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한 표
노병하 디지털콘텐츠 본부 부장
입력 : 2025. 05. 26(월) 10:00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적 방식을 통한 공직자 선출은 1948년 5월10일에 있었던 제헌국회의원 선거다.
이 제헌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무려 95.5% 였으며 강원도의 경우 98.2%라는 압도적인 투표율을 기록했었다. 유엔 감시하에 치러졌으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이뤄진 선거이자 남녀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투표권이 제공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뒤이어 1948년 7월20일에는 초대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가 있었다. 직선제는 아니고 간선제였다. 최초의 대선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지방선거는 1952년 4월25일이 최초다. 당시의 지방자치법에는 시·읍·면 의회 의원선거 및 도의회 의원선거만 직접선거로 치러지고, 시·읍·면장은 지방의회 의원들의 간접선거로, 서울특별시장 및 도지사는 임명직으로 규정돼 있었다. 이 1회 지방선거에서는 무투표 당선이 매우 많았는데, 전라남도의 경우 전체 당선자 중 63%가 무투표로 당선되기도 했었다.
1960년은 그 유명한 3·15 부정선거가 치러진 해였다. 자유당 정권이 조작한 대통령 선거로 인해 전국적 항의 발생했고, 이에 4·19 혁명이 발생,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야했다.
군정 종식 이후 첫 민간 정권 선거가 실시됐지만 얼마 안가 엎어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후 선거가 소강 상태였다가, 1971년 대통령 선거가 다시 열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간 대결이 치열했었고, 민주화 요구가 강하게 분출됐었다. 결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근소 차로 승리했다. 이후 그는 유신헌법을 강행했다.
뒤이어 전두환이 나라를 뒤엎고 간선제를 부활 시키면서 암흑기로 접어들었던 대한민국은 1987년을 맞아 6월 항쟁을 진행했고 그해 12월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부활했다.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사상 첫 여야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 됐던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는 2030 세대의 ‘온라인 정치참여’ 본격화된 시기였다. 그리고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조기 대선이었다. 이때 당선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
이리 나열하고 보니 1990년 대 이전의 대한민국 투표 역사는 피의 역사였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하다. 국민 1명당 1표를 얻기 위해 흘려야 했던 피는 얼마였던가.
다시 또 대선이다. 내 손에 쥔 것은 그저 1표가 아니다. 수많은 선배들이 피를 흘려 쟁취해 낸 무기이자 권리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다.
당연히 그것을 행사해야 할 고귀한 의무가 있다. 부디 피로 쟁취한 위대한 권리를 버리지 말길 진심으로 당부 드리며, 투표장에서 미래를 만드는 당신이 되길 기원한다.
이 제헌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무려 95.5% 였으며 강원도의 경우 98.2%라는 압도적인 투표율을 기록했었다. 유엔 감시하에 치러졌으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이뤄진 선거이자 남녀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투표권이 제공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뒤이어 1948년 7월20일에는 초대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가 있었다. 직선제는 아니고 간선제였다. 최초의 대선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지방선거는 1952년 4월25일이 최초다. 당시의 지방자치법에는 시·읍·면 의회 의원선거 및 도의회 의원선거만 직접선거로 치러지고, 시·읍·면장은 지방의회 의원들의 간접선거로, 서울특별시장 및 도지사는 임명직으로 규정돼 있었다. 이 1회 지방선거에서는 무투표 당선이 매우 많았는데, 전라남도의 경우 전체 당선자 중 63%가 무투표로 당선되기도 했었다.
1960년은 그 유명한 3·15 부정선거가 치러진 해였다. 자유당 정권이 조작한 대통령 선거로 인해 전국적 항의 발생했고, 이에 4·19 혁명이 발생,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야했다.
군정 종식 이후 첫 민간 정권 선거가 실시됐지만 얼마 안가 엎어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후 선거가 소강 상태였다가, 1971년 대통령 선거가 다시 열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간 대결이 치열했었고, 민주화 요구가 강하게 분출됐었다. 결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근소 차로 승리했다. 이후 그는 유신헌법을 강행했다.
뒤이어 전두환이 나라를 뒤엎고 간선제를 부활 시키면서 암흑기로 접어들었던 대한민국은 1987년을 맞아 6월 항쟁을 진행했고 그해 12월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부활했다.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사상 첫 여야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 됐던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는 2030 세대의 ‘온라인 정치참여’ 본격화된 시기였다. 그리고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조기 대선이었다. 이때 당선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
이리 나열하고 보니 1990년 대 이전의 대한민국 투표 역사는 피의 역사였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하다. 국민 1명당 1표를 얻기 위해 흘려야 했던 피는 얼마였던가.
다시 또 대선이다. 내 손에 쥔 것은 그저 1표가 아니다. 수많은 선배들이 피를 흘려 쟁취해 낸 무기이자 권리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다.
당연히 그것을 행사해야 할 고귀한 의무가 있다. 부디 피로 쟁취한 위대한 권리를 버리지 말길 진심으로 당부 드리며, 투표장에서 미래를 만드는 당신이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