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광주·전남 158명 희생에 ‘눈물바다’…"심리치유 중요"
직계가족 아니어도 슬픔 통감
합동분향소 시민 발길 이어져
“눈물 안 멈춰” 트라우마 우려
지자체 심리지원 이용률 저조
"심리적 외상, 간과돼선 안돼"
입력 : 2025. 01. 02(목) 18:48
2일 오후 광주 서구보건소 관계자들이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심리 지원 서비스를 홍보하고 있다. 윤준명 기자
2일 오후 광주 시민들이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추모하고 있다. 윤준명 기자
#광주에 거주하는 김수열(84)씨는 2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광주 시민 85명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는 비극적인 소식에 깊은 슬픔을 느낀 그는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분향소에서 차분히 순서를 기다린 후 헌화를 마친 김씨는 분향소를 떠나며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섣불리 말을 내뱉기조차 힘들어하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안타까운 사회적 참사가 발생해 일상생활을 보내면서도 마음이 너무 편치 않았다”며 “희생자들이 편안히 영면에 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고 밝혔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소식을 듣고 깊은 충격을 받은 이원아(37)씨는 희생자들을 위로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딸 이서율(7)양과 함께 김포에서 광주로 향했다. 그녀는 딸에게 세상의 현실과 사회적 관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해 이번 여정을 결심했다. 광주에 도착한 이씨는 먼저 5·18역사기록원을 방문해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줬다. 이후 합동분향소를 찾은 그녀는 딸의 손을 꼭 잡은 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마음을 전했다. 이씨는 “추모 장소에 오기 전에 딸에게 참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줬다”며 “사회의 불안정함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관심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광주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줬다”고 말했다.

헌화를 마친 후, 이양은 서툰 글씨로 ‘천국에서 편안히 사세요’라는 문구를 적어 분향소에 남겼다. 두 모녀는 추모를 마친 뒤에도 분향소 주변을 한참 동안 서성이며 서로를 껴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대다수가 광주·전남에 거주했던 사실이 전해지면서 지역민들 사이에서도 정신적 고통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심리치유 지원정책의 시민 이용은 저조한 상황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심리적 외상에 대한 조기 치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일 오후 찾은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 합동분향소 앞에서는 수많은 추모객 사이 서구보건소에서 파견을 나온 분홍색 버스가 눈에 띄었다.

직원들은 버스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심리 지원’이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게첨하고, 홍보물을 배치하는 등 트라우마를 겪는 시민들의 치유를 돕겠다고 홍보에 나섰지만, 버스를 찾는 시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광주시는 이번 참사로 85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등 가장 큰 피해를 봤다. 이에 광주 5개 자치구 보건소는 슬픔을 겪는 유족과 시민들의 심리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심리 지원 버스를 보유한 남구·서구보건소는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지난해 12월30일부터 현장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지만, 이날 오후 기준 운영 기간동안 해당 버스를 이용한 시민은 단 1명에 불과했다.

유족의 경우 대부분 사고 현장인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심리 상담 공간을 이용하고 있으며, 일반 시민들의 경우 심리 지원 버스 및 상담시설 이용 가능 여부나 심리치유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서구보건소 관계자는 “보건소는 유족뿐 아니라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모든 시민에게 무료로 맞춤형 심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사회적 참사로 인해 고통을 겪는 시민들이 이곳에서 적절한 치료와 도움을 얻고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형참사에 따른 심리적 외상의 경우 초기 개입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지역민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김명권 전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지역에서 대형참사가 발생함에 따라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심리적 외상의 경우 일반 외상에 비해 위험성이 간과돼 방치되는 측면이 크다”며 “가벼운 질병도 방치하면 증상이 심해지고, 만성질환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심리적 외상도 초기에 개입돼야만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참사 이후 우울, 불안증세를 겪거나, 과각성·재경험·회피 등 심리적 외상의 징후를 느끼는 시민들은 곧바로 정신건강 관련 지원과 적절한 치유를 받기를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참사로 인해 반복적으로 우울·불안을 느끼는 시민들은 가까운 보건소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거나, 국가트라우마센터에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상아·윤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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