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낸 골딘의 영상 회고전이면서 투쟁일지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입력 : 2024. 06. 23(일) 20:48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포스터.
다큐멘터리 ‘시티즌 포’로 2015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 그녀의 최근작이자 2022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다큐멘터리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를 필자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 다행스럽게도, 광주에는 독립영화 상영관이 세 군데쯤 있다. 동구의 광주독립영화관, 광주극장, 서구의 상무CGV가 있고, 드물게는 북구의 용봉CGV에서도 독립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하루에 한 차례 정도 상영하는 귀한 독립영화를 보기 위해 시간 맞춰 달려가는 일은 정성이 필요하기는 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두 줄기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거장 사진작가 낸 골딘의 현재적 투쟁과 과거의 아픈 개인사이다. 2018년 3월, 낸 골딘과 그녀가 창설한 그룹 P.A.I.N. (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 멤버들이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고대 이집트 덴더 사원이 있는 새클러 윙에서 약통을 투척하며 시위하는 신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낸 골딘이 ‘아티스트 프로젝트’ 비디오에 참가했던 곳이다.

그녀는 약물중독을 유발하는 진통제 옥시콘틴으로 중독과 재활원까지 경험한바 옥시콘틴 제조를 반대하는 시위로써 투쟁을 벌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중독성 높은 옥시콘틴 성분이 든 합법적 마약으로 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조사 퍼듀파마에 대한 규탄이 P.A.I.N. 투쟁의 당위다. 문제는 퍼듀파마 소유주인 새클러 가문이 미국 사회를 주무르는 거대한 세력이라는 것. 죽음의 약을 팔아 축적한 부로 새클러 가문은 주류 미술관에 자금을 쏟아부어 자신의 이름을 딴 전시관을 만드는 등 20세기 메디치로 군림하고 있다.

이들을 향한 골딘의 투쟁은 ‘바위에 계란 치기’처럼 허황되리만큼 미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녀가 맞설 권력이란 단지 그녀의 명성뿐이다. 낸 골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거나 작품전이 있을 예정인 곳이라는. 시위는 4년에 걸쳐 계속되었다. 2018년 7월 하버드 미술관, 2019년 구겐하임과 메트 뮤지엄에서 시위를 벌였을 뿐 아니라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등 유럽에서도 계속되었다. 런던의 국립 초상화 갤러리에는 새클러의 기부금을 거부하지 않으면 기획된 자신의 회고전을 취소하겠다 밝혔다. 그러자 국립 초상화 갤러리 측은 새클러의 기부금 130만 달러를 거부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시작으로, 테이트 모던, 파리 루브르, 뉴욕 구겐하임 등이 새클러 가의 기부금을 사절키로 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은 7개 전시공간에 씌어진 새클러의 이름을 삭제하는 결정을 내린다.

새클러 가문과의 치열한 투쟁을 벌인 낸 골딘의 분노 에너지는 어디에서 솟구친 것일까?. 퀴어 커뮤니티에 속한 채 아웃사이더들을 담아온 그녀의 독특한 작품세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낸이 어릴 적 성적으로 억압됐던 언니 바바라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훗날 정신과 의사의 진단서에 따르면, 바바라보다는 엄마에게 정신과 치료가 필요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진단서에 씌어진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는 영화의 제목이다. 낸은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언니를 잃은 참혹함으로 반항이 시작되어 집을 뛰쳐나갔고 입양되었다.

그녀를 그나마 살게 해준 힘은 카메라였다. 보스턴과 프로빈스타운을 거쳐 뉴욕으로 이주한 후에는 보헤미언, 동성애자, 약물중독자 등 아웃사이더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녀 자신은 양성애자이자 매춘까지 했노라 고백한다. 그녀의 충격적 사진예술 활동은 피사체를 향한 렌즈를 작가 자신을 향해 노출했다는 데 있다. 이를 두고 사진계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실험은 항상 통과의례가 있게 마련이다. 솔직히, 필자 역시 충격이기는 했다. 영화는 낸 골딘의 영상 회고전이자 새클러 가문과의 투쟁 일지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 각인된 트라우마가 아웃사이더들에게 연민을 갖고 작품으로 승화했으며 투쟁할 수 있는 내력이었음을 보여준다. 골딘은 “사진은 내가 두려움을 헤쳐나가는 방법이었다”고 말한다. PAIN 투쟁은 작가로서의 낸 골딘 최고의 퍼포먼스 아트이자,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이 담고자 했던 다큐멘터리의 생명력이다.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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