가 EU의 실패한 규제를 무비판적으로 모방해 미국과의 충돌을 자초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중국 기업을 제외하는 방식은 ‘정치적 목적의 비대칭 규제’이며, 결국 한국 스스로 동맹국으로서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의 입장은 분명하다. 미국 기업을 고의로 차별하는 외국 규제는 국가 안보, 무역 정책, 외교 전략 모두의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갈등은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 동맹국 간의 신뢰 테스트로 읽힌다.

최근 파리 AI 액션 서밋에 참석한 벤스 부통령은 “일부 외국 정부가 미국 기술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고려 중인데, 이는 외교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큰 실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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