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명·호남의병 애국혼 다룬 창작극 광주서 첫선
'1592 임진-고경명과 호남의병'
26~27일 남구문화예술회관서
금산전투 참전 의병 사투 그려
"지역 콘텐츠 전국에 알려지길"
장군 후손 단체관람 감사 전해
입력 : 2024. 09. 26(목) 18:06
26일 광주 남구 남구문화예술회관에서 무대에 오른 창작극 ‘1592 임진-고경명과 호남의병’에서 배우들이 목숨을 바쳐 싸운 선조들의 사투를 재현하고 있다. 박찬 기자
432년 전 금산에서 왜군들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제봉 고경명 선생과 조국을 위해 이름 없이 쓰러져 간 호남 의병들의 이야기가 광주 남구에서 다시 쓰여진다.

26일 오후 4시 창작극 ‘1592 임진-고경명과 호남의병’이 광주 남구 봉선동 남구문화예술회관에서 막을 올렸다.

‘1592 임진-고경명과 호남의병’은 남구가 연극을 통해 의병장 고경명 선생의 애국 및 희생정신을 재조명하고자 ‘무대로 만나는 인문학’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연출은 문학계 그랜드슬램(시·소설·희곡 3개 장르 등단) 달성자로 이름을 알린 최치언 작가가 맡았다.

그동안 소수의 배역이 출연하는 갈등·심리 구조 위주의 연극을 연출해 온 그가 서사가 강한 사극을 맡게 된 계기에 대해 ‘지방의 문화 소외 현상 타파와 지역 문화 활성화’라고 피력했다.

최치언 연출가는 “광주를 포함해 지방에도 각종 문화 콘텐츠에 활용될 만한 자원이 많지만, 수도권에만 집중된 문화 인프라는 아쉬운 점”이라며 “광주·전남의 극단들도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강점인 스토리텔링을 살려 부족한 자원으로도 좋은 콘텐츠를 생산해 내 지역의 작품이 전국적으로 알려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광주 의병들의 역사를 소개하면서도 다른 지역에서 오르고 있는 작품들과는 다른 특색 있는 창작극을 만들어 내는 게 목표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고경명 역을 맡은 고창 출신 11년 차 배우 엄지성(38)씨는 창작집단 상상두목에서 활동하며 여러 차례 사극에 출연한 바 있다.

그는 “지금 시대에는 이해하기 힘든 고결한 뜻과 정신을 가졌던 고경명 선생 역을 맡게 돼 영광이다”고 무대에 오르기 전 소감을 밝혔다.



26일 오후 ‘1592 임진-고경명과 호남의병’ 초연에 앞서 남구문화예술회관 지하 1층에서 김병내 남구청장, 진주시 주요인사, 호남의병 후손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차담회가 진행됐다. 박찬 기자
해당 무대는 광주 남구의 한 공무원의 노력으로 인해 시작됐다. 현재까지 광주 자치구에서 고경명을 주제로 한 창작극은 이번이 최초다. 자치구를 넘어 지역 예술계에서도 고경명과 의병이야기는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고경명의 후손들이 사는 진주에서는 창작극 제작 소식을 듣자 마자 문중에서 남구에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고 연극이 무대에 오른 이날 버스를 대절해 방문했다.

공연에 앞서 남구에서는 고경명과 호남 의병의 후손들을 위한 차담회가 마련됐다. 이들은 목숨을 바쳐 싸운 선조들의 사투를 재현한 광주 남구의 노력에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하며 일평생 기다려 온 연극 관람을 목전에 두고 북받치는 감정을 드러냈다.

고경명 장군의 16대손이라고 밝힌 고영욱(82) 진주향교 전교는 “이런 기획을 실천으로 옮긴 광주 남구에 감사할 따름”이라며 “조상의 고귀한 뜻이 눈앞에서 실제 배우들을 통해 재현될 현장을 생각하니 벌써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말했다.

김병내 남구청장은 차담회에서 “고경명 장군은 광주정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신을 후대에서도 발굴하고 이어갈 수 있도록 남구의 공직자는 물론 모든 광주 시민이 국기로 삼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고경명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참패할 수 밖에 없다고 예상됐지만 목숨을 걸고 6000명의 의병을 이끈 채 금산전투에 참전했다. 조선의 왕과 수많은 장군이 목숨을 부지하러 피난길에 나섰을 때 그는 조선 의병들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선택을 결심한 것이다.

극에서는 금산을 지키러 진군한 고경명과 정예 의병 900명이 왜군의 포위 속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이때 고경명 장군은 의병들에게 외친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 “우린 죽기 위해 이곳에 왔다. 우리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우리가 목숨을 바쳐 싸울 것이다.”

이에 의병들은 한 목소리로 “사즉사!”를 외친다.

이는 ‘죽을 각오로 싸우면 살길이 열린다’는 뜻의 ‘생즉사 사즉생’과 달리 오직 죽어야만 하는 운명을 알고 참전한 당시 의인들의 뜻을 담고 있다.

남구 관계자는 “전 국민이 아는 임진왜란을 소재로 모두가 잊어버린 역사를 파고들었다”며 “실재했던 광주 남구의 인물들과 역사를 배경으로 우리 지역민이 꾸준히 찾을 연속성 있는 문화 상품을 개발하고자 시작한 게 연극을 구상하게 된 계기였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고경명 장군을 비롯해 호남의 의병들이 추구했던 공동체 가치인 ‘의’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관객들도 많이 공감하고 감동하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1592 임진-고경명과 호남의병은 26~27일 양일간 광주 남구 봉선동 남구문화예술회관에서 3차례 펼쳐진다. 남구 주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1회 공연당 관람객은 300명 내외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사회일반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전남일보 PC버전